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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트랜스라틴5월]『세계화』와 『지금』

오늘날 ‘문화’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처럼 ‘세계화’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이견(異見)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복합연계성(complex connectivity)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지구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하는 듯하다. 이것은 우리가 적어도 세계화라는 경험적 현실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상품, 자본, 사람, 지식이나 신념뿐만 아니라 범죄까지도 지역경계를 넘어들고 있고, 학술분야에서부터 성(性)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문제는 세계화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의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특정한 집단이 그걸 원해서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옹호하는 진영에서 특정한 상태가 지속되길 바라면서 왜 그런 상태가 지속되어야 하는지 근거를 대고 주장을 펼친다면, 그 반대의 진영에서는 세계화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불가피성과 확신에 찬 주장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적 뿌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세계화의 불가피성이라는 심각한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두 권의 책이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다. 한 권은 제임스 페트라스와 헨리 벨트마이어가 같이 쓴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21세기 제국주의』(이하 『세계화』)이고, 또 다른 한 권은 마이클 레보위츠가 쓴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이하 『지금』)이다. 반세계화에 대한 책들은 활동가 지향적인 책들과 전문가 분석이 주류를 이루는데, 두 권 모두 후자에 속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서 세상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에 관한 전망을 내걸고 반자본주의 운동을 고취하려는 ‘선언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다만 『세계화』가 하나의 설명이자 처방으로 등장한 세계화의 가면을 벗기면 21세기 제국주의가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세계화에 숨겨진 계급 프로젝트의 성격을 분석하는데 치중한다면, 『지금』은 남미 베네수엘라의 예를 들어 더욱 실천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의 방식이나 실천 방법 그리고 대안의 제시에 있어서 병존하는 다양한 갈래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제안한 것처럼,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표현이나, 지오반니 아리기, 테렌스 홉킨스, 임마누엘 월러스틴이 명명한 ‘반체제 운동’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듯하다.   이것은 냉전종식 이후 전통 좌파가 상대적으로 취약해졌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로서 사회주의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보통사람들에게 정당하거나 공정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가 곧바로 확실한 대안의 제시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경제사상 및 정치사상사와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자유주의 진영과 공리주의 진영으로 나뉘는데, 자본주의의 등장이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자유의 획기적인 전기(轉機)였다는 자유주의 진영의 주장과 경제성장의 ‘하향파급효과 이론’(trickle down theory)을 강조하는 공리주의 진영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도덕률로 작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화』와 『지금』 두 책 모두 전반부를 자본주의의 DNA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즉 페르낭 브로델과 칼 폴라니가 세계체제분석의 전사(前史)에서 밝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세계경제로 출발했으며, 그리고 그것은 특정 사회의 ‘외부’까지를 고려해야 이해될 수 있고, 자본주의가 특정 사회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은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생산은 나중에야 자본주의의 고유한 영역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DNA는 ‘세계화’, ‘시장’, ‘민주주의’,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가치중립적인 진통제 수사학에 가려져 있었으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이중구조, 즉 제1세계와 제4세계의 등장으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말을 빌리면, 이제 제2세계와 제3세계는 의미가 없고, 세계 도처에서 사회적 주류와 비주류 간에 4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와 『지금』은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세계화』의 공동 저자인 페트라스와 벨트마이어가 이 책 이외에도 『사회운동과 국가권력: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에콰도르』같은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공동으로 집필한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이며, 레보위츠 역시 경제학 교수로서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정책고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70년대 중반에 이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라틴아메리카에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한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에는 이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작용으로 누적된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여 다양한 방식의 사회운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한 라틴아메리카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서유럽식 사민주의라는 “20세기의 두 가지 거대한 실패에 상당한 근거”를 두고 “유일한 대안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믿음”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투쟁의 장(場)으로 떠올랐다. 투쟁의 지형도를 그려가면서 라틴아메리카 상황을 분석하는 수많은 글에서 제임스 페트라스의 태도는 대단히 완고한 좌파의 자세를 견지해왔다. 그는 민영화와 공적 소유 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잣대로 사용하여 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이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우파에 의해 형식적이고 실질적으로 포섭되는 양상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는 진정한 좌파 정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와 『지금』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급진적인 “내생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 프로젝트다. 내생적 발전은 과거의 수입대체산업화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며, 이윤동기에 추동되지 않고 인간의 필요와 인간발전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회주의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마디로 개인적 가치와 공적 실천의 결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 공동관리와 협동조합 활동, 급진적 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정치형태,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에 비해 뒤처져 있는 문화혁명의 필요성 등에 대한 논쟁거리를 포괄한다.

 

라틴아메리카 상황을 여전히 반면교사로만 바라보는 현실에서, “문제점은 많지만 그래도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 강령에 자포자기식으로 포섭되는 현실에서 두 권의 책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을 읽는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모색되는 현실적인 대안들이 그 지역의 구체적 필요와 조건에 맞는 독자적 대안이라는 점이다. 어떤 현실주의적 토론이나 실천도 스스로의 필요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지금』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는 베네수엘라의 사례가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며, 하물며 한국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글쓴이>
김은중 - 강원대학교 연구교수이며, 역서로는 『흙의 자식들, 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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