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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억! 억! 소리나는 번역서 몸값

억! 억! 소리나는 번역서 몸값
'마지막 강의' 先인세 6억원 넘어서
"한국 출판시장 외국社봉으로 전락"

 

이왕구 기자 fab4@hk.co.kr  
 
 
 

 
  

번역서에 대한 판권경쟁이 가열되면서 일종의 계약금인 선(先)인세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최근 출간된 <마지막 강의>의 선인세가 64만 달러(약 6억4,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최고가로 알려진 <에너지 버스>(2007년)의 20만 달러(추정액)를 크게 상회하는 액수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최고 1만5,000만 달러 수준이던 번역서 선인세는 2005년 <마시멜로 이야기>가 10만 달러를 넘으면서 껑충 뛰기 시작했다. 이후 <다빈치코드>와 <에너지 버스> 등 영ㆍ미 메이저출판사들이 적극 홍보하는 블록버스터급 서적들이 20만 달러선을 돌파했으며, <마지막 강의>는 이를 3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불황이 깊어지면서 출판사들이 고만고만한 책들에 대한 분산투자 대신 ‘대박’을 낼만한 책 한 권에 집중투자하는 방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강의>의 경우 10여개의 국내 대형출판사들이 입찰에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출판사들의 판권경쟁은 국부유출 논란과 함께 중소출판사를 고사시켜 장기적으로는 독자들의 선택권을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랜덤하우스와 같은 외국자본과 웅진 같은 대기업의 ‘돈놓고 돈먹기 식’의 전략이 확산되면서 부작용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출판시장은 이미 외국 출판사들의 ‘봉’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출판시장이 우리보다 10배 이상 큰 일본에서도 선인세가 10만 달러를 넘지 않는다. 국내 1급 작가의 경우에도 선인세는 5,000만~1억원 수준이다.

 

최근에는 영ㆍ미권 자기계발서는 물론이고 인문ㆍ교양ㆍ학술서적, 유럽서적을 가리지 않고 선인세가 크게 높아졌다. 8년째 번역에이전시를 운영중인 A(51)씨는 “통상 200만원 정도에 계약을 맺던 프랑스 인문출판사가 다국적기업 관련 비판서를 1,000만원 이상으로 계약할 출판사를 찾아달라고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인기를 얻고있는 독일어 자기계발서인 <파블로 이야기>의 선인세도 1,500만원(추정)이상으로, 3년 전에 비해 3,4배 가량 올랐다. 500만원 수준이던 철학입문서는 2,000만원선으로, 250만~300만원 수준이던 과학교양서도 1,000만원 선으로 뛰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중인 B(38)씨는 제작비 이외의 부대비용의 증가로 인한 소규모 출판사의 고사를 우려했다. 그는 “인터넷서점의 배너광고 점령, 대형서점 주요 매대 책 배치 등 대형출판사들의 물량 공세가 커지면서 작은 출판사책들이 책을 알릴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사들이 외국 출판사에 지급한 선인세만큼 국내 필자들을 키우는 데 투자해봤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2008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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