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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벽

기억 속에 없는 사실

# 장면1: "6명의 대원이 어머니, 오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17살 소녀를 윤간하고는 그녀를 묶어 불 속에 던져버렸다" "14명의 잔자위드 대원이 한 학교의 41명 소녀와 여성교사를 집단으로 강간했다"
-2003년 초부터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어진 대량학살과 집단강간에 관한 증언 가운데

# 장면2: 책가방을 매고 학교로 가고 있던 '이만 알 함스'라는 13살 난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이스라엘군이 조준사격 해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탄창이 떨어질 때까지 '확인사살'하여 아이의 몸에 총 20개의 총알이 박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르푸르라는 지역이 아프리카의 수단이라는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나 경상도와 같이 한국의 어느 한 지역이었다면 한국의 인권운동은 무엇을 했을까? 수만명이 학살당하고, 수천명의 여성이 "껌둥이는 모두 없애버려야 돼"와 같은 소리를 들으며 강간당하고, 지금도 1백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난민으로 주변국을 떠돌고 있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책가방 매고 학교로 가다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죽은 것도 모자라 '확인사살'로 몸에 20발의 총알을 맞고 죽은 13살 난 사람이 '이만 알 함스'라는 팔레스타인인이 아니고 김아무개 씨라는 한국 사람이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무어라 말했을까?

 

만약 '이만 알 함스'가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었다면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혀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살인자 집단에 대해 진상규명과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며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않는다. '미선·효순' 사건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왜 그럴까? 왜 군사 폭력으로 사람들이 죽었는데 누구는 기억되고 누구는 기억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라는 벽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미선·효순'이나 '이만 알 함스'와 단 한번도 얼굴을 맞댄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같은 국적과 민족인 사람들은 '우리'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목숨과 인권의 가치를 다르게 매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닌' 것을 잊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사회도 한민족만이 '우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국적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 안에 작은 실천이 바로 '우리가 아닌' 벽을 허물 수 있다. 매주 화요일 12시에 열리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 캠페인, 그리고 이스라엘 상품 불매운동 등 지금은 작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하나하나 모여 우리를 넘어선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만드는 '인권하루소식'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sarangbang.or.kr/kr/main/hr_content.html?seqnum=14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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