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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보화 이론가인 하워드 라인골드는 지난 해 발표한 저서 「참여 군중 Smart Mobs」에서 일본의 휴대폰 문화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제 시간에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나온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늦게 나오는 것에 크게 불만이 없다. 아직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들은 문자메시지로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오거나 아니면, 배터리가 닳아서 휴대폰을 받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잘못'이다."
유비쿼터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할 정도로 정보통신 그물망이 가득 들어차 있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다.
20세기 중반, 정보화 사회가 예견되면서 거대한 감시 사회에 대한 공포 또한 예견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감시를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도 곧바로 시작되었다. '자기정보통제권,' 즉 자신의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계약, 즉 개인에게 자기 정보의 사용에 대한 '동의'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프라이버시 이슈가 등장할 때 간간이 언론을 통해 듣게 되는 1980년 'OECD 가이드라인'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그리고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커져가는 기업 권력의 힘 앞에서, 개인의 동의가 얼마나 무력한지가 명백해졌다. 때문에, 최근에는 감시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권을 의미하는 역감시권이 제안되었다. 시민사회의 집단적 권력으로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할 대항 권력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감독기구를 명문화한 1995년 EU 지침이 그 예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권력에 의해 위협받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해결책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산형 네트워킹을 지향하는 유비쿼터스가 특정한 감시 권력을 확대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 감시는 오히려 민주화되고 감시를 행하는 권력은 분산되어 왔다는 것이 많은 사회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오히려, 유비쿼터스 시대의 문제는 감시의 대상이었던 시민사회가 스스로 감시의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한 가지 상상을 해 보자. 머지않아 화상 휴대폰이 상용화되면, 누구나 그걸 들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마도,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 휴대폰에는 화상이 전송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부착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고 화상은 전송되지 않았다고 하자.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뭘 하길래 화면을 꺼 놓은 거야? 어디 못 갈 곳에라도 간 것 아냐?" 화상 전송장치를 끄는 것은 결국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본질은 시민사회가 온라인 상태를 강요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중세 시대의 교회처럼,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직장처럼, 유비쿼터스 시대에 온라인은, 가지 않으면 주위 사람으로부터 떳떳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갈 것이다. 때문에, 온라인 상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개인의 선택'이란 의미가 없어진다. 거대 권력이 아닌 시대 정신 자체가 문제인 만큼, 시민 통제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감시의 눈길에 몸을 맡기고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는 것, 이것이 유비쿼터스 시대에 프라이버시가 겪을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선택권'도, '시민통제'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어떤 법제도적 장치, 기술적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행히 시민 사회는 해방을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을 발전시켜 왔다. 지금까지 국가 권력에만 요구해왔던 그 원칙을 서로에게 적용할 시점이 온 것이다. 자기 검열이 내면화되는 만큼,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면화해야 한다.
중앙대 대학원신문 제190호(2003년 10월 8일)
실제로는 분량이 넘쳐 조금 잘린 채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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