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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서울에서 포항까지 기차타기

 

  12월 17일 일요일, 눈이 많이 온 날이라서 새마을호를 타고 포항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주말 휴식을 마치고 포항으로 내려갈 때, 새마을호를 예약하고 결재까지 마친 뒤에 간혹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23시 09분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로 변경을 하기도 한다. 포항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기차인 23시 09분에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면 동대구역에 새벽 2시 45분에 도착한다. 요금은 19,400원(비즈니스 카드 할인요금은 16,300 원)이다. 동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첫 기차가 05시 20분에 있으므로 3시간 가까이 동대구에서 머물러야 한다. 노숙자들과 함께 대합실에서 앉아서 기다리거나, TV를 보거나, 근처 PC 방을 찾아서 시간을 죽이거나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에 들어가거나 해야 한다. 주로 이용하는 방법은 피씨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동대구-포항을 운행하는 통근열차 요금은 2,700 원. 그렇게 해서 포항에 도착하면 07시 24분 집에 잠시 들러 세수를 하고 출근을 하면 월요일은 하루 종일 약간 멍한 상태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세오녀가 교통상황이 좋지 않는 날은 최대한 일찍 포항으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한다. 영등포에서 17시 49분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타면 포항역에 22시 50분 도착한다. 철도 비즈니스 카드로 할인을 받으면 요금은 31,900 원(정상요금은 37,900 원)이다. 이럴 경우 포항에서 잠을 푹 자고 월요일을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무궁화호를 이용할 때보다 1만 원 가량이 비용이 더 든다. 

  오늘 까치산 집에서 16시 58에 출발한다. 영등포까지 전철을 이용해서 가면 1시간이면 충분하다. 화곡역에서 1-2호 자리에서 타고 까치산역에 내렸다. 마침 17시 04분에 출발예정인 전철이 들어온다. 전철은 예정보다 1분 늦게 다시 신도림으로 출발한다. 2-2호 출입구 옆에 앉았다가 신도림에서 내린다. 신도림에서는 8-3 출입구 쪽에 가서 북의정부나 청량리 방향 전철을 기다린다. 환승역인 신도림은 항상 북적댄다. 사람도 많지만 간판을 건 가판과 상점들이 역구내에 자리 잡아 더욱 혼잡하다. 공공시설을 상업화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도림역에는 심지어 오뎅을 파는 가게도 있다. 물론 오뎅을 팔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지만, 내게는 이런 판매대가 공공성보다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한 모습처럼 보인다.

  지하를 운행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에 내려서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면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특히 남북 방향이 반대로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인가 다른 사람은 어떤지 궁금하다.

  17시 24분 영등포역에 도착하였다. 계단을 올라가서 역사 건물 안에 들어서니 다른 날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보인다. 한쪽에서 노숙자들이 싸우고 있고,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다. 무전기를 든 사복경찰 한 명과 정복을 한 철도 공안이 싸움을 말리고 있다. 수백 명은 넘는 사람들 속에서 경찰과 공안의 모습이 역부족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등포 역사는 시장바닥만큼이나 혼잡스럽다. 노숙자들이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쓰러져 자고 있고, 한 무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고 있다. 금연 구역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그들을 아무도 단속하거나 제지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승객들은 그저 불안하게 쳐다볼 뿐이다. 하긴, 노숙자들도 웬만해선 일반인들에게 직접 시비를 걸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썩 좋은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철도공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인원을 줄일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력을 더 충원해야 한다.

  11월부터 바뀐 철도운행시간에 따르면 17시 49분 출발하는 새마을호 열차는 17시 45분 새마을호가 출발한 뒤에 개찰하게 된다. 개찰 시간이 20여 분 남아서 신길동 쪽으로 나가 수퍼마켓에 들린다. 캔맥주 500ml 가 1,800 원 밖에 하지 않는다. 열차 안에서는 330ml 가 1,800 원이다. 오징어도 한 마리에 2,000 원으로 역시 철도유통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1,000 원 이상 싸다. 내킨 김에 파도 한단 900 원에 산다.

  수퍼에서 맥주를 사면서 90년대 초반 흥해에서 살 때 생각이 난다. 당시 포항 시내에서 술을 먹고 택시를 타고 흥해로 가려면 8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포항시를 벗어나 영일군으로 간다고 해서 당시에도 5,000 원 정도의 요금을 내야만 했다. 미터기로 하면 2,000 원 밖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왕복요금을 받았다. 물론 길은 포장되어 있어 10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택시요금으로 기사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부당한 시외요금과 할증료 정책에 대한 불만이었고, 실질적으로 기사들과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서 나는 택시 대신에 버스와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다. 직장인들은 자가용 승용차를 사는 것으로 택시 기사들과의 부딪힘을 피해갔다. 당시 내가 절실하게 주장한 것이 포항에서 멈춘 동해중부선의 복원이었다. 지금도 포항에서 흥해로 가는 철길이 남아 있고 조금만 손을 보면 흥해를 거쳐 청하와 영덕까지 운행이 가능한 상태다. 이 철길을 활용한다면 흥해 지역 주민들은 택시 대신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현실화되기엔 요원하다. 아마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할 즈음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승용차 위주의 정책에서 사람과 자전거와 기차를 중시하는 교통 정책이 필요하다.

  요즘 가끔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들은 누구나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90년대 초반에 택시 기사들은 경기가 좋았던 것일까? 그 ‘경기’라는 것이 시민들의 부당한 요금 부담으로 얻어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자전거 타기와 자가용 소유로 바뀐 세상에 택시 업계는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기차 안에서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철도유통>도 요즘 ‘경기’가 좋지 않는 것 같다. 왜 경기가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선 기차가 빨라졌기에 운행할 동안 배고플 시간이 없기에 잘 사먹지 않는다. 게다가 열차 승무원들이 수시로 폭력적인 방송으로 “대화는 조용히 하시고, 남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삼가 달라. 쓰레기는 객실 밖 휴지통에 넣어라”고 경고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옆 사람과 얘기 하지 말고 조용히 꼼짝하지 말고 앉아 있다가 목적지에 내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는 반드시 생존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대화와 교제를 위해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 기차안 풍속도는 이런 방송으로 인해 사람 사이 대화는 단절이 되고 당연히 철도유통 판매 실적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포항-동대구를 운행하는 통근열차와 무궁화호에는 아예 철도유통 판매승무원이 타지도 않는다. 동대구-서울을 운행하는 KTX 는 1시간 40분밖에 되지 않지만 철도유통 판매승무원이 있다. 포항-동대구를 운행하는 통근열차는 2시간 이상 걸리지만, 물조차 사먹을 방법이 없다. 물론 무궁화호에도 판매승무원이 승차하지 않는다.

   

  기차는 동대구역에 8분 늦게 도착한다. 이 새마을호가 지금까지 정시에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행히 동대구부터 포항까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서, 포항역에는 예정보다 5분 정도 늦었다. 역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들어오니 23시 08분으로 서울에서 나선 지 6시간 10분 걸렸다. 새마을호를 이용하면 어제 KTX를 환승하여 상경할 때보다는 1시간 더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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