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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가락질

약간 늦게 찾아간 술자리에 세명이 이미 앉아있었다.

여느 술자리처럼 다양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물 한잔 하고 고기를 먹기위해 젖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A가 나의 젖가락질을 보며

'와~ 젖가락질 희한하게 하네'

일제히 나머지 두명의 시선이 나의 젖가락질에 주목을 하였다.

 

보통 젖가락질은 엄지와 세번째 손가락이 한 젖가락을 잡고, 두번째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기대어 다른 한 젖가락을 주요한 움직임으로 음식을 집는다. 그것이 이른바 올바른 젖가락질이다.

나는 젖가락질을 다양하게 하는 편이다. 올바른 젖가락질이라는 것을 주되게 사용하지만, 잡기 용이하게 부피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 음식을 잡을 때는 변형된 젖가락질을 사용한다. 젖가락을 짧게 잡고 두번째 손가락은 젖가락을 지탱만하고 세번째 손가락을 주되게 움직여서 음식을 포획한다. 그리고 면 종류를 한 번에 포획하려 할 때는 집게를 잡듯 눕혀서 젖가락을 잡고 젖가락에 면을 낀(?) 후 아구의 힘으로 젖가락을 부여잡어 다량의 면발은 한방에 노획한다.

 

마침 그 때 그 고기가  잡기 용이한 부피와 질감을 가지고 있어 변형 젖가락질을 하였던 것이다.

 



 

A는 나의 젖가락질을 보고 생각이 난지 TV에서 나온 한 이야기를 하였다.

'초등학교의 교장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젖가락질 대회를 하였는데, 콩 많이 잡기였어.

그런 것을 찍는 TV나 그런 것을 준비하는 교장이 옛것을 고정하려는 것이라 웃기기는 하지만, 요즘 젖가락질을 애들이 잘 못하는 것의 한 모습인 듯 싶더라고. 교장의 한 마음에 수긍이 가는 부분은 젖가락질이라는 것이 오랜 역사에서 축적된 것인데, 사라지니까 그것을 보존하려는 마음만은 수긍이 가는 부분이야. 일반적인 젖가락질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편한 것으로 발전된 모습이잖아. 그런데 그 축적된 역사적 결과가 사라는 것은 아쉬운거지.'

 

그러자 B의 반론이 이어졌다.

'이른바 올바른 젖가락질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것은 인정을 해. 하지만 개인이 그것을 축적하면서 확인하는 것이지,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니 이것을 따르라는 것은 개인이 축적하는 역사를 부정할 수 있는 면이 있지. 이것저것 해보다가 그게 편하다 생각하면 그걸 하는거고, 아니면 자신만의 젖가락질을 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 개인에게는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을뿐더러, 역으로 개인의 구축할 수 있는 다양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을 수 있어.'

 

그리고 C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그 TV가 참 웃긴다. 역사의 축적물을 화석화하는 것은 역사의 움직임을 거부하는 것이거든. 물론 젖가락질의 우수성(?)을 보존하는 것이 좋지만, 체제로서 보전하려는 것은 그것을 화석화하는 모습이야. 그런 행사를 하는 교장도 웃끼고 애들 줄세우는 행사에 뭐 볼거 있다고 취재하는 것이 더 우습고.'

 

올바른 젖가락질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단상에 대한 이갸기가 약20분정도 오고갔다. A의 의견과 B의 의견이 좁혀졌다가 다시 벌어지고는 하였다. 그리고 C의 이야기가 간헐적으로 나왔다. 그동안 나는 여러종류의 젖가락질을 해보았다. 그러나 술자리의 대화여서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하고 이내 다른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 역시 젖가락질보다는 술잔을 비우는 것에 더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젖가락질에 대한 술자리의 토론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나, 4명이 기본적으로 동의한 것은 역사의 축적은 승계/발전해야 한다는 것, 역사적 축적물을 화석화하는 순간 그 것의 결과는 초라할뿐아니라 축적물의 성과를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을 역사의 축적을 승계/발전하는 방법에서 개인과 사회의 역활이었다. A는 사회적 역활을 강조하였고, B는 개인의 역활을 강조하였다. 둘의 의견 차이는 좁은 듯하면서도 멀어보였다.

 

사회의 발전에서 개인과 사회과의 관계는 긴장관계를 유지해야하는데, 이 긴장관계라는 것이 언제나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의 공동의 이해와 개인의 이해과 반드시 합치하지 않을뿐더러,  합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대부분 고통이 수반된다. 이 고통을 개인과 사회의 공동의 결과물을 만드는 에너지로 만들기위해 노력하기마련이다. 해결의 방법으로 개인의 자율에 대한 존중과 공동이 동의하는 규칙에서 풀곤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을뿐더러, 생각지도 못하는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굴절당하는 경우도 파다하다. 또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중단된다면 공동이 동의하는 규칙이 화석화되어 개인과 사회의 발정에 발목을 잡곤한다.

 

아직까지 젖가락질에 대한 단상의 이야기가 머리에 맴돌고 있으며, 어떠한 명확한 답을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조직, 단체, 체계, 법칙)의 간극, 개인의 자율과 규칙 사이의 간극을 푸는 것은 올바른 젖가락질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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