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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의 기륭. 야만의 시간과 공간

 

#이틀 동안 기륭전자 앞에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

집안의 따뜻함이 느껴지자 긴장이 풀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틀 동안 야만의 공간 속에 있었던 터라 따뜻한 집이 어색하기만 했다.

야수의 시간이었던 기륭전자 앞과 따뜻한 집.


두 공간에 있던 나는 한 사람임이 분명한 데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티비를 켜니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한다.

“불법 폭력수단을 동원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풍조는 없어져야 한다”

 


혼란해지는 머릿속을 뒤로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21일 오전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기륭전자 앞을 찾아왔다.

햇살이 강해 차양막을 골리앗에 올리려 했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차안에서 심상정 대표가 이야기한다.

“요즘 경찰은 국회의원도 무시해.

(민노당) 국회의원이 처음 현장을 찾을 때는 긴장했지만

쟤네들은 원래 그래 하면서, 넘기는 거지“

 


20일 이정희, 홍희덕 국회의원이 기륭현장을 찾아

지휘관을 찾으며 폭력사태에 대해 물으려 했지만,

지휘관들은 도망치듯 사라지면서

국회의원마저도 쌩깠었다.

 


이어지는 심 대표의 이야기

“뺏지도 없는 진보신당이야 당연하고 민노당도 그렇다 치고

이제는 민주당도 무시당해.

그렇게 욕먹어도 대통령이 지켜주니 충성하는 거지”

 


#20일 격렬한 전투가 진행될 때

공중파 3사의 카메라 모두 왔다.

ENG카메라, 보조카메라, 작가 및 취재기자들

방송 3사 취재인원만 15명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기륭 구사대는 이들에게도 노골적으로 취재 방해를 했다.

ENG카메라가 조명을 키고 촬영을 하려하면

라이트를 카메라에 쏴 촬영을 못하게 한다.

카메라 들이대면 골판지를 들어 올려 시야를 막는다.

 


21일 취재 중인 공중파 기자가 혼잣말을 뱉었다.

“와...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너무 못됐다”

 


공중파에게 이 정도니 ‘진보 인터넷 찌라시’에게는...

 


20일 구사대에게 끌려갈 뻔 했는데

사람들이 잡아줘 봉변은 면했다.

 


#20일 경찰이 처음 기륭분회 집회를 ‘찾아 왔을 때’는 아무런 방송도 없었다.

그리고 기륭공장 안에서 대기하기 시작하며

“불법집회니 해산하라”는 방송을 했다.

 


공장안에 경찰, 경찰 앞에 구사대, 구사대 앞에 용역

마치 군대에서 배운 진지 공략 전술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의 대형을 지키는 진지병력

중간 다리를 역할을 하는 기동병력

적의 진지를 공격하는 공격병력

 


‘좌빨, 불순 세력은 적’이라는 새삼스럽지 않은 규정을

대형만으로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진지함락 전투.

 


경찰은 기륭전자 공장을 사수하고

구사대는 농락하고

용역들은 돌진했다.

그리고 골리앗 주변을 경찰이 확보한다.

 


21일 골리앗의 철거로

이틀 동안 이뤄진 경찰, 구사대, 용역의 합동작전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기륭네티즌연대 지금은 ‘함께 맞는 비’의 ‘씨요 or 요나’가

골리앗이 철거된 후 이야기했다.

“기륭문제는 더 이상 기륭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륭노사와의 문제, 정부와 기륭 노동자의 문제다.

기륭의 폭력과 이를 묵과하는 정권이 있다.

국정원의 개입을 보라. 경총의 개입을 보라”

 


#김소연 분회장이 아시바를 쌓고

그 위에서 농성한 게 불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경찰이 연행한 뒤 용역들에게 넘긴 후

용역이 린치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도 불법이다.

 


기륭분회가 기륭전자의 이사를 막기 위해

차량의 출입을 막은 것이 불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용역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법이다.

 


#20일 기륭전자 기획이사가 떠들기 시작했다.

“5년 전 한 달에 120만원 가져가면서

최저임금에 10원 더 줬데요.

이게 말이 되요?”

말 된다.

 


정치근무하면 급여가 대략 6~70만원이었을 것이고

잔업 특근에 1.5배 급여와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합치면

월 120만원 가능하다. 열라 뺑뺑이 돌았을 때 가능하다.

생산직 생활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계산기 안돌려도 대충 나오는 계산이다.

 


이게 말이 안 된다면,

기륭은 잔업특근에 1.5배를 안 쳐줬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기획이사의 말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해고될까봐 회사를 나왔데요.

바지가 다 졌었는데 바지만 갈아입고 다시 일했데요.

이게 말이 되요?”

말 된다.

 


관리자들은 이럴 때 직언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눈치를 준다.

그러면 키퍼, 조장, 반장이 눈치와 함께 일하자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면 충성파 직원들은 직언으로 갈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생산직 경험을 조금만 했다면

다 아는 사실이다.

 


기획이사는 기륭전자에 오랜 시간 몸담았을지 모르지만,

기륭전자에서 일어나는 비정규직의 생활을 모른다.

기획이사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다른 시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21일 골리앗을 철거할 때

기륭전자 공장 안에서 녹음한 테입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사회적 약자를 가장해....”

반은 옳고 반은 그르다.

 


그래, 찍소리도 못하고 사는 더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약자가 아닐 지 모르지.

하지만 구걸이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고 인간선언을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탄압은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 돌아온다.

 


#이렇게 종합을 해 보니

기륭의 이틀과 따뜻한 집 사이의 충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과 이들과 연대했던 사람들과

고공농성을 하는 하이텍, 콜트 노동자와

고시원에서 살해당한 이주 노동자들

 


기륭전자 자본과 이들 편에 선 기륭전자 직원들과

또 다른 자본과 이들 편에 선 사람들과

경찰의 날을 맞이한 경찰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땅에 21일을 같이 보내고 있었지만

이 둘 사이는 다른 사회적 시공간이 존재했던 것이다.

 


#김소연 분회장이 골리앗에서 끌려나오면서 절규했다.

“죽으려는 데 왜! 사람같이 살려는 데 왜!”

 


한 쪽의 사람들은 사람임을 알면 죽어간다.

한 쪽의 사람들은 사람의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야만의 시간 2008년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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