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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그 끔찍한 이야기

03년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집에 일찍 들어가 고 싶어

흔치않게 해가 질 무렵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시간이었지만 집안의 풍경이 불길함을 부추겼다.

수비자세로 집에 있은 지 한 시간 여

어머니가 처참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난 괴물처럼 소리질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몰랐다.

그져 미쳐가고 있었다.

어떤 악몽보다 버티기 어려웠던 최악의 몇 시간이 흐르고

정신이 조금 든 후 결심했다.

어머니를 처참하게 만든 이 사람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기로...

 

그 전까지 살갑지는 않았지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한 부자관계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난 그 사람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 사람은 이후로 나와 대화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핏줄 혹은 씨를 뿌린 수컷으로서의 존재를 나를 보면서 확인하고 싶어했다.

난 거부했다.

 

얼마 전

그 사람과 한 판 붙었다. 말싸움이야 집으로 들어온 후로 종종 있었지만

붙은 것은 03년 두 내우의 이혼을 권유하기 위해서 붙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날 그와 나눈 말의 핵심은

'너 왜 나한테 왜 사람대우도 않하냐'

'그 일이 있은 후 당신이 한 마디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였다.

 

싸움을 통해서지만 거의 6년만에 둘 사이에 접점이 생겼던 시간이었다.

 

싸움이 있었던 짧은 시간에 화를 내고 있었지만

약간의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던 앙금은 생각보다 깊었고

그도 자신감 혹은 자존감은 남아있었다.

근사한 회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감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아니 서로 외면했다.

어쩌면 서로 수컷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를 보면 늙은 수컷의 비참함을 보게 된다.

대화를 소통을 할 지 모르는 늙은 수컷

그러기에 없는 권력이라도 쥐려고 하는 발악

 

한 때는 거칠 것 없었는 데

지금은 잠시라도 여성에게 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

그래서 삐뚤어지는 수컷포유류(남성)의 나약함

 

그의 모습을 보면 측은하다.

측은함은 그의 모습이 나에게 있기때문이다.

대화와 소통의 무능함을 삐뚤어지게 표현하는 나약함과 포악함이 내 안에 있기에

그래서 더 증오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욕하면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방어기제

 

그 사람과 얼만 전 싸움이 '붙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후회하고 있음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지독한 방어기제

 

언제가는 나도 거죽만 남은 수컷의 추한 모습을 보일 것같은 두려움에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두렵다.

가장 큰 두려움을 타자화시킴으로

존재하는 나의 자존감이 두렵다.

 

그래서 그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아버지'라 부르지 않으며

눈도 쳐다보지 않는다.

 

그게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미안하고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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