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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17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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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10/17
    일상의 찬미(발견) - 세편의 영화, 만화(2)
    투덜 투덜
  3. 2006/10/17
    정말 훈훈한 기사구놔(2)
    투덜 투덜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인자는 몬참거따.

더 있다가는 성격파탄자될꺼가터 (지금도 까칠한 성격이지만)

지겹고 짜증나고 화나고 무기력하고

점점 안하무인, 안일함, 무성의, 씨니컬해지는 나

 

느그들이랑 이제 고만 놀란다.

느그들이랑 내가 잘 놀아줬는지는 몰것다.

느그들이 나랑 잘 놀아줬는지도 몰것다.

느그들에 대한 원망도 없다.

느글들에게 미련도 없다.

느그들이 나한테 잘못한건지, 내가 느그들한테 잘못한건지, 쌍방과실인지 몰것다.

아니 그닥 관심없다

 

다만 때가 된거다.

남은 것은 느그들과 '빠빠이'를 준비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뿐

 

 

 

여기서 이승환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가사를 곱씹어보자.

 

자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지
....
있을 때 잘해주기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게
00에게 감사하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
구차하게 굴지 말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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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찬미(발견) - 세편의 영화, 만화

추석연휴를 맞이해 서울에 상경해 잼난 영화를 보려했다.

(소수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지방인의 비애란...)

일단 꼬친게 '귀향'과 인디포럼에서 하는 '브라질 영화제'였는데

'귀향'은 두차례 방문했으나 표가 없어 허탕, '브라질 영화제'는 이미 끝나버렸다.

 

그래서 본 것이 '라디오 스타'와 '댈러웨이 부인'이었다.

'이틀 연속 본 영화 두편 다 분위기가 비슷했다.

 

일상에 대한 애정, 별거없는 삶에 대한 찬미 - 이 정도랄까

 

'라이오 스타'는 한물간 스타와 그의 매니저의 추루한 삶에서 약간의 성공을 겪지만,

그 둘의 관계지속을 통해 고루한 삶을 위로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파티여는 것이 다인 상류층부인의

내적변화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성의 발견을 찬미한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나에게 따뜻한 두 편의 영화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두편을 다른 시기에 봤으면 모르는데, 이틀 연짱 보다보니 '일상의 찬미'라는 것이

현재에 그냥 자빠지게 하는 것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버렸다.

(그런데다 도발하는 영화인 '귀향'을 보고싶던 생각이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겨버렸다.)

 

곤데 요 찜찜함을 날려 준 한편의 만화를 추석연휴 끝나고 만나게 되었다.

유시진의 '그린빌에서 만나요'

 

 

한 고등학생의 성장기이자 환타지만화다.

 

주인공은 자폐적이며 사람과의 관계 맺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주변과 마찰을 피할 정도의 유두리는 가지며 살아가는 소년이다.

그 소년이 오묘한 분위기에 두명의 남매를 만나면서, 친구들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고

아이에서 성년을 맞이하는 성장하는 굳건한(?) 소년의 모습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이 만화도 두편의 영화처럼 큰 사건없이 소소한 일상을 재해석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동일하게 고루한 삶을 찬미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두 영화가 마음(자세)의 변화나 기존 관계의 유지를 통해 일상을 발견한다면

이 만화는 자신을 서서히 변화(발전)시키고, 기존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일상 발견을 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갑자기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같은 뽕맞은 결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성장기물을 좋아라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체의 변화를 통한 일상에 대한 찬미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용과 꼭 맞아떨어지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

세필화같은 내적변화의 서술이 매력적인 만화였다.

 

그리고 인간관계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쿨'함으로 위장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많지 않은 나의 성격과

비슷한 주인공의 변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아주 깊게 되어 본 만화였다. 

 

철저하고 섬세한 자기성장이지만, 괴롭거나 무겁지 않은 성장통

별볼일 없는 일상에 대한 찬미이자 일상의 재발견

내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운동권들은 언제가부터 일상의 정치, 자기혁신을 통한 운동의 변혁을 외치고 있지만

(개인적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운동권이 아닌 자들을 못 따라가는 것만 같다.

아직까지는 일상성의 정치를 내면적으로 실천적으로 구현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

 

 

ps

간만에 '유시진'의 완간 단행본!

'유시진'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급구매하기를 너무 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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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훈훈한 기사구놔

 '반전 주의자' 델가도의 첫 PS 맹활약

 

[민기자닷컴 2006-10-17 07:10] 

 


정확히 13년이 걸렸습니다. 1993년 10월1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대타로 빅리그에 데뷔한 이래 1711게임을 뛰면서 407홈런, 1287타점을 올린 후에야 그에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뛸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루키’인 카를로스 후안 델가도(34)는 연일 맹타를 휘두르면서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WS)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선봉에 서 있습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메츠와 LA 다저스 간에 벌어진 NLDS 1차전에서 델가도는 홈런 1개를 포함 5타수4안타 2타점의 맹활으로 6-5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빅리그 역사상 포스트 시즌 데뷔전에서 4안타를 친 5번째 선수가 됐습니다.


(중략)


델가도는 자신의 생애 첫 포스트 시즌에서 정말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7게임 성적은 29타수 12안타로 4할1푼4리에 4홈런 11타점. 이 기세라면 메츠의 포스트 시즌 타격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9타점, 한 경기 5타점, 3홈런 등은 이미 메츠 팀 타이 기록입니다. 메츠는 카디널스와 적어도 두 게임을 더 치러야합니다.


(중략)


델가도의 파괴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요. 지난 1996년 블루제이스의 풀타임 1루수로 활약하며 25홈런을 기록했던 델가도는 다음 해 정확히 30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그 이후 올 시즌까지 10년 연속으로 30개 이상의 홈런을 쳤습니다. 10년 연속 30+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역사상 4명뿐입니다.


지난 8월에는 부시스타디움에서 제프 위버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의 생애 통산 400번째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한 것은 델가도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9월 빅리그 사상 15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한 경기에서 4홈런을 터뜨린 선수가 바로 델가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델가도에게 늘 관심이 가는 것은 야구 실력뿐 아니라 그의 야구외적인 활동과 신념,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 베풀고 사는 삶의 실천력 때문입니다.


지난 2004년 델가도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적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웅 로베트로 클레멘테(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야구 영웅으로 1972년 겨울 지진 난민들을 도우러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를 깊이 존경하며 자란 델가도는 인권운동과 평화주의자이며 사회 봉사활동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는 선수입니다.


911 참사가 터지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며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던 당시 델가도는 빅리그 경기 중 7회초가 끝나면 장내에 ‘갓 블레스 아메리카’가 울려 퍼질 때 모든 관중들과 선수들처럼 기립해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는 덕아웃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4년 7월 토론토 스타지에서 이 사실이 기사화됐는데, 델가도는 인터뷰에서 “911 참사는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전쟁에서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슬프다. 나는 이라크전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전쟁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 후에 다른 인터뷰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한동안 원정 경기 때마다 성난 미국 관중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습니다.(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기 때문에 델라도도 미국 시민입니다.)


양키스타디움에서 가장 격렬한 야유를 받은 직후 델가도는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7회 중간에 덕아웃에서 홀로 침묵하던 델가도는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올 시즌부터는 7회 중간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도열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드 이전에 그 문제에 대해 메츠 구단에서 강력하게 델가도에게 요구를 했지요. 911 참사가 일어났던 도시 뉴욕, 그리고 정말 극성스런 언론과 팬들이 버티는 그곳에서 델가도가 계속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더라면 트레이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면 아쉬운 점도 있지만, 델가도의 의지가 충분히 세상에 전달됐다는 생각도 합니다.


델가도가 공개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0년대 초반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폭격장 반대시위였습니다. 미 공군의 폭격장 사용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과 생태계의 큰 피해가 속출하자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델가도는 2003년 폭격장이 폐쇄될 때까지 시위에 적극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엑스트라 베이시스(Extra Bases)’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고향 인근의 불우 아동들을 돕는 기금 모금 등으로 벌이고 있는 델가도는 지역 병원을 찾아 어린이 환자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고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야구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소중한 의무감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평화와 전쟁 반대 등을 위해서는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 굽히지 않는 용기를 지닌 델가도는 참 부러운 스포츠 영웅입니다.


참고도 델가도가 클레멘테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소개합니다. 올해 초 WBC가 열린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프에르토리코 팀에서 뛰겠다고 밝혔던 델가도는 자신의 국가대표팀 유니폼 번호가 21번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WBC 조직위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선수와 배번을 정하면서 델라도에게 바로 그의 영웅 클레멘테가 현역 시절 달았던 번호를 배정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는 21번은 오직 클레멘테에게만 속해야 한다면 변경을 요구했고, 결국 주최측은 25번으로 새로 유니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리를 다쳐 WBC에 뛰지는 못했지만 델가도라는 인물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델가도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993년 시즌 막판에 빅리그에 승격된 델가도는 포수와 대타로 딱 두번 경기에 뛰었습니다. 성적은 2타석 1타수 무안타 1볼넷.(델가도는 원래 포수였다가 1루수로 전향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블루제이스가 WS 챔피언에 오르면서 델가도에게도 반지가 주어졌습니다. 본인은 경기에 뛰지도,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어쩌면 가슴 아픈 우승 반지였습니다.


현재 카디널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고, 또 NL 챔피언에 오른다 해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막강한 AL 챔피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꺾어야만 델가도는 대망의 WS 챔피언에 오를 수 있습니다.분명히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 없이 메츠는 그 길을 뚫고 나갈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같은 푸에르토리코의 스타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메츠를 이끌어가고 있는 4번 타자 델가도. 만약 메츠가 WS에 오른다면 델가도와 타이거스 ‘총알 투수’들과의 대결만으로도 큰 흥미를 불러올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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