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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국미사따위 믿지 않는다.

1.

 

엄마는 모태 신앙이시다.

엄마의 엄마 또한 모태 신앙이시다.

하기에 나 또한 모태 신앙.

사실 몇 대를 이어온 뿌리 깊은 천주교 집안이다.

주일마다 미사를 빠진 적이 없었고 하다 못해 수능 전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평일미사에 나가 주일 미사를 빠진 것에 대한 고백성사를 보기까지 했다.

오, 아멘.

 

2.

 

대학 새내기 시절.

엄니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을 세 가지 정해 주셨다.

학생회, 학회, 풍물패. -_-;;

그러나 나는 학생회와 학회에 들었다.

동시에 나는 수녀님과 어머니의 권유로 주일학교 선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학회에서 하던 세미나 책을 엄니의 불심검문에 의해 압수당했다.

머지 않아 모 투쟁에 결합해 있는 동안 구로서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기까지 했다.

뭐, 부모님에게 한동안 아작나게 되었다.

장학금 받겠다는 조건으로 학생회 활동의 여지를 남겨 주셨고 내 대학생활의 여러가지 경험 중 하나의 차원으로 눈감아 주셨다.

 

3.

 

당시는 철거민 투쟁이 한창이었다.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생존권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했던 사람들.

나는 학교 선배들을 따라 철거민 투쟁에 결합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청량리에서 시꺼면 전경들과 청색 백골단을 마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탑 망루--골리앗에서 한분이 떨어지셨다.

아직 아이들은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핏덩이들이었다.

용역깡패들이 몰려왔다.

언제나 그랬듯 전경들은 용역깡패를 비호했다.

골리앗에 불길이 치솟았고 급기야 망루 꼭대기까지 화마가 덮쳤다.

열사는 떨어졌다.

그리고 죽.었.다.

 

아직 어린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박살나 있었고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몇 푼 쥐어주는 돈 받아들고 또다른 달동네를 찾아가면 될 문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몬 자본가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경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4.

 

주일이 되어 성당을 찾았다.

내 또래의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모두가 대답이 하나같았다.

" 죄다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야. 너도 괜한 꼬임이 넘어가지 말고 그냥 성당에나 열심히 나오렴."

역겨웠다.

넘기던 술잔을 면상에 던져 주고 싶었다.

다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이유로 홧기를 참아낼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종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대리인이라 했던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했다 하고, 가난한 자의,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라고 했는데 그 종료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불똥은 엄니한테 튀었다.

성당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한테 미사 중 신자들의 기도에 철거민에 대한 기도를 넣으라고 했다.

엄니는 나의 고민을 받아주셨다. 

하지만 엄니 또한 후폭풍을 맞았다.

" 왜 그따위 기도를 넣었냐고."

 

나는 며칠 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것은 내가 18년 동안 알았던 하느님이 아니었다.

그 하느님의 종이라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 따위를 내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이 국가의 폭력에 죽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주일미사.

교사 회의에서 나는 허위에 가려진 기도로 자신의 양심을 숨기고,  하느님을 방패 삼아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소를 퍼부었다.

 

" 내가 알고 있는 종교가 현실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 당신들처럼 기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매일같이 기도하겠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 세상의 약자를 위해 살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는 성당안이 아니라 성당 밖으로 나가겠다."

 

소문은 성당에 삽시간에 퍼졌고 한차례 신부님과 수념님 한분과 언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엄니는 묵묵부답.

 

다만,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편지로 남기셨다.

 

 

5.

 

그리고 어머니는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6.

 

난 시국미사 따위 믿지 않는다.

선을 가장한, 민주주의를 가장한, 그런 시국 미사 따위는 믿지 않는다.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몰아낸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국민적 저항을 무마하려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난 그저 가장 약한 사람, 그러나 곧 세상의 주인이 될 가장 낮은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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