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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부적응 모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다.

복학한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

 

교정의 기운은 겉보기엔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그대로이지도 않다.

무언가 말라가고 있는 느낌.

좋은 시설과 건물들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학교 이미지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현수막이 나풀거리지만, 딱 거기까지.

두툼한 책가방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과실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들, 축쳐진 어깨들, 그래서 다소 삭막한 느낌.

하긴, 뭐, 예전에도 그랬지만 더더욱 그렇다고 느끼는 건,

교정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삐뚤빼뚤 보기 좋은 솜씨는 아니라도 여기저기 걸려있던 피시들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시험에, 레포트에 허덕이는 건,

어쩄든 결정한 복학에 졸업만은 사수해야 한다는 일념때문에.

 

 

2. 적응 모드

 

이 나이에 복학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리고 뭐 자랑거리라고 이 곳에 상념들을 끄적이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적응모드에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

후배님들 덕(?)이겠지.

 

술한잔을 핑계로 간간히 찾아가 내 이야기도 풀어놓고 후배들의 고민도 듣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몫에 걸맞게 싸움을 준비하는,

그런 일상이 불과 몇 달전이었다.

이젠 허구헌날 얼굴 부딪히며 레포트다, 시험이다, 학회 사업 준비다, 학회 운영이다, 뭐다 해서 그들의 일상이 내 일상이 되어버렸고 내 일상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졸업과 내 앞날에 대해서만 시선을 박아 두자던 나의 다짐은 한 달 사이 금새 허물어진다.

 

사실 졸업과 동시에 펼쳐질 나의 미래가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 운동의 영역을 탐색하는 것이 될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될지, 아니면 적당한 곳에 취업하는 것이 될지, 그 어떤 것이 될지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마음 한 구석, 아직도 남아 있는 그 무엇은 나를 학교의 인재상에 적합한, 길들여진 사회의 부속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일까?

난 어느새 늙은 시어미마냥 아이들을 달달 볶는다.

캠 사정이 그닥 좋지 않고, 캠을 넘은 학생운동 전반이 우울모드인데다가, 전사적인 운동 또한 그다지 전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물음 따위에 이러쿵저러쿵 썰을 늘어놓기 보다,

단 하나, 그럼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게 잘못된 걸까? 그렇기 때문에 학회의 고유한 사업마저 이러저러한 거창한 조건과 배경을 이유로 폐기처분시켜야 하는걸까?

그렇게 반문하는 나.

분명 쓴 소리이겠지만 난 학회를 중심으로 복학에 적응되어 가고 있고,

아이들은 그런 나에게 익숙해져 간다.

 

 

3. 비플

 

새로 뚫은 술집의 사장님이 같은 캠의 85(86?)학번이라고 한다.

우리의 대화가 마냥 신기했는지 아직도 이런 학생들이 있어 반갑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는 조금 씁쓸하다.

무어, 사장님도 그러겠지.

무용담은 사절이라구요.

 

 

4. 에피소드

 

모든 것이 에피소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캠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에피소드.

자괴감이 든 것은 수차례, 자책은 여러번.

끄적이다 로그아웃을 클릭하기 수차례.

하지만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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