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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리고 지금

 

 

# 1

 

양 옆의 그림... 싸이로 치면 스킨이라고 해야 하나.

우찌 되얐든 배경화면은 98년 메이데이를 메웠던 종로의 풍경이다.

아직까지도 선명한 기억.

430의 기억은 가물하지만 유독 종로의 풍경은 뚜렷하다.

 

이제 막 선배랍시고 이것저것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던 시기, 그러나 제 운동의 입문길에서는 망설이던 시기, 과감히 한발 내딪지 못하던 시기, 그러나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던 철거민 투쟁으로 충격을 받고 있던 시기, 다시 그러나 나의 안위를 돌아보던 시기, 아직은 너무나 철없고 어리기만 했던 그 때..

나는 간간히 접해왔던 학생들의 투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각목과 하이바를 보았다. 쇠파이프를 보았다.

메이데이 집회를 뒤로 하고 종로 바닥에 드러누운 금속 동지들의 깡따구를 보았다.

하나같이 눈에는 불을 켜고 위풍당당히 종로 거리를, 충무로 바닥을 누비는 노동자 투사들을 보았다.

바둑모양 종로바닥 저 한켠에서 대오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동지들이 하나둘씩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적 기억, 투쟁의 기억들은 여전히 단편이다.

 

 

# 2

 

이제 시간이 꽤 흘렀다.

많은 투쟁이 있었고 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거름이었다. 내가 한발, 다시 한발 내딪을 수 있게 했던 자양분이었다.

한 때는 책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었다.

노동계급의 이해를 온전히 습득하기 위한 노력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사회주의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맑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그런 나에게 질책을 가하고 있었다.

어줍잖은 인텔리겐챠의 습성이 너무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 3

이제껏 운동의 삶을 거치면서 새삼스레,

"과연 내가 운동이란 것을 하고 있었는가"

라는 의문이 덮쳐온다

최소한 자기 주변을 바꾸는 것이 운동이라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말이다.

과연 그러했는지 말이다.

나는 입으로만 떠들고 있었는지.

나는 주변에만 머물고 있었는지.

나는... 말이다.

 

 

# 4

 

짜증이 밀려오는 시기가 언제부터인지 생겨버렸다.

시야가 불투명해서 일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내성이 생겨버리는 이 생활에 그야말로 짜증이 생겨서일지 모른다.

솔직히, 해야할 것은 명확함에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답답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5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그 계기나 방법은 각자의 것이 다 있게 마련일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렇게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꺼나...

오늘도 이래저래 한숨 푹푹 내 쉬어가며 잠자리에 든다.

 

 

가장 답답한 것이, 길이 보이지만 길이 안보이는 것.......

그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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