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크레인 동지들, 그리고 나

# 1

 

잘렸다.

좀 개겼더니 가차없이 자르더라.

파견노동자였던 나는 파견인력업체에서 해고통보를 받은 게 아니었다.

심하게 관리자들과 싸운 그 날, 원청 관리자들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죽도록 부려먹었다.

그래서 생산량좀 줄이라고, 휴게/점심/석식시간에는 밥도 먹고 쉴 수 있게 라인을 중단하라고, 수도 없이 개겨댔다.

정말 12시간을 꼬박 일하고도 모자라 맞교대를 강요하는 관리자들과 허구헌날 부딪혔다.

특근 안할라치면 압박과 강제를 일삼는 그놈의 회사덕분에 퇴사한 녀석들도 더러 있다.

같이 일하는 우리들, 우리 모두는 정말 열이 받아 있다.  

그러나 우리들,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쉽게 일어서지 못한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잡힌 교육과 조회시간에는 그러한 불만들을 "달래려는" 건지,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해줄 것을 주문한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살지 않겠냐는 자본가 개들의 멍멍소리는 지겹도록 듣는다.

조금 더 많이 생산할 것을 주문하고, 조금 더 불량을 내지 말고, 조금 더 불량을 잡아내라고 짖어댄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살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교육/조회시간.

80~100명의 작업자들 곳곳에서는 끄덕이는 머리통들이 보인다. 조금 암울하다. ㅡ.ㅡ*

 

아따. 답답한지고. 그래, 어디 깨야 할 것이 한 두개이겠냐. 시작이 반이라 했다.

틈틈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제도 정말 다양하다. -_-;;

그런데 몇몇이 모여앉아 이야기좀 할라치면 관리자 놈들 어느새 달려와 훼방을 놓는다.

화장실에서 애들이랑 수다좀 떨라고 하면(우리는 대부분 화장실에서 회사나 관리자들을 씹어댔다. 담배한대 물고..) 다른 동료들에게 우리의 뒤를 캐묻는다. 정말 지랄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각 파트별로 라인별로 관리자들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들썩거림, 그 날카로운 신경들, 그 조용한 소란스러움.

난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러나 완전히 찍힌 내가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자, 동료들이 그새 움츠러든다.

어쨌든 먹고 살기 바쁜 그들, 너무나 젊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고, 한 달 생활도 벌어먹는 이 월급으로는 빠듯한 그들.

순간, 나에게 "해고되어서 안되었다"는 동정의 눈빛을 날리지만, 그것은 나와 한편이 되었을 때 닥칠 두려움의 눈빛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한 일이라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던 몇 달.

 

 

# 2

 

잘린지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어간다.

덕분에 시간적 여유(-_-;;)가 생겨 여기저기 집회도 다녀보고, 한동안 못봤던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여의도도 다녀왔고, 명성에도 다녀왔다.

정말 죽을 각오로 타워크레인을 점거한 네 명의 동지들의 투쟁소식을 접했고, 반대로

보기 싫은 민주노총 관료들의 작태를 어김없이 보기도 했다.

이에, 어떻게든 총파업을 사수해야 한다는 이들의 처절하지만 또렷한 호소를 듣기도 했다.

해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동지들 중 한 동지가 끌려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얼마되지 않은 현장 경험이지만, 현장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가 너무나 많이도 고민된다.

현장의 요구와 불만들이 무엇인지 주의깊게 살피고, 나아가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말이 쉽지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곳곳에 널려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도 문제이거니와,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 자체가 전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투쟁이 머뭇거려지는 것, 투쟁이 소모적인 것, 결정적으로 투쟁이 두려운 것이 되었을 떄는 그약말로 작살난다.

그래서 가장 소소한 불만이라도 그것은 집단적 행동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조직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투쟁 속에서 반드시 나타날 적들의 이데올로기적/조직적 공격들을 방어하고 외려 그러한 악선동과 침탈을 공세적으로 뚫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육과 선전도 필요하다.

 

현장 곳곳의 사정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총파업 사수에 대한 확신이 현장안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민주노총의 수도 없는 거짓말과 입바른 소리에 질려 더 이상 상급의 지침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패배감과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도 없는 패배 속에서 다시 일어서지만 되돌아오는 건 동지라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다면, 나 같아도 다시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기 힘들 것 같다.

 

바닥난 운동적 신뢰, 산산이 부서진 동지적 애정, 점점 부르주아 관료체제로 물들여진 운동판, 이 모든 것을 갈아엎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제로로 떨어졌다.

다시 일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운동의 전투적 부위가 살아 있다면,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다면, 자신의 주위로 동료를 조직해야 한다.

 

선도투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적 지원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크레인 위의 동지들의 결의는 정말 소중하다.

사수되어야 한다. 기필코.

네 동지의 결의가 자기희생으로 마감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하기만 해도...

 

 

# 3

 

이제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_-;;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들, 고민들이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

여의도 투사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