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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한민국이 점점 더 무섭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글들이 있다. 논리적이고,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글 들 말이다. 하여, 나까지 이번 황교수 사태에 대해 또 떠들 이유는 없지만 하도 갑갑해서 뭐라도 주절거려야 할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두서없이 되는데로 떠들 생각이다. 엉뚱한 얘기도 섞어서 말이다. 뭐 색다른 얘기는 없으니 대략 요즘의 사태를 파악하는 분들은 읽을 필요 없을 것 같다.

 



MBC가 사과함으로써 피디수첩의 완패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언론의 취재윤리를 저버린 피디수첩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국민적 영웅을 감히 언론 따위에서 검증하려 해?"라는 식의 코메디에 동의할 수는 더더욱 없다.

 

안타까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피디수첩이 황교수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윤리적 논란이 되는 문제였고, 그걸 계속 부인하다가 나중에 할 수 없이 시인한 것도 큰 문제였다. 난 그걸 기화로 심도있는 생명윤리 문제가 논의되길 바랐다. 그런데 피디수첩에서 연구자체의 진실여부를 문제 삼으면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고, 아직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여론은 이미 황교수의 연구가 진실임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래, 사실이겠지뭐.(아니 사실일 가능성이 꽤 높지) 설마하니 황교수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기칠만큼 대단한 인물이었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황교수의 연구가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미 그의 연구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한 말이다. (사기친 거라면 옳고 그름을 논할거나 뭐 있겠나? 물론 그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밝히려 노력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의무다. 다만 방법이 정당해야지)

 

오늘 난자기증의사 전달식이란걸 했다고 한다. 무궁화가 어쩌고 저쩌고, 진달래가 등장하고... 그걸 보고 근래 보기 드물 게 우울해졌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에 더 우울해졌다.

 

이제 상황은 "황교수의 연구가 진실임이 밝혀졌으니 전폭적으로 그를 밀어줘야 한다" 쪽으로 몰려갈 것이다. 생명윤리 문제를 제기하면 "넌 그럼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막을 셈이냐?"라며 아예 논의 자체를 막아 버리는 무서운 일들이 발생하는 거다. 고리타분한 윤리문제로 난치병 환자를 저 버리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부치면 되는 거지뭐. 세상에 이렇게 쉬운 싸움이 또 있나?

 

그래 까짓거 매국노도 됐는데 파렴치한 인간 한 번 더 되지 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개발할 때도 명분은 대따 멋있었다. 생산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하는 슈퍼곡물이나 슈퍼 돼지 등을 운운하면서 '드디어 전세계 기아가 해결 될'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런데 세계의 기아문제가 생산부족의 문제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건 분배의 문제다.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농산물은 전세계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의 거대 메이저 곡물 회사는 농산물이 과잉생산되면 가격하락을 염려하여 바다에 대량으로 폐기할 지언정 가난한 나라에 주지는 않는다. (물론 유엔을 통해서 미국정부가 생색은 내지)

 

세계에서 숫자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병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아니라 '설사병'이라고 한다. 희생자의 거의 대부분은 가난한 제3세계 어린이이고 말이다.

 

현재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조류독감이 무서운 이유는 치료방법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냥 약만 먹으면 낫는 병이다.문제는 그 '약'이 특허에 의해 보호받고 있어 독점생산되고 있으며, 조류독감이 급속히 확산되면 게네들 혼자만의 생산력으로는 약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어서 무서운 것이다. 수많은 인류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기업의 독점적 이윤은 보장해야한다는 엿같은 자본주의 정신 때문이다. 자본주의 만세다.

 

황교수의 연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을 사람은 극소수 가진자로 한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하면 꼭 이러는 사람들 있다. "아무리 소수라도 그 사람들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냐?"라는 따위의 저급한 반론 말이다. 누가 그렇다고 했나? 그럼 나도 같이 "그럼 넌 그 소수만 중요하고, 지금 현재도 수없이 죽어나가는 그 많은 사람은 안중요하단 말이냐? 그들을 위해 넌 뭘 했는데?"라며 똑같은 수준으로 진흙탕 싸움을 해야겠는가? 제발 싸우더라도 수준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진달래 이벤트에서 한 여성이 그러더군. "제 언니도 백혈병을 앓고 있는데 황교수님이 빨리 연구에 성공하셔서 저희 언니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가슴이 정말 묵직해 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정에 가슴은 아프다. 정말이다. 하지만 행여나 연구가 정말 빨리 진행되서 새로운 치료법이 나온다고 해도 그녀의 언니가 그 혜택을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녀의 집안이 그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 행여 그녀는 다행히 돈이 많아  치료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치료법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그 많은 사람들은 뭐라고 위로하지? (물론 그러니까 다 같이 치료하지 말자고 말할만큼 바보는 아니다.)

 

내가 아는 분의 남편이 몇 달 전 백혈병으로 죽었다. 안타까운 것은 치료비용이 엄청나서 아예 시도도 못해본 치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치료법조차 돈이 없는 사람에겐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방법이 없으면 미련이라도 안남지)

 

물론 "없는 사람이야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치고, 있는 사람만이라도 치료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잘살건 못살건 온국민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요즘의 분위기는 정말 저질 코메디도 아니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뉴스에서는 이번 황우석 파동을 계기로, 생명윤리 때문에 연구에 소극적이던 다른 나라들이 자기들도 체세포복제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난치병 환자를 고치지 않으려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나?)  인류를 위해 그렇게 좋은 연구라면 그걸 우리가 해내던 남이 해내던 무슨 문제겠는가. 기왕이면 우리가 해내는 게 좀 더 자랑스러운 것 뿐이지, 그 경사스런 일을 남이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말이나 되나 말이다. "꼭 우리가 한 몫 단단히 잡아야 하는데..."라는 절절함이 베어있을 뿐이다.

 

황교수 자신은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믿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생명공학 연구는 굉장히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거기에 돈을 대고 있는 사람도 모두 숭고한 정신으로 투자하고 있는 걸까? 내 인간성이 삐딱해서 그 숭고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걸까?

 

황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성공만 하면 대박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언론에서도 경제효과가 수십조니 수백조니 하며 떠들고 있지 않은가? 값싸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한다면 그 정도 경제효과가 있을리 있겠는가? 경제효과가 그렇게 엄청나다는 말은 바꿔서 말하면  "치료비용이 엄청나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큰병이 날수록 치료비의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현재 우리의 의료 체계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되는 거다 '치료법이 있는데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어서 모든 재산 다 털어서 치료비 대고, 빚까지 내서 간신히 살리긴 했는데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의 삶이 망가지고 마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나마 빚이라도 낼 수 있다면 말이다. 뭐 부자들이야 상관 없는 얘기겠지.

 

기사를 보니 난자기증자를 모집할 때 난자채집 과정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것 역시 굉장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크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미 황우석 신화에 뭍혀서 윤리라는 문제는 실종된 지 오래다. 황교수의 체세포 복제가 필연적으로 인간복제로 연결될 거라는 사실은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연구과정이던, 아님 연구가 성공을 해서 실제 치료에 적용이 되던 간에 막대한 숫자의 난자가 필요하고, 그 많은 양의 난자를 지금의 반짝 분위기에 힘입은 자발적 기증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골수만 이식하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골수 기증자가 너무 적어서 죽어가고 있듯이 말이다)  결국 난자는 불법이던 합법이던 매매될 것이고, 생활고에 쫒겨 장기를 팔 듯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판매자가 될 것이다. 그러다 가난한 동남아 여성들의 난자도 대량으로 들어오게 될 수도 있고.

이미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에서 상품화 되었는데, 이젠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자본주의 만세다. 억울하면 부자되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얘기를 길 게 썼다. (사실 너무 짜증나서 나도 관련기사를 잘 읽지는 않는다.) 하도 갑갑해서 그렇기도 하고,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 중엔 바빠서 일일이 이번 이슈를 챙겨볼 수 없는 사람도 있어서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역사의 흐름을 통해서 과학은 종교의 맹신을 극복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요즘은 과학 자체가 종교가 되고 있는 듯 하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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