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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송탄

지난번 눈이 많이 온날 가게안에서 찍은 집앞 풍경이다.

애들이 좀 이상하게 생겼지?


그렇다. 우리집 앞엔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교회가 있다.

 

집에서 몇분만 걸어가면 미군부대 정문이 나오고

이젠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길에서 미군들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

그런 곳 송탄에서 난 어린시절을 보냈다.

 



우리동네 아이들은 고작해야 '헬로'밖엔 할 줄 아는 영어가 없었다.

사실 '헬로'도 아니고 '할로'라고 했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땡큐'까지는  했던 것도 같고)

 

대략 대여섯살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애들끼리 모여서 놀다가 미군이 지나가면 누구라고 할 것없이 "할로"를 목청껏 외쳤고

그러면 가끔씩 미군이 10원짜리 몇개를 던져주곤했다.

다들 그걸 서로 집으려 난리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때 10원이면 아마도 과자나 하드를 사먹을 수 있었던 금액이었을 게다.

그 미군은 낯선 나라의 코찔찔 흘리는 녀석들이 난리치며 동전을 줍는 모습이 재미있었겠지.

 

그때 우리들 무리중엔 내또래보다 두세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우리에게 이런 비장한 말을 했다.

 

"야, 내가 왜 이 돈을 이렇게 열심히 줍는 줄 알아?

내가 돈이 욕심나서 이러는 게 아니야.

저 할로들이(우린 미군을 '할로'나 '코쟁이'로 불렀다) 우릴 이뻐해서 돈뿌리는 게 아니다.

우릴 우습게 봐서 그러는 거지.

이렇게 돈을 주워서 어느정도 모이면 난 저놈들에게 똑같이 할거다.

10원짜리를 저놈들 코앞에서 확 뿌리면서 ....."

 

실제 그 형이 미군앞에서 동전을 뿌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랬을 확률은 0에 가깝다.

그 형의 말을 듣고 멋있다고 감탄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그 애들조차 그형이 실제 그렇게 하리라고 믿었을 것 같지는 않다.

자기 또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폼잡으며 대장노릇하고 싶어서 우리랑 놀았던 그 형이 그런 멋진 짓을?

 

그 이후로도 우리는 열심히 할로를 외쳤다.

10원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고

그 동전을 뿌리는 미군들이 구세주까진 아니어도

연중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산타클로스였다.

게다가 동네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교 및 TV에서는

미국이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지를 끊임없이 떠들어 댔으니...

(빡통까까 만세!)

 

실제 그당시 이곳은 미군부대가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게 미국의 '은덕'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됐고 말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같은 말은 사실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진보'블로그란 이름에 얽매여 무슨 '반미'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그냥 우리 동네 얘기(옛날 얘기, 요즘 얘기)를 가끔 올릴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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