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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촛불로 노무현 정권을 바로 잡을까?

사실 한겨레에 대해 대충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도 난 종이신문이 좋고, 한겨레가 조중동보다야 훨 낫기 때문에 아직도 보고 있다.

가끔 괜찮은 논조도 있지만 그에 버금가게 아주 깨는 논조도 꽤 있다. 놈현정부처럼 '신자유주의는 대세라 막을 순 없고 그 안에서 살아 남을 방법을 모색해야한다'라는 식의 글들 말이다. 때론 놈현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론 아직 우호적인 한겨레.

그런 한겨레도 이번 대추리 문제는 놈현정권이 정말 너무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꼭두각시 정권이란 용어까지 언급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한겨레에 미련을 남게 하는 이가 홍세화하고 손석춘이다. 오랫만에 손석춘의편지를 읽어 봤다.

 

 



“너무 슬픕니다. 평화를 지키려고 촛불을 든 바로 옆에서 현란한 불빛아래 평화를 즐기고 있는 현실이.”

   2006년 5월 7일 밤. 서울 광화문. 촛불을 밝힌 40대 후반 노동자가 눈을 슴벅이며 잔잔히 건넨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땅, 평택을 지키는 국민촛불문화제’가 열린 동아일보사 앞마당, 그 뒤에선 ‘하이 서울 페스티발’이 청계천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40대 후반, 건설노동자는 경기도 평택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황금 연휴’에 그는 대추리를 찾았습니다. 이 땅의 평화를 지키려고, 생명을 지키려고, 가족을 지키려고 갔습니다. 곧 곤봉을 휘두르는 군대가 투입된 현장에서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이틀 밤을 철창에서 보낸 뒤입니다. 7일 오후에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광화문으로 달려왔습니다. 40대 후반의 성실한 ‘노동자 시민’에게 촛불 주변의 ‘하이 서울’ 괴성은 슬픔일 수밖에 없었을 터입니다. 

   물론, ‘촛불 문화제’는 주최 쪽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휴일이었지만 3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젊은 대학생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솔직 합시다. 3천명은,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문화제’ 현장을 무관심으로 스쳐가는 젊은 시민이 숱했습니다. 청계천 물길을 관광하러온 사람들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탄핵 반대 촛불과 비교해보십시오.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었을 때, 촛불을 떠올려보십시오.

   노무현 정권은 기실 촛불 속에 태어났습니다.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은 노 후보에게 표를 주는 데 한 몫 톡톡히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언죽번죽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쳤을 때만 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탄핵을 받았을 때, 촛불은 다시 타올랐습니다. 어김없이 노무현을 지켜줬습니다.

   그래서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노동자는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 술자리에서 결기를 세우며 말했습니다.

   “촛불로 집권한 이 정권을 촛불로 끝장내야 합니다.”

   촛불은 새로운 집회, 신선한 시위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냉철히 톺아볼 때입니다. 과연 우리 촛불만 들어도, ‘문화제’만 펼쳐도 괜찮을까요.

   촛불은 상대의 양심을 밝히는 뜻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묻는 까닭입니다. 과연 오늘의 노 정권 내부에 촛불로 밝힐 양심이 남아 있을까요. 노 정권은 촛불 든 시민을 시들방귀로 여긴 지 오래입니다.

   보십시오. 26년 만에 곤봉을 든 군인이 시민을 구타하는 저 살풍경을. 주한미군의 다른 나라 ‘침략 전략’을 ‘전략적 유연성’으로 선뜻 합의해준 노 정권을. 그 ‘유연성’을 실전에 옮길 최첨단 미군 기지를 평택이라는 지리적 요충지에 대규모로 건설하려는 저들을. 그 침략 기지를 위해 애면글면 박토를 농토로 일궈온 늙은 농민들을 마구 몰아내는 저들을. 

   그래서입니다. 울뚝밸을 거듭 삭이며 묻습니다.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든 촛불은. 군 병력을 동원해 대추 초등학교를 박살내는 노 정권에게. 농토에 철조망을 친 뒤 군사보호구역이라 부르는 참여정부에게. 그곳에 가려는 시민을 곤봉으로 갈기는 저들에게. 촛불은, 우리가 든 촛불은, 과연 더 밝힐 양심이 있을까요. 과연 있을까요. 촛불로 노 정권을 바로 잡을 가능성은.

   명토박아 둡니다. 행여 시민의 무관심과 언론만 탓할 때가 아닙니다. 1970년, 80년, 90년대 내내 민주화운동은 언론권력의 여론조작에 흔들림 없이 맞섰습니다. 힘차게 거리투쟁을 벌이며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길을 열어왔습니다.

   그 길 위에서 오늘 우리 앞을 보십시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어 폭력적으로 미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정권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강행처리하려는 정권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싸워야 할 때”라고. 옳은 말입니다. 다만 덧붙일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싸워야 할 때입니다.   (기획위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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