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랫만에 블로깅을

요즘 나답지 않게 좀 바쁘게 사는 편인데 오늘 저녁 갑자기 여유가 좀 생겨서 모처럼 몇몇 블로그를 돌아다녔다.

요즘 한동안 '먹고 사는 것'에만 골몰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대해서, 혹은 구체적인 '생활'에 대해서 별 고민없이 살고 있었다는 걸 새삼 바쁘게 살면서 느꼈다.

각설하고, 블로그 대문에 올라온 글이 공감가서 퍼온다.

근래 나도 당원과 좁힐 수 없는 의견차이를 확인한 바가 있는데 그걸 여기에 쓰긴 그렇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냥 퍼오기만 하는 거라 트랙백 걸긴 뭣하고 홍실이란 블로거다. 직업이 의사인 걸로 안다.
덧글도 함께 퍼왔다.

--------------------------------------------------------------------------------------------------------------------



어제 시당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참가를 했다기보다... 미국/캐나다/꾸바의 보건의료 현황을 소개하는 간단한(?)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된 거다.

 

끝나고...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북한과 꾸바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북한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W 샘이 나 대신 현황을 설명해주셨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ㅜ.ㅜ

국가 중앙 병원이라 할 수 있는 평양적십자병원조차 전기공급이 안 되는 지경이고, 보건의료체계는 거의 와해된 수준이라고 말이다....

나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여러 샘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북한과 꾸바는 왜 다를까...

 

대재앙 수준의 자연재해와 미국의 금수조치라는 엄청난 시련 때문에 북한의 상황이 어렵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꾸바가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 연재해라면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허리케인이 눌러살다시피 하는데다, 바로 미국의 코 앞에서 30년 넘은 금수조치, 특히 90년대 초반 소비에트 몰락 이후 더욱 고삐를 조인 미국의 압박 때문에 꾸바도 무진장 힘들었다. 92년 이후에 한층 강화된 미국의 잔혹한 금수조치를 두고,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genocide'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었다.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다면, 꾸바에는 'special period'가 있었다.

 

꾸바 사회에서 독특했던 점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 동안 '인민의 삶'을 지키는데 최선 (최고/최대가 아니라)을 다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국가 그 자신'이 아니라.... 

절 대 포기하지 않았던 무상교육/무상의료 의제는 물론, 약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 투자, 농산물 수입을 대체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농업 육성...  그리고 심지어 더 가난한 남미 국가들에 대한 의사파견 지원사업은 멈춤이 없었다.

 

경제적 압력과 걸핏하면 무장공격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핵"이 아니라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민들이 다 굶어 죽고 아파 죽고 나면 ,

그깟 지켜야 할 조국이 무엇이고 혁명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북한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부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현재 민중들이 처한 고통을 자연재해나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리고, 좀더 개방적인, 이견을 허용하는 사회적 풍토도 꾸바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소비에트 유전학자 라이센코의 스캔들 (나중에 한번 소개해야지)은 전헝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지배한(자유주의자들의 비판), 그리고 환원론적 경직성이 변증법적 이해를 가로막았던(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 반과학 사건으로서, 교조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이와 달리 꾸바에서는 사회발전 방향, 개발 방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 투쟁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 직후에는 꾸바 사회의 교조적 경직성도 장난 아니었다고...  (레빈스 할배의 말씀) 시간이 걸려도, 주요 과제들을 인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까스트로 흉보며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쉬다가도 음악 나오면 앗싸~~~ 

 

글이 샛길로....

 

하여간, W 샘이 답변해주신 후에, 덧붙여서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짧게 피력했는데...

그 순간...

분위기 완전 썰렁~

 

몇몇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북한이 처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특수 정황론'을 들으면 두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선 유신정권의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한국식' 민주주의...

 

두번째는 내인생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인디...

일명 대자보 파손 사건이다.

학생 때 우리학교에서 전대협 출범식이 열린 적이 있다. "불패의 신화, 전대협"...

마지막 날 모여서 라이터불 번쩍이며 의장님 "옹립식"하던 그 전대협 말이다.

당시 학생운동 일각에서는 전대협이 보여준 '불패의 신화'니 '무오류의 역사'니 하는 식의 자기인식을 비판하는 의견이 팽배(???) 해 있었다.

우리 단과대학도 이런 취지의 대자보를 학교 입구 (우리 건물은 정문 들어서면 첫번째!)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했었다. 

당 시 대자보를 내가 썼는디....요지는 스스로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패'니, '무오류'를 이야기할 수 있나... 플러스 뭐 어쩌구저쩌구... (생각해니 상당히 시건방진 대자보구나... 지금 같으면 절대 못쓸...ㅜ.ㅜ) 

 

문제는, 이 대자보를 붙이기만 하면 누군가가 찢어버렸다는 거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어떤 단체의 현수막도 가운데가 '싹뚝'...

출범식이 열리는 2박 3일 동안, 나는 똑같은 대자보를 세 번 썼다. (길이도 엄청 긴데..)

 

똑같은 대자보 연속 세 번 쓰면서 슬펐던 것은

우리글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들의 의견을 담은 비판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찢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상황이 특수해서,

너무나 숭고해서 감히 비판조차 할 수 없는,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존재...

세상에 과연 그런게 존재하나???

 

속해있는 정파조직도 없고,

나 스스로 어떤 정파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지만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와 종교인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관념이 아닌 구체적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아닌가?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는 이미 넘어섰다고 이야기해버리면 할 말 없고....

 

뭐 어쨌든,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 분들이 베네수엘라에 열광하는지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로다....


왕팬  2007/03/17  
오, 기다렸던 글! 공감, 공감!
'핵'이 아니라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대자보 쓰면서 슬펐던 것은...비판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찢어버렸다는 사실...
근디 분위기 썰~렁 했다니...참, 내 원....
MCEscher  2007/03/17  
주로 쓰는 필명으로 덧글답니다. 이름 석자가 떡 박힌 문장은 비록 짧은 덧글이라도 유난히 부담스럽더라구요. ^^
저 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해명에 납득이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전반핵양키고홈을 외치던 사람이 어느 날 '특수한 상황'이므로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한다고 하면, (논술)논리적으로는 빵점이고 (정신)의학적으로는 '미쳤다'가 되겠고, (현실)운동이라면 '맛이 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개 북한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경우를 보면 '넌 상황을 잘 몰라서 그래'로 면박을 주는데 그러면 '그럼 당신은 살아봤냐'라는 가시돋친 반박밖에 할 얘기도 없겠죠. 이 때부턴 논쟁이 아니라 말싸움이 되구요. 북한 정권(특히, 김일성 김정일 세습 정권을 유지하는 군관조직)과 북한 인민을 동일시하는 착시부터 교정하는 것이 우선일 듯합니다. 그런데, 북미 2.13 합의를 두고 극우파는 극우파대로 '부시의 배신'에 치를 떨고, 극좌파는 극좌파대로 '김정일의 배신'(주한미군 주둔 용인 등등)에 공황 상태라더니 친애하는 주사파 여러분들은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당원이 아니라 내부 의견들이 매우 궁금해지더랩니다. ^^
아, 그리고 쿠바와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굳이 열심히 비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어차피 비교해서 설명하려고 해봐야 예의 그'특수한 상황' 얘기가 나오면 말짱 도루묵일테니까요. 저는 거울 이미지에 해당하는 남한의 존재가 쿠바와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든 차이를 무력화시키는 주체사상은 정말 포스터모던미학의 극단을 보여주네요. ㅋㅋ
NeoScrum  2007/03/17  
라이센코는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와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수치이자 오점 중 하나였듯 혀요. 그 개같은 짓거리때문에 굶어죽어간 인민이 얼마며, 두고두고 쪽팔린 건 또 어쩌고.. 문디 라이센코, 개자슥 스탈린.
백 보가 아니라 백킬로미터를 양보해도 쿠바보다 북한이 특수하다는 건 이만저만 심한 엄살 뻥이 아닐터인데 말여. 미국 바로 아래, 미국의 놀이터 멕시코의 옆, 미국의 뒷마당 극우 군사독재 정권이 결전가를 불러재끼던 남미에 둘러쌓여 조그만 섬에 고립되어있던 쿠바보다 중국에 착 달라붙어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실리를 챙겨왔던 북한이 도대체 특수하다면 얼마나 특수한 '고난'의 상황인지 진정으로 그들의 대가리가 궁금할 따름이지요.
홍실이  2007/03/17  
왕팬/어쩌다보니 북한에 대비해 꾸바의 장점을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꾸바가 정말 민주적이거나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접 보면 속도 상하고 가슴도 많이 아파요... ㅡ.ㅡ
MCEscher/" 남한의 존재" 설명에 저도 공감해요. 한편으로, 남한의 특수성도 바로 그 '북한의 존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아마도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요구나 투쟁 없이 국가에서 알아서 사회보험 만든 나라는 남한과 대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여간... '포스트모던 미학의 극단'이라는 표현이 아주 절절(!)하네요 ㅎㅎㅎ
NeoScrum/이 분들 이야기만 나오면 아름답고 고운 말이 쏟아지셔 (^^)
행인  2007/03/17  
오 오... 동감하는 본문에다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덧글들... 이런 풍성한 포스트, 막 부럽군요. 꾸바와 북의 차이,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되죠. 그런데, 이게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당 안에 너무 많죠. '김정일'이라는 말만 쓰면 왠지 거북한 얼굴을 하는 사람들, 주변에 여럿 있습니다. ㅎㅎ 핵으로 인해 미국이 북한에 무릎을 꿇었다고 믿는 사람들, 요즘 아주 화색이 화창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ㅎㅎ

-----------------------------------------------------------------------------------------------------------------

* 내 여친은 내가 주사파를 지나치게 증오한다고 뭐라 그런다. 극소수이고 세력도 별로 없는데 왜 그렇게 민감하고 적대적이냐고 말이다.  민노당 당원이 되보면 내가 왜 그런지 좀 이해를 하게 되려나?
뭐 민노당이 ''뚜렷한 이유없이 웬지 정이 안간다'고 하니 꽤 한동안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서두. 쿨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