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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얘기라기 보다는

<어느 네 팔 소녀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 >를 말하려다 샛길에 샛길로 마구 빠질 잡글

 

-샛길 1 : 애꾸 나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모네서 살았는데 내가 초딩일 때 사촌형은 고딩이었고, 내게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곤 했다.

그중 인상적인 말(이야기는 아니고)은 "애꾸 나라에 가면 두 눈 가진 사람이 병신된다."

형은 그 상황을 상상해 보라며 정말 재미있고  그럴 듯하지 않냐고 흥분에 가까운 상태로 얘기했고,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내 머리속에 각인됐다.

 

-샛길의 샛길 : 병신

'병신'이란 단어를 쓰고 나니 몇 년 전 군가산점 폐지 때 생각이 난다. 공무원 시험에서 군복무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헌재의 판결에 예비역들이 분노했던 사건이다. 싸움은 '남녀'간의 전쟁처럼 전개되어 나갔고, 여러 가지 논의들이 감정 잔뜩 실려서 오고 갔다. 여성민우회 게시판은 분노한 예비역들에게 점령되서 마비 일보직전이었는데 난 그 곳에 '가산점 폐지는 정당하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예상한데로 엄청난 (욕설이 듬뿍 담긴)  댓글이 올라왔고, 또한 예상한데로 상당수 글들에는 "너 여자인데 남자인 척 하는 거지?"란 내용이 들어있었다.

험악한 글 들에 내 글도 분위기는 좀 험악하고 냉소적이었는데,  문제가 된 부분은 내가 말한 이 부분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낸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시는 것 맞죠? 그렇다면 헌법재판관들이 왜 그런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렸을까요? 여성들의 힘에 굴복해서? 땡, 틀렸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을 낸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장애인'입니다. 일단 여성들은 논외로 하고 (군가산점 제도가) 장애인들에게 불평등했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 그들도 군대에서 썩지는 않았으니까 당연한 것이라구요? 아니면 장애인까지는 봐줄 수 있는데, 여자들은 장애인도 아니니 그 꼴은 못보겠습니까? 그 장애인이 원망스럽지는 않습니까? 병신이 지랄해서 괜히 여자좋은 일만 시켜준 것입니까?

그 글 이후 난 졸지에 "장애인=병신'이라고 보는 파렴치한 놈이 됐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과했다. 물론 그들의 엄청난 분노 때문에 "병신이 지랄해서 괜히 여자좋은 일만 시켜준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쓴 것이지만, 이런 저런 변명 안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다. 어쨌든 그 단어를 사용한 원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이런 거였다.

"당신은 장애인을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난 있습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주위의 반대로 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난 정말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장애인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당신 같은사람은 장애인에 관해서 얘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장애인에 관해 발언할 분들은 참고 하시라. "장애인을 사랑한 적이 없는 분은 입닥치고 계시라. 특히 뭔가 말하고 싶으면 이성 장애인을 사랑하라?"

 



 

 

영화속의 배경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또는 우리주위에 널려있는) 삭막한 도시의 한 건물이다. 네팔을 가진 소녀가 아파트로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그 '네 팔 소녀'가 그 '네팔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중의 상당수는 소녀가 기지개 펴는 장면을 보고서야 알았다. 당연히 약간의 웃음이...)

그 모습으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그 네팔소녀는...    자신의 두 팔을 자른다.

 

 

-샛길 2 : 조카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 큰 누나의 아들. 누나는 아주 아주 예전엔 염세주의자처럼 보였지만, 이젠 그 모습은 아니다.  전교조 교사이고, 민노당 당원이다.  내가 갖다 준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란 다큐를 본 적이 있고, 꼭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나 주민등록증이 나올 때가 된 자신의 아들(내 조카)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내 조카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자기 엄마와 삼촌(나)같은 부류의 인간그렇지 않은 인간 두 종류 말이다. 지 엄마와 삼촌은 그 이외의 인간들이 하는 말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말들을 자주도 한다. 자신의 학교선생도, 친구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모도 그리고 삼촌과 유전자가 같은 큰삼촌마저도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데 엄마와 삼촌은 다른 소리만 떠든다.

친구들은 "울 아빠가 그러는데 조선일보가 제일 좋데"라고 그러고, 선생은 모든 학부형에게  반 모든 애들의 성적이 나온 성적표를  발송했다. 자극 받아서 열심히 하라는 고전적인 레파토리가 아니다. 선생 왈 " 그 성적표만 보면 누가 수학을 잘하는지, 누가 영어를 잘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잖아? 너희들이 영어가 부족하다 싶으면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보란 말야. 수학에 자신이 없으면 수학 1등하는 친구와 친해지도록 노력해 보고 말이야. 그런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더 친해질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지"  
여러 가지 사건으로 담임에 대해선 포기한 지 오래된 조카를 실망시키는 것은 담임선생이 아니다. 자기반 애들 중의 절반 정도가 그런 담임을 존경한다는 것이고, 존경까지는 안하는 애들이라 하더라도 담임의 말을 타당성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삼촌! 그냥 모두 잊고 다른 애들처럼 생각하면서 살면 안될까?"

"음..... 될 것 같으면, 해 봐!  세상엔 비가역반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네팔소녀 얘기 2

 

흑백톤이고 (덩야의 지식을 빌자면) 스톱모션으로 언뜻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

영어단어들로 되어있지만 영어는 아닌, 말도 아닌 해설. 말도 안되는 영어를 반복하지만, 마치 그 때 그 때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양 느껴지는 설명들.

감독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데...

영화속의 네팔소녀는 네팔 때문에 신체적 불편을 느낀 것은 아니라는 게 기본 설정이다. 오히려 두 개에 비해 네 개만큼 쓸모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섞이고 싶어서 소녀는 팔을 잘라내고...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샛길 3 : 매트릭스

"젠장, 내가 그 때 왜 파란약을 먹었을까?"

매트릭스에서 싸이퍼의 대사다.

죽음과 싸움에 늘 직면해야하는 '현실'(그리고 진실)보다는 차라리 가짜 현실인 매트릭스를 선택하기로 한 싸이퍼. 물론 그걸 위해서 동료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을지지할 순 없지만 내겐 가장 설득력 있는 인물로 느껴진다. 어차피 기억을 지우고 나면 뭐가 진실인지도 모를텐데.

 

 

-네팔소녀 얘기 3

 

영화 마직막에  '소녀는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라고 나온다.

결국 그녀는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말이겠지?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면 비로소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받아들여지지도 못하면서 두팔까지 잃었으니 소녀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일까? 정말?

시도해볼만 가치는 조금도 없었을까?

(그럼 그렇게라도 해봐야 한단 말이야? 빌어먹을!)

 

 

샛길 4 : 오아시스의 공주

정말 말많았던 영화 오아시스.  

영화속 공주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장애코드로 문화읽기'모임에 오셨던 한 장애인 분은 그제서야 문소리가 진짜 장애인이 아님을 깨달았고,

영화보면서 원래 몰입 같은 걸 잘 안하는(못하는) 나는 그 때 '제기랄'을 외쳤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이거 영화인 거 나도 아니까 그렇게 홀랑 깨면서까지 알려줄 거 없거든"

장애인이라고 해서 강간하려했던 사람에게 연락하려 했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비판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공주' 장면은 장애인이 마치 '비장애인을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했다'는 욕을 먹었다. 이에 대한 나의 판단은 아직 없다. 앞으로 있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오아시스 얘긴 또 하게 되겠지.

 

마지막 샛길

드렁큰타이거의 최근에 낸 앨범에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라는 긴 제목의 노래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잠깐 봤는데 '네 팔'을 휘젓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뭔 의미로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전체를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애꾸 나라에 가게 되면 나도 한 쪽 눈을 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될까?  우리 나비는 꼭 데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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