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말 그대로 이것 저것

9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09
    기부문화 시비걸기
    무위
  2. 2005/01/09
    채식유감(1)
    무위
  3. 2005/01/08
    진보넷으로 이사오다.
    무위

기부문화 시비걸기

꼬리에 꼬리물기? 아님 횡설수설?

 

아름다운 재단이 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떴다"라는 표현만큼 적적한 걸 못 찾겠다. 참여연대 대표였던 박원순씨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지해 탄생한 듯한 아름다운 재단은 이제 방송은 물론 신문까지 밀어주고 있다. 아니 '기업'까지도 밀어주고 있다.현대증권인가에서는 TV광고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아름다운 재단을 광고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이미지와 접목시키려는 속셈이 너무 뻔해 보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아름다운 광고로 보이겠지.

뭔 문제가 있어서 난 이렇게 시비조일까?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곤 10원도 안내는 내가 이따위 소리를 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무슨 빈민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너무 뻔뻔한 거 아냐?)

 



자선문화가 자리잡히면 빈곤문제가 해결될까? 아니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는 될까?

 TV에서도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금을 받는다. 눈물나게 어려운 사람들을, 감정을 자극하는 멘트와 함께 보여줘서 사람들로 하여금 수화기를 들게 만든다. 공영방송이라는 취지에도 그럴 듯하게 맞는 것 같고, 전화로 돈을 낸 사람도 뿌듯함을 누리게 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걸 본 적이 있는가? 왜 가난이 대물림 되는지, 그렇게 아프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국가는 대체 뭘하고 있는지 따지는 걸 본 적이 있나 말이다. 할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소녀가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정부보조금이 끊기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 얘기할 뿐 무엇이 문제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TV 구석에 보면 성금액수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억대의 제법 많은 돈이 걷힌다. 시청 앞에도 사랑의 온도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부금 액수가 100억이 되면 온도계도 100도를 가리키게 된다나 모라나. (요즘은 정치던, 운동이던 간에 이벤트가 빠지면 안된다. 뭐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100억, 꽤 큰 돈이다. 숫자로 따지면 꽤 여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퍼센트로 따진다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100억이 매달 모이는 걸까? 아마도 올해 목표액일 것이다. 그래 까짓거 매달 100억 정도는 기부금이 모인다고 치자. 그 돈으로 얼마나 빈곤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간단한 산수 한 번 해보자. 독거노인이 60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한달에 10만원씩만 주려고 해도 600억이 필요하다.(매달 말이다. 그리고 10만원 갖고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그냥 생존이나마 가능한가?) 게다가 어려운 사람이 독거노인뿐인가? 경제능력이 없는 장애인은 몇 명일 것이며, 소년소녀가장은 또 한둘인가? 노숙자는 어떻게 할 거고, 고아수출은 대체 언제까지 할건데? 이걸 기부문화를 확산해서 해결하자고? 장난하나?

 

어쨌든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맞다. 좋은 일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장애인 센터를 운영하다가 자금 사정 때문에 문닫을 뻔 했다가 개인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다.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기부를 하거나 봉사하는 분들의 대부분이 훌륭하다는 것에 딴지 걸 생각도 없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다.

 

횡설수설, 노조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하종강이란 분이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이고 노조에 강연도 많이 다닌다. 노조원들 중에는 맑스니 계급이니를 체계적으로 말할 수 있는 먹물들도 있겠지만 그런 의식없이 그저 "노조에 가입해서 단결하여 싸우면 월급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의식만으로 노조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이런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하종강의 강연을 듣고 나면 감동을 한단다. 그의 강연내용을 무리하게 축약하자면 이런거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 같은 것에 동참했던 분들이 언론에서 게거품 물며 '이기주의'니 '기업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느니 하는 말에 마땅한 논리도 없이 속으로 죄책감 같은 것에 시달려왔는데 하종강의 그런 말을 들으니 얼마나 당당해 지겠는가. 하지만 하종강의 나머지 말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노조 지도부까지 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내가 지금 상관도 없는 것을 어거지로 갖다 부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쨌든

일반 소시민들이 자신의 수입의 일부를 떼어내서 남을 돕고, 소중한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분들에겐 오히려 존경을 표한다. 내가 지금 시비 걸고 있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여기서 '업'이란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문제 삼는 사람은 빈곤의 문제를 '자선과 기부문화의 확대'로 해결 하자고 '운동'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즉 그것을 운동차원에서 하는 사람, 또는 단체, 언론기관 등등을 말하는 것이다.

 

또 횡설수설? 이주노동자 이야기

참세넷에서 같이 활동하던(하는?)사람 중에 이주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인권운동가가 있다. 그분이 일하는 센터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런점에서 기부금은 매우 중요하다.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기부금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어쨌든 다시 돌아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데 이런거다. 아니 사실 이견은 없다. 그들은 이주 노동자도 우리와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이다. 원래 생각 그대로를 말했다가는 많은 기부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한다. 왜? 상당수의 기부자들에게 이주노동자란 "너무 불쌍해서 도와줘야하는 존재"일뿐 자신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센타의 문을 닫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기부자들에게 솔직히 말해야할까? 아니면 무슨 악마의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런 문제일랑 덮어두고 그 돈을 좋은데 쓰기만 하면 되는 걸까?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조차-아니 어떤 때는 그들이 더- 빈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번엔 신문 얘기?

중앙일보에서는 몇 달전부터 WE START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뭐 그런 운동이다. 오늘은 신문 1면에서부터 <달라진 기부 문화 치솟는 '사랑 온도'>라고 요란을 떨어놨다.운동의 부제도 멋지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자"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것과 얼마나 관련이 되는지 다소 황당하다. 그걸 보니 마치 이러는 것 같더군. "우리가 가난한 니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하잖아. 그러니 제발 분배니, 평등이니, 생존권이니 하면서 지랄들 좀 하지마." (물론 성격도 않좋고 중앙일보도 싫어하는 내가 오버한 게 분명하다)

 내가 못마땅한 것은 한겨레마저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꽤 한참 전부터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 같은 것을 장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협찬을 받는다.) 한겨레에 대해 이미 포기한 사람도 많다. 나도 한겨레가 대단한 신문이라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되는 '진보적 대중지'라는 모토로 밀고 나가는 신문의 한계이기도 할게다 (대중의 평균수준보다 앞서 나가는 게 진보인데 진보적 대중지라니!)  그나마 한겨레에는 이런 훌륭한 칼럼도 실렸다. (이 사람은 이렇게 짧은 글로 핵심을 파고드는데 난 왜 이렇게 길게 주절거릴까? 사실 이 글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다.)

 --- 중략---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복지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비용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 담당자들은 재정경제부 눈치를 보고, 시민단체들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산을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은 빈곤을 끝내는 게 아니라 연장하는 것이다. 구걸하다시피 해서 따낸 예산이나 기부금이 축소된 복지를 만회해 줄 수도 없지만, 빈곤에 대한 그런 접근이야말로 빈곤층을 사회적 부를 축내는 문제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며, 빈곤층을 양산한 자본과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빈민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왜 빈민운동이 없는가. 디파치오는 이렇게 답했다. 빈민을 돕고 대변한다는 자들이 무엇보다도 빈민을 양산하는 원리에 눈감으며, 빈민을 대신해 자본과 국가에 구걸해주는 선행으로 빈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세력화를 막았다는 것.

결국 빈곤을 둘러싼 투쟁에서 나오는 새로운 비전이 없다면 우리의 패배주의적 시각과 고갯짓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1% 나눔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진정 빈곤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 수익을 빈민들의 생계지원이 아니라,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을 향한 빈민들의 투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전문 보러 가기

 

자선과 빈민운동은 상호 모순관계인가?

 위에서 보았듯이 절대적인 모순관계는 아니지만 모순일 수가 있다. 그 것도 심각하게 말이다. 물론 빈민운동하는 사람이 이웃의 굶는 아이를 외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경우 아무런 모순은 없다. 황당한 비유로 들리겠지만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는 사람들에게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동물 갖고 난리냐?"라며 시비 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꽤 설득력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동조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주절거리겠지만 일단 변명?을 해보자면 이런거다. 동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람도 위하고 다른 생명도 위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강아지의 목숨도 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꽃을 꺽지 않는다면 이상한 건가?이처럼 상호 모순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빈곤의 문제는 이렇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더하면 한 얘기 또하는 꼴이 될 것 같으니 일단 그만둘란다. 졸리기도 하고 말이다. 전혀 정리가 안됐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할 것 같지는 않다. 할 수도 있고. 어차피 횡설수설이니까.

 

잔향-노을

* ps 오늘 신문을보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올해 801억의 성금을 모았다고 한다. 위에서 내가 말한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이 목표였나보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801억의 내용을 보면 무지 우울하다. 삼성 200억, 현대기아차 70억,엘지70억, SK70억, 포스코 70억 이런 식이다. 이렇게 기업체가 낸 성금비율이 87%이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업에게 구걸하는 단체인가? 게다가 기업들은 기부금을 내면 파격적인 세금혜택을 받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손해볼 것도 별로 없다. 기업 이미지 관리까지 생각하면 아주 남는 장사다 2004. 12. 2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채식유감

예전에 1년쯤 채식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써놓은 글이다. 채식을 해놓고 왠 '유감'?


난 채식을 한다. 사이비이긴 하지만 그래도 채식을 한다고 말할 정도는 된다.  엄밀히 말하면 눈달린 것은 먹지 않는다.

년초에 TV에서 채식을 알리는 프로그램 때문에 요즘 채식열풍이라고 한다. 그래서 좀 짜증난다. 내가 그들과 같이 취급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채식한다는 말을 될 수 있으면 안 한다. 민망해서. 근본적으로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한다. 나? 난 건강하고는 전혀 무관하다. 난 오히려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또한 건강에 좀 해로와도, 입에서 즐거운 것을 먹다가 좀 일찍 죽자는 생각이 크다.

또한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려면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해 식단에 무지하게 신경써야 하는데, 난 그럴 여력이 없거니와 별로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럼 난 왜 채식을 하는가? 누가 물어보면 일단 내 대답은 이거다.

"유난떨려고."

그런데 이젠 너도 나도 채식을한다고 해서 유난떨지도 못하게 됐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먹거리 양식이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날처럼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고기를 먹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동물들에게 몹쓸 짓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보신탕 먹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의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램이 한가지 있다. 고기맛을 좀 좋게 하려고 살아있는 개를 몽둥이로 패는 일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어차피 잡아먹을 건데 그게 뭐 어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는게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동물들에게 미안해 할 것까지야 없더라도 고마워하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채식을 하고 있는 주제에 채식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어쨌든 한마디 하고픈 말이 있다. 건강을 위해서 채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안이다. 물론 채식만 하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증거도 없다. 실제 채식만 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건강위해서 하겠다는데 말릴 생각도 전혀 없다.

얼마전 100분토론에서 채식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채식을 옹호하려고 나온 사람중에 한명이 우리과 선배인데 정말 인상깊은 대목이 있었다. 고양이에게 채식을 시켰더니 건강해졌다는 엽기적인 내용이었다. 처음엔 안먹으려고 하더니 배가 고프니까 할 수 없이 먹더란다. 이건 정말 엽기적이고 또한 대단히 폭력적이다. 육식동물에게(개는 잡식이지만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 채식을 강요하다니!!! 학교다닐 때도 좀 싸이코 기질이 있더니 그런 짓까지 하다니.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생명사상'같은 의미에서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식물은 생명아닌가?

영화 '개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동학에서는 모든 것이 하눌님이라고 믿는다. 나도 하눌님이고 너도 하눌님이고 개도 하눌님이다. 최시영(맞나?)이 딸과 바닷가를 걷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화인데 딸이 아빠에게 묻는다. "사람도 하눌님이고 조개도 하눌님이면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느냐"는 것이다. 이때 최시영의 대답이 걸작이다.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이는 것이지." 그렇다. 난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인간은 잡식하도록 진화했고 그것이 무슨 '악'이 아닌 한 억지로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여살리고, 그걸 먹는 이는 그걸 고마워하며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아까 개를 패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를 먹는 것이야 무슨 죄이겠냐마는 좀더 맛있게 먹겠다고 팰 것까지야 있나? 그런 면에서 회를 먹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끓여먹든 날로 먹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굳이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면서 먹어야 마음이 흐뭇한가? 중국요리에서는 아예 생선을 튀기는데 기술적으로 몸만 튀겨서 튀긴 생선이 식탁위에서 숨을 헐떡인다. 그런짓을 해서는  죽어도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는가?

모든 인간에게 인권이 보장되야 하듯이 모든 생명에게는 나름대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옛날처럼 소를 키우면서 일도 시키다가 나중에 잡아먹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개나 돼지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개는 사람하고 친하다고 차마 직접 잡아먹지는 못하고 이웃의 개와 바꿔서 잡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고기'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동물들에게 몹쓸 짓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움직임이 없어야 살이 찌니까 좁은 곳에 가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사료에 육류성분을 넣었다가 생산량은 늘어났는데 광우병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몇백만 마리를 도축했다고 하는데, 게네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난 이런 꼴같지 않은 인간들의 행위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혼자 항의 표시로 채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아무도 안알아 주겠지. 인간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소나 돼지들에게 제대로된 대접을 해줄리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내가 그러고 싶으면 그럴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강타나 문희준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듯이 말이다. 그런다고 게네들이 TV에 안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짜증나니까 돌리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전세계적으로 육식이 늘어나는 것은 커다란 식량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중국인들이 육식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데, 십억이 넘는 인구가 육식을 늘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식량부족을 낳을 수 있다. 고기먹는만큼 곡식소비가 줄어드니까 그게 그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끼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곡식이 400그램이라고 치자. 똑같은 한끼를 해결하기위해 고기를 먹는다면 아마도 비슷한 양의 고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소나 돼지가 내버려두면 그냥 알아서 자라나? 당연히 뭔가 먹여야 된다. 한끼로 먹을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먹여야 되는 곡류의 양은 5배정도 즉 2000그램을 먹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기아문제는 생산량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나가면 분배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식량부족문제까지 생길 것이니 큰일 아닌가.

 

Rumble Fish - 예감 좋은날(연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보넷으로 이사오다.

현재 '파란'에 블로그가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어쩌다 만들게 된 거였다. 그런데 블로그의 속성상 모르는 사람들이 다녀간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면 상관이 없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다녀가면 신경이 쓰인다.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그곳들을 방문해 보면 정말 내취향이 아니다. 너무나 다른 취향과 너무나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 원래 서로서로 찾아주며 댓글도 남겨 주고 서로 촌수도 맺고 그러는 건데, 그런 것도 내 성향과 거리가 멀다. 내 블로그는 어차피 자폐성 블로그다.(자폐라는 말을 무슨 비하의 뜻으로 쓴 것은 아닌데 이 표현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물론 일기처럼 쓰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럴 거면 진짜 일기를 쓰면 되지 블로그를 만들 필요는 없다. 아마도 나란 놈이 사귐성 없고(귀찮아 하기도 하고), 혼자 잘노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블로그들을 다니면서 "사람들은 참 외로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다는 말도 아니고 좋다는 말도 아니고, 그냥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나는 외로움을 잘 안타는 편이다. 예전에는 그게 무슨 장점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끼도록 노력'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진보넷은 그나마 조금 덜 짐스러울 것 같아서 이 곳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아는 알엠님도 있고 말이다. 내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보넷에 가입하는 것이 좀 꺼려지긴 했다. 하지만 세상 뭐 그렇게 빡빡하게 살거 있나? 대충 사는 거지. 물론 대충 살면 안되는 것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파란에 있던 글들을 한동안 퍼날라야 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