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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19
    열린교실 사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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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2/16
    디카 새로 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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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2/03
    사진전- 한국의 굿(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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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2/28
    내가 사는 송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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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11/10
    홈씨어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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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11/01
    미안한데 그럼 니들이 딴거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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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10/30
    아버지를 보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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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10/26
    이제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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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10/16
    슬픈 결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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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9/26
    노인의 생활철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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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교실 사진

블로그는 때로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쓸까 한다.

열린교실 행사때 찍은 사진 마땅히 올릴 곳이 없어 여기에 올린다.

(진보넷 서버에 부담을 주진 않았다.)

평소 여기 오던 분들은 클릭하지 마시라.

엄청난 양의 로딩이 기다리니까^^



 

디카를 바꾸고 처음 사용해 본 거라 무척 헤맸다.

그전 디카와 줌은 반대여서 매번 헛갈렸고 새 디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감도, 셔터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찍은 입장에서야 허접한 사진을 이렇게 많이 올리기 정말 민망하지만

그래도 찍힌 입장에서는 자기 사진이 많이 들어있을 수록 좋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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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 새로 장만

6개월여를 벼르다 디카를 새로 장만했다.

기존의 올림푸스 E20N도 나름대로 꽤 괜찮은 기종이었다.

누군가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갖춘 디카'라고 표현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다.

올림푸스의 단점이 어떤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안되겠으나 내게는 아주 큰 단점이었다.

가장 큰 단점은 느려터진 저장속도. 

그리고 감도조절의 폭이 작다는 것과 렌즈를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겐 문제였다.

 

이번엔 카메라계의 주류 '니콘'을 처음으로 장만했다. 모델명은 D50

사실 어떤 면에서는 원래 갖고있던 올림푸스보다도 하위기종이다.

 

새로산 니콘제품은 사실 그냥 그저그런 무난한 제품이다.

니콘이 선전하듯이 가족사진 찍기에 적당한 아마츄어용 제품인데

그래도 제법 갖출 건 갖췄다.

어차피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용 디카를 살 여력도 없기에

가격대비 나에게 맞는 제품을 고른 것이다.

내수제품을 사서 가격을 낮췄고(고장나지 않게 조심해야지^^)

렌즈도 니콘이 아닌 탐론으로 했는데 제법 만족스럽다.

물론 이것 저것 해보면서 만족스러운 동시에

올림푸스도 꽤 괜찮은 기종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특히 꽤 중요한 부분인 렌즈는 올림푸스가 훨 낫다.

니콘에 없는 괜찮은 기능도 있고 말이다.

 

이번 토요일 평택에 있는 공부방 같은 곳에서 행사가 있나본데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새로산 카메라 들고 첫 출사를 나간다. 음하하핫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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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한국의 굿

이름만 보곤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아는 사람이네.

한국의 굿을 주제로 20여년을 찍어온 분으로 꽤 유명한 사람이다.

사진에 처음 관심을 가질 때 이 사람의 사진집을 본 적이 있다.

저 전시회를 보려면 양평까지 가야 하는데 이달 12일 전에 그럴 여유가 과연 생기려나?

 

갤러리 '와' 홈피 -> http://gallerywa.net/main.html

 

흑백사진은 참 매력있는데, 흑백은 커녕 디카로 뭘 찍을 여력도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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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송탄

지난번 눈이 많이 온날 가게안에서 찍은 집앞 풍경이다.

애들이 좀 이상하게 생겼지?


그렇다. 우리집 앞엔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교회가 있다.

 

집에서 몇분만 걸어가면 미군부대 정문이 나오고

이젠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길에서 미군들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

그런 곳 송탄에서 난 어린시절을 보냈다.

 



우리동네 아이들은 고작해야 '헬로'밖엔 할 줄 아는 영어가 없었다.

사실 '헬로'도 아니고 '할로'라고 했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땡큐'까지는  했던 것도 같고)

 

대략 대여섯살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애들끼리 모여서 놀다가 미군이 지나가면 누구라고 할 것없이 "할로"를 목청껏 외쳤고

그러면 가끔씩 미군이 10원짜리 몇개를 던져주곤했다.

다들 그걸 서로 집으려 난리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때 10원이면 아마도 과자나 하드를 사먹을 수 있었던 금액이었을 게다.

그 미군은 낯선 나라의 코찔찔 흘리는 녀석들이 난리치며 동전을 줍는 모습이 재미있었겠지.

 

그때 우리들 무리중엔 내또래보다 두세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우리에게 이런 비장한 말을 했다.

 

"야, 내가 왜 이 돈을 이렇게 열심히 줍는 줄 알아?

내가 돈이 욕심나서 이러는 게 아니야.

저 할로들이(우린 미군을 '할로'나 '코쟁이'로 불렀다) 우릴 이뻐해서 돈뿌리는 게 아니다.

우릴 우습게 봐서 그러는 거지.

이렇게 돈을 주워서 어느정도 모이면 난 저놈들에게 똑같이 할거다.

10원짜리를 저놈들 코앞에서 확 뿌리면서 ....."

 

실제 그 형이 미군앞에서 동전을 뿌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랬을 확률은 0에 가깝다.

그 형의 말을 듣고 멋있다고 감탄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그 애들조차 그형이 실제 그렇게 하리라고 믿었을 것 같지는 않다.

자기 또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폼잡으며 대장노릇하고 싶어서 우리랑 놀았던 그 형이 그런 멋진 짓을?

 

그 이후로도 우리는 열심히 할로를 외쳤다.

10원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고

그 동전을 뿌리는 미군들이 구세주까진 아니어도

연중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산타클로스였다.

게다가 동네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교 및 TV에서는

미국이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지를 끊임없이 떠들어 댔으니...

(빡통까까 만세!)

 

실제 그당시 이곳은 미군부대가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게 미국의 '은덕'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됐고 말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같은 말은 사실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진보'블로그란 이름에 얽매여 무슨 '반미'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그냥 우리 동네 얘기(옛날 얘기, 요즘 얘기)를 가끔 올릴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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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씨어터

홈씨어터를 구비하기 위한 비용에 하한선은 있어도, 상한선은 없어 보인다.

홈씨어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대형 TV(또는 나처럼 프로젝터와 스크린), DVD 플레이어, AV리시버, 5.1 채널 스피커

이렇게 갖추어야 하는데 가격이 정말 천차만별이다.

DVD플레이어는 5만원짜리부터 수백만원짜리까지 있다.

리시버나 스피커는 더 심해서, 난 고작해야 둘다 포함해서 30만원짜리인데, 잡지에서 본 건 스피커 한짝에(세트도 아니고) 2천4백만원 짜리도 있다.

 

나야 그렇게까지 들일 돈도 없고, 행여 있다해도 그럴 마음이 없다. 내가 무슨 대형 아파트의 커다란 거실에 홈씨어터를 꾸민 것도 아니고, 작은 내 방에선 이 정도만 해도 만족스럽다. 아주 나중에 프로젝터만 자작이 아닌 메이커 제품으로 바꿨으면 하는 바램은 있다.

 

내 친구의 이모가 제법 잘사는데 얼마전에 5천만원을 들여서 홈씨어터를 꾸몄다고 한다. (나? 130쯤 들었다. 대형 TV 한대 값도 안되는 돈이다. 이 것도 누구에게는 엄청 큰 돈이겠지.)

친구가 보기엔 이모네 식구들이 영화를 거의 안보는 거 같아서 "영화도 안보면서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였어요?"라고 했더니 이모 왈

"근사하잖아"

그래, 돈 많으니까 5천만원 짜리 인테리어 한거겠지.

골프 많이쳐서 경제 활성화 하자는 꼴통같은 소리를 했던 이가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있는 분들이 그렇게 돈지랄 해주면 경제가 살 지 또 누가 알아?

 

근래에 리시버와 5.1스피커를 들여왔는데, 하는 거 없이 바빠서 아직 그걸 이용해 영화를 보지도 못했다. 이번주 안에는 볼륨 왕창 올리고 꼭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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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그럼 니들이 딴거해!

작년 봄쯤인가 팔자에 없는 '1인시위'라는 걸 한 적이 있다.
소심하고, 꽤나 비겁하기까지 한 내가 그냥 집회참석도 아니고, 1인시위씩이나 하게된 이유는 그놈의 연줄^^ 때문이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했는데 세종대에서 해직된 김동우 교수의 복직을 촉구하는 1인시위였다.(김교수는 날 모르겠지만 난 그를 알고 있었다.)

해직된 사유는 간단하다. 조소과 교수였던 그 분이 학교측의 의뢰로  '모자상'을 만들었는데 재단 이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모자상의 어머니를 팔등신으로 고치라 했고 김교수는 그걸 거부한 대가로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황철민 감독이 '팔등신으로 고치라 굽쇼?'라는 다큐로 만들었다.) 그 학원에서 재단 이사장은 '제왕'이었다. 온갖 비리와도 연루되어 세종학원을 창립했던 그의 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사학법 개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말과 논리들이 있지만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가장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이거 아닐까?


사학측은 "내 돈으로 내가 만든 학교를 내 뜻대로 못한다는 게 말이되냐?"는 것이고, 그 반대쪽은 "다른 것도 아니고 교육에 관련된 것을 니들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안된다" 뭐 이런거 아닌가?


얼마 전에는 사학의 짱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폐교하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사학법 개정이 우리나라를 '사회주의화'하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그걸 수구꼴통 신문은 '대혼란이 예상된다'며 같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하나?)

 

그 정도가 사회주의면 전세계는 이미 수십년 전에 사회주의화 된 것이고,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도 이미 사회주의 국가인 것이다. '자본주의 체계'를 끈질기게도 '자유민주주의 체계'라고 불러대는 인간들은 무식한 거 자랑하는 건지, 국민들 무지한 거 믿고 쌩까는 건지.

 

100%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보자. 내 돈으로 내 기업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왠 노동3권? 감히 피고용자 주제에 파업을 해? 지들이 싫으면 나가야지. 자본주의 체계에서 말이나 되는 거야?
그런데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노동3권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들 논리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진작부터 빨갱이 국가란 말이다.

당신들 혹시 반체제 세력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헌법에 분명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나와 있는데 그걸 부정하는 소릴 자꾸 하는 게 이상하잖아. 솔직히 말해봐. 당신들 '공화국'이란 말 뜻도 모르지?


 교육자입네 하고 제발 개폼 좀 잡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들끼리는 점잖아 보이고 폼나 보이는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 정말 민망하다. 괜히 괜찮은 교육자들까지 욕보이며, 묻어갈 생각 그만 하고 제발 딴거해!

 

 

* 비리 저지른 게 발각돼서 물러났다가도 몇년 지나면 다시 복귀하는 걸 보면 딱 '조폭두목'이다. 사고치고 몇년 썩는다 해도 빵에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다 관리하고, 나와서는 다시 제자리 찾아가는 조폭 말이다.

 


 


잘 좀 찍어주시지^^ 구도가 맘에 안든다. (귀찮아서 모자이크 생략)





꽁지머리 한 사람이 황철민 감독


1인시위가 시작되고 설치됐다는 감시 카메라.

이 분이 김동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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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고 있다.

아버지가 병이 난 후 침대를 못벗어나게 되자

아버지를 위해 뭘하면 덜 지루해 하실까 고민했다.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고 말이다.

흔히 말하는 '시한부 인생'

담당의사는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다.

생이 6개월 남으면 뭘할 것 같은가?

드라마 보면 대개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던데 실제로도 대부분 그럴까?

 

꼼짝도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다.

형이 갖고 있던 8미리 비디오 카메라로  아버지의 살아온 얘기를 듣기로 했다.

 

가장 큰 목적은 아버지의 지루함을 덜기 위한 것이었고

그에 더불어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당신 스스로 되새겨 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때 찍은 걸 지금 DVD로 굽고 있다.

집안 도처에 아버지 사진들이 있지만 사진을 보는 것과 아버지의 움직이고 말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일제시대 지지리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옛날 얘기를 하다 울먹이고, 그걸 보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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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뭐하나?

아직 정리가 다 되진 않았다.

장례는 치렀지만 대전 국립묘지에 모셨기 때문에 임시 봉안만 했고 안장은 다음주에 한다.

가장 기본인 듯 보이는 사망신고도 아직 하지 않았다.

내가 가서 하려 했는데 호주승계 받을 사람이 와야 한다고 해서 아직 못했다.

없어질 그놈의 호주제, 대체 입법 때까지는 지켜야 하나?

나혼자 하는 거라면 호주승계 안하고 사망신고만 하겠건만...

 

상속을 정리해야 하는데 아는 법무사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물론 흔한 게 법무사니 아무데서나 하면 되긴 하는데, 귀찮아서 안알아 보고 있다.

어차피 사망신고를 해야 상속절차도 밟을 거고 말이다.

 

아버지 짐은 거의 모두 정리했다.

140만원 주고 산 전동침대만 남았다. 꼭 필요한데 형편이 어려워 못사고 있는 사람이 있다기에 그냥 가져 가라고 했는데 한 발 늦어서, 연락한 바로 그 날 전동침대를 들여왔다고 한다.

 

의료기 업자가 10만원 줄테니 달라고 하기에 됐다고 했다. 공짜로는 줘도, 업자에게 10만원 받고 팔 생각은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 졸지에 불교신자가 되버렸다.

국립묘지에서 안장의식을 하는데 필요하니 종교를 정하라고 했다.

'무교'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단다. 젠장. 죽은자에겐 종교의 자유도 없나?

그럼 '유교'라고 했다. (우리 아버지 하셨던 걸 보면 유교가 종교라는 생각도 든다.)

예상했던 데로 유교도 안된다고 한다.

기독교는 정말 아니니 할 수 없이 불교로 했다.

 

하긴 억지로 하면 불교신자라고 못할 것도 없다.

형이 결혼하고 5년동안 애가 생기지 않았는데 하도 갑갑해서 고모가 다니는 절의 스님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스님 왈 "조상이 배가 고파"

 

큰집이 기독교라 제사를 안지낸지 20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그걸 무척 안타까워 하셨는데 마침 스님께서 조상이 배고프다는 말을 하니 그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던 거다. 제사밥을 못얻어 드셨으니 조상님께서 얼마나 배고프셨겠는가! 우리 아버지는 또 얼마나 죄스러웠겠는가.

 

그 이후로 명절이나 제사날에 큰집에 가는 대신 우리집에서 제사를 지냈고, 재미있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애가 생겼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더더욱 조상님을 믿게 되었고, 그렇게 하라고 일러 준 스님도 신뢰하게 되었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스님은 믿는, 다소 요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장례 끝나고 친척분들과 삼오제(삼우제)로 할 것인지 사십구제로 할 것인지를 얘기했다. 사십구제는 불교에서 나온 것이고, 기간도 너무 길고 해서 대개는 삼오제로 끝낸다는 장의사분의 얘기를 했더니 고모께서 언짢아 하셨다.

"삼오제만 지내고 니 아버지 내치겠다는 거냐?"

 

그렇게 해서 사십구제로 결정났다.

사실 그런 게 뭐 중요하나?

 

이번 장례를 치르면서 짜증났던 일을 얘기하자면 시리즈로 나올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다.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라고 짜증나게 만들었나?

떠나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애도할만한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 이놈의 장례문화.

 

 

그나저나 정작 이제부터가 문제다.

이제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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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결정

아버지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며칠 사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이젠 입으로 거의 못드실 지경이 됐다.

오늘은 딸꾹질이 몇시간씩 계속됐다.

 

다시 콧줄을 껴서 음식물과 약이 들어가면 또 조금은 나아져서 한동안 가겠지만

그것이 더 아버지에게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맞이할 죽음인데,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도 의식이 조금 있는데

죽음의 공포를 연장시키는 것이 잘하는 건지 회의가 들기도 하고.

어차피 조금 나아진다 해도 여전히 아버지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말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안된다.

 

살아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억지로 붙잡고 있던 그 끈을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제 놓아드리기로 했다. 저런 아버지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게 어머니로서는 커다란 고통이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깼는데 어머니 모시고 일요일에나 갈 수 있는 인근 산행을 빼먹을 수가 없어 다녀왔다. (다해봐야 한시간 남짓 걸린다.)

산에 가면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게 되는데

어머니께서 이번엔 작심 하신듯 강경하게 콧줄 끼는 걸 반대하셨다.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 어머니 말씀 중에 가장 씁슬했던 것.

"니 아버지가 요즘엔 왜 그렇게 이뻐보이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겠다.

앞으로 감당해야할 일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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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생활철학

여든이 다 되신 이모부께서 예전에 아버지 보여드리라고 주신 A4용지 한장에 담긴 글.

정리하다 나왔는데 그냥 버리려니 아쉬워서...

내용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노인의 생활철학

 

1. 젊어서 돌보지 않은 몸, 늦었다면 지금부터 확실히 관리하여 아프다 소리 마소.

2. 늙으면 설치지를 말고, 미움 살 소리 군소릴랑 말고, 그저 남의 일에 칭찬만 하소.

3. 묻거들랑 가르쳐주되, 알면서도 모르는 체 어수룩하소.

4. 모든 일에 이기려 하지 말고, 져주시구려!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이, 원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5. 돈,돈,돈의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 갈 수 없는 거라오. 죽기 전에 많이 베풀고 덕을 쌓으시구려.

   그러나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고 계시구려.

   돈이 있음으로써, 나를 돌보고 받들어 모셔 준 다오.

6. 왕년의 일일랑 다 잊고, 잘 난 체 자랑이랑 하지를 마소.

7. 내 자식 내 손자와 이웃 누구에게도, 존경받는 좋은 늙은이로 사시구려.

8. 멍청해도 안 되오. 그러기 위해 한 가지 취미라도 갖고, 즐겁게 밝게 사시구려.

9. 항상 신변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멋있게 건강하게 사시구려.

10. 생각을 깊게, 마음은 원만하게, 화를 내지 말 것이며,

    말을 조심하면 오래 살 수 있으리라.

 

 



1. 환갑(61)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 부재중이라 하소.

2. 고희(70)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르다 하소.

3. 희수(77)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부터 생을 즐긴다 하소.

4. 산수(80)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이래도 아직 쓸모가 있다고 하소.

5. 미수(88)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쌀을 좀 더 축내고 간다고 하소.

6. 졸수(90)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그렇게 조급하게 굴지 마라 하소.

7. 백수(99)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때를 보아 내 발로 간다고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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