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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11
    펌) 촛불로 노무현 정권을 바로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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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5/07
    동영상 펌, 소박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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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5/03
    국방부에서 들어온다는데..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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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5/01
    우리동네 철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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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4/23
    연출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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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4/21
    뭘 좀 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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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4/07
    가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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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3/18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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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3/03
    조카 입학(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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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2/21
    4는 재수없다는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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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촛불로 노무현 정권을 바로 잡을까?

사실 한겨레에 대해 대충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도 난 종이신문이 좋고, 한겨레가 조중동보다야 훨 낫기 때문에 아직도 보고 있다.

가끔 괜찮은 논조도 있지만 그에 버금가게 아주 깨는 논조도 꽤 있다. 놈현정부처럼 '신자유주의는 대세라 막을 순 없고 그 안에서 살아 남을 방법을 모색해야한다'라는 식의 글들 말이다. 때론 놈현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론 아직 우호적인 한겨레.

그런 한겨레도 이번 대추리 문제는 놈현정권이 정말 너무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꼭두각시 정권이란 용어까지 언급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한겨레에 미련을 남게 하는 이가 홍세화하고 손석춘이다. 오랫만에 손석춘의편지를 읽어 봤다.

 

 



“너무 슬픕니다. 평화를 지키려고 촛불을 든 바로 옆에서 현란한 불빛아래 평화를 즐기고 있는 현실이.”

   2006년 5월 7일 밤. 서울 광화문. 촛불을 밝힌 40대 후반 노동자가 눈을 슴벅이며 잔잔히 건넨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땅, 평택을 지키는 국민촛불문화제’가 열린 동아일보사 앞마당, 그 뒤에선 ‘하이 서울 페스티발’이 청계천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40대 후반, 건설노동자는 경기도 평택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황금 연휴’에 그는 대추리를 찾았습니다. 이 땅의 평화를 지키려고, 생명을 지키려고, 가족을 지키려고 갔습니다. 곧 곤봉을 휘두르는 군대가 투입된 현장에서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이틀 밤을 철창에서 보낸 뒤입니다. 7일 오후에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광화문으로 달려왔습니다. 40대 후반의 성실한 ‘노동자 시민’에게 촛불 주변의 ‘하이 서울’ 괴성은 슬픔일 수밖에 없었을 터입니다. 

   물론, ‘촛불 문화제’는 주최 쪽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휴일이었지만 3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젊은 대학생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솔직 합시다. 3천명은,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문화제’ 현장을 무관심으로 스쳐가는 젊은 시민이 숱했습니다. 청계천 물길을 관광하러온 사람들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탄핵 반대 촛불과 비교해보십시오.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었을 때, 촛불을 떠올려보십시오.

   노무현 정권은 기실 촛불 속에 태어났습니다.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은 노 후보에게 표를 주는 데 한 몫 톡톡히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언죽번죽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쳤을 때만 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탄핵을 받았을 때, 촛불은 다시 타올랐습니다. 어김없이 노무현을 지켜줬습니다.

   그래서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노동자는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 술자리에서 결기를 세우며 말했습니다.

   “촛불로 집권한 이 정권을 촛불로 끝장내야 합니다.”

   촛불은 새로운 집회, 신선한 시위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냉철히 톺아볼 때입니다. 과연 우리 촛불만 들어도, ‘문화제’만 펼쳐도 괜찮을까요.

   촛불은 상대의 양심을 밝히는 뜻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묻는 까닭입니다. 과연 오늘의 노 정권 내부에 촛불로 밝힐 양심이 남아 있을까요. 노 정권은 촛불 든 시민을 시들방귀로 여긴 지 오래입니다.

   보십시오. 26년 만에 곤봉을 든 군인이 시민을 구타하는 저 살풍경을. 주한미군의 다른 나라 ‘침략 전략’을 ‘전략적 유연성’으로 선뜻 합의해준 노 정권을. 그 ‘유연성’을 실전에 옮길 최첨단 미군 기지를 평택이라는 지리적 요충지에 대규모로 건설하려는 저들을. 그 침략 기지를 위해 애면글면 박토를 농토로 일궈온 늙은 농민들을 마구 몰아내는 저들을. 

   그래서입니다. 울뚝밸을 거듭 삭이며 묻습니다.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든 촛불은. 군 병력을 동원해 대추 초등학교를 박살내는 노 정권에게. 농토에 철조망을 친 뒤 군사보호구역이라 부르는 참여정부에게. 그곳에 가려는 시민을 곤봉으로 갈기는 저들에게. 촛불은, 우리가 든 촛불은, 과연 더 밝힐 양심이 있을까요. 과연 있을까요. 촛불로 노 정권을 바로 잡을 가능성은.

   명토박아 둡니다. 행여 시민의 무관심과 언론만 탓할 때가 아닙니다. 1970년, 80년, 90년대 내내 민주화운동은 언론권력의 여론조작에 흔들림 없이 맞섰습니다. 힘차게 거리투쟁을 벌이며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길을 열어왔습니다.

   그 길 위에서 오늘 우리 앞을 보십시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어 폭력적으로 미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정권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강행처리하려는 정권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싸워야 할 때”라고. 옳은 말입니다. 다만 덧붙일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싸워야 할 때입니다.   (기획위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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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펌, 소박한 대한민국

 

침탈당한 다음날 문정현 신부가 찍은 영상인데, 막내누나도 나오는군.

침탈, 그 다음 날 아침 주민의 통렬한 호소 (참세상 기사) 보러가기

 

대추리는 현재 계엄같은 상황. 아예 들어갈 수도 없다.

노빠들은 노빠들대로, 광주항쟁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대로

현재 상황을 80년 광주와 비교하는 걸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나 보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런 비교에 무리가 없진 않은 것 같다.

 

전두환이나 노태우 정권 때 이 정도 일이 터졌다고 518과 비교했을까?

근데 지금은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잖아?

문민정부 들어선지도 십몇년이 지났고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라던 후보가 대통령이 된 세상 아닌가 말이다.

결과적으로 놈현이 쌩깐 게 돼버렸지만 말이다.

군인이 민간인에게 총질만 안하면 괜찮은 건가?

그럼 전두환만큼 악질만 아니면 괜찮은 거냐?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전두환 빼고 다들 괜찮은 대통령들이었네.

(박정희도 빼야하나?)

 

그렇게 치면 보리고개 없어졌으니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행복하겠다.

아주  소박해서 좋군.

어쨌든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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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서 들어온다는데..빌어먹을

대화하겠다고 합의한지 하루만에

"내일까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더이상 대화는 없다"라고 획까닥 입장을 바꾼 국방부. 대화했다고 생색이라도 내려면 하다못해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군인과 민간인의 충돌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믿을 수도 없거니와 민간인 상대로 군을 출동시킬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지금이 무슨 게엄령 상태도 아니고 놈현이 무슨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닌데 민간인 상대로 군을 출동 시키겠다고?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얼마전 그 알량한 대화를 하겠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나와서 "이장님은 왜 안나왔느냐"고 했단다. 대표가 왜 안나왔냐는 말이겠지. 그래서 이쪽에서 그랬단다. "그쪽에서도 국방부장관이 안나왔잖아요."

걔 입장에서는 아주 황당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이게 어디 일개 국방부장관이 결정할 일인가?  국방부장관이 아니라 놈현이 나와야 하는 일이다. 경제인 단체장들 만날 시간 있고, 수구언론 편집장 만날 시간 있고, 하다못해 하인즈워드 만날 시간은 있으면서, 무슨 국가의 사활이라도 걸린 것처럼 난리를 떠는 일에 놈현이 못나설 이유가 없다. 놈현, 대화 좋아하잖아. 검사들하고도 대화하고, 뻑하면 국민에게 편지쓰는 대통령 아닌가 말이다. 며칠 전에는 일개 기업인 엘지 파주 엘씨디 공장 기공식에도 몸소 납시었드만. 시간없으면 청와대로 부르던가. 대추리 분들이 설마 멀다고 안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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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로 가자에 잘 정리되어 있어 링크합니다.

특히 가장 손쉽게 할 수 있고 부담없는 사이버시위는 같은 시간대에 많은 인원이 열심히 '새로고침'버튼을 마구눌러 주는 게 중요합니다.

 

*시간: 내일(목) 오후 1~2시

*방법: 국방부홈피국방부게시판에 가서 새로고침 버튼이나 F5 버튼을 마구마구 누릅니다.

 <= 요게 새로고침 버튼

 

* 얼마동안? 한시간 동안 (사이버시위 전후로 게시판에 항의글까지 올리면 금상첨화!)

시도 때도 없이 몇초 간격으로 누르면 국방부 서버에 부하가 많이 걸리게 하는 겁니다. 서버 다운시키는 게 목표(이쯤 되면 이 사실만으로도 뉴스에 나올걸요) 쪽수가 무지 중요하니 별일 없는 분은(별일 있으면 시간 내서) 참여 바랍니다. 한손으로는 버튼 누르고 나머지 한 손과 눈으론 다른 일 하세요. 바쁜 분은 알바 구하던가^^

 

 

 

그림만 복사됐고 링크가 안되네. 아래를 클릭

국방부 게시판

청와대 자유게시판

국무총리실 자유게시판

 




군투입에 대해 518 광주와 비교하는데 있어서 놈현과 국방부는 무지 억울할 것이다.

그래 사실 군투입한다고 해서 광주처럼 총을 쏘진 않겠지.

그래 놈현, 전두환만큼 나쁜 놈은 아니라서 참 좋겠다.

링컨이 어떻고 역사가 어떻고 지랄을 떨지 말던가.

하긴 말 뒤집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내 입만 아프다.

 

예전에 열우당 구케으원이 대추리 와서 그랬단다.

"한나라당은 숭미(미국을 숭배)라서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공미(미국을 두려워함)라서 할 수 없이 찬성하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훌륭하다, 열린우리당!

 

놈현은 대선 때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령이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럼 그거 사기친 거잖아. 아님 세상물정 모르고 까분 것이던가. 그렇다면 국민에게 '사기쳐서 미안하다'거나 '쥐뿔도 모르면서 겁없이 떠들어 미안하다'라거나 뭔 사과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당연히 부시에게도 사과해야지. '몰라뵈서 죄송하다'고 '대통령되고 싶어서 오버 좀 했다'고말이다. 아냐, 파병도 하고, 쌀시장도 개방하고, 스크린 쿼터도 알아서 줄이고...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부시는 이미 용서했을거야. 부시에게도 그 정도 이해심은 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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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철길

요즘 하는 것 없이 바빠서 시작만 해놓고 잘 못올리고 있다.

 

우리집에서 몇 걸음만 가면 철길이 있다.

어렸을 때 나의 주요 놀이터였고,  지금도 난 이 철길이 좋다.

 

주택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이 철길은 미군이 사용하기 위해서 깔아놓은 것이다.

나를 찾아 온 이들이 이 철길을 보면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기차가 다니냐?"는 것.




올해 초에 찍은 것이다.

어디 갔다 오는 길에 기차가 지나가기에 잽싸게 집에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기차가 워낙 천천히 지나가기 때문에 놓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다니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이것 저것 자라 있다.

 

 

 

*** 충격 고백!!!!***

 

난 이 꽃이 민들레란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이건 20대 초반

진달래라 굳게 믿고 있던 꽃이

사실은 철쭉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난 왜케 식물에 약할까??? -..-;; (동물은 쪼매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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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사진 -.-;;

지방의회 선거에 나가는 당원분의 사진을 찍으러 평택 열린교실에 갔다

한분은 이미 열린교실의 교장을 지낸 분이고 한 분은 자신의 지역에서도 이런 방과후 무료 공부방을 여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홍보물에 넣을 사진이 필요했고 아이들과 자연스런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었지만

.

.

.

.

에구 에구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이들은 징글징글 맞게 말을 듣지 않았다. 징글벨!

 

원래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달라'라고 요구하며 찍는 사진엔 젬병인데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고, 억지로 말을 듣게할 권리도 물론 없었다.

 

사진 찍어달라는 아이는 많지만 말을 듣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대충 포기하고 대충 되는데로 찍기로 했다.

 

제발 V자는 그만 하라고 해도 아이들에겐 무슨 프로그램이 입력된 것처럼 자동으로 손가락이 올라간다.

 

 

이건 좀 자연스럽나? 근데 후보자가 고개를 좀 더 들었어야 하는데.

같이 사진찍자고 간신히 꼬시면 이렇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포즈만 취한다.

 

이렇게  죽어도 안찍겠다고 빼기도 하고 말이다.

 

이 사진 보더니 애들에게 자랑한다.

"얘들아 나 정말 이쁘게 나왔어!"

그런가???

 

실내에서는 그만 찍고 야외로 나갔다.

 

연출사진 정말 어렵다. 에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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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좀 했다

뭘 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냥 뭘 좀 했겠지^^





 



 

옛날부터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어제 드디어 해봤다. 목걸이.




 

난 목걸이를 했고...

사진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제대로 나온 사진은 한장도 안올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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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보고 있다.

대추리는 또 급박하게 돌아가고

누나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대추리로 갔다.

가게를 비우고 나까지 갈 순 없으니

가게라도 보는 게 내 할 일 하는 거라고 변명해 본다.

어머니는 내일 중국여행에서 돌아오신다.

어머니 없으니까 편한 것도 있네.

누나가 대추리 매일 들어가도 뭐라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어느 블로거가 자신은 '대추리병'에 걸렸다고 하더만

우리 누나도 병세가 확연하다

다들 이 바이러스에 왕창 감염됐으면 좋겠다.

 

 

지금 민중의소리에 들어가 보니 한바탕 격전을 치뤘나 보다.

물길을 끊어 농사를 못짓게 하려고 수로에 콘크리트를 부었다고 한다.

일부 용역들은 '이런 일 하는 건 줄 몰랐다'며 돌아가기도 하고.

일당 6만 5천원

이런 끔찍한 일을 시키면서 6만5천원?

 

군인으로 끌려가 경찰복 입혀져 적군이 아닌 민간인과 싸우게된 전경이나

일당 6만5천원에 이런 몹쓸 짓 해야하는 용역이나

농사일이 아닌 투쟁을 해야 하는 농민이나

하던 일 접어두고 달려온 노동자들이나

이게 다 뭔 지랄이다냐?

 

권력 가진 새끼들에게 저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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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친구들

대학써클 친구들을 몇년만에 만났다. 두녀석은 거의 10년만에 보는 것 같다.

사실 만나 봐야 별로 재미가 없어서 굳이 만나려는 노력을 안했던 친구들이다.

 

10년전쯤에 모였을 때 주요 주제는 ', 자동차, 스키, 직장'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 당시 막 사진에 관심이 있던 나는 한 녀석에게 "쓸데없이 돈도 안되는 짓을 한다"는 타박을 들었다. (그 놈은 스키타면 돈 생기나 보다.) 그래도 다른 한녀석은 "왜 그래,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해주었다.

 

내가 나온 학교는 등록금이 싸서 비교적 가정형편이 않좋은 애들이 많았다. 그런 애들이 졸업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지게 됐다. 10년전만 해도 스키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난 지금도 꽤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소리하면 별 이상한 소리 듣는 경우가 많아서... -..-;; ) 친구들은 자신들도 이젠 스키 정도는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사실에 꽤 만족한 듯 보였다. 십몇만원 주고 스키복을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을 하고(10년전에!) 어디서 그렇게 싸게 샀냐고 묻는 그 애들의 대화가...

무척 지루했다.

 

이번에 만났을 때의 주요 주제는 '교육'''이었다. 한 친구는 아이와 부인을 캐나다에 보냈다.(부인도 써클 친구다) 조기유학을 보낸 거다. 또 한녀석은 돈은 많지 않은데 초딩 아들녀석 영어배우게 하고 싶어서 필리핀에 보낼 계획인데 아들녀석이 가기 싫다고 해서 걱정이란다.

"차라리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게 어때? 1년 등록금 해봐야 천만원 정도인데"라는 말이 나왔지만 결론은 '천만원이 문제가 아닌'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 골프를 배워. 그리고 좀 지나면 시험을 본다고 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가르쳐 주는 건 거의 없는데 시험은 봐야 하니까 골프 개인교습을 시켜야 하는 거야. 이런 식이기 때문에 등록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래, 그 친구들과 나는 이미 꽤 많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십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사실 과친구들이나 써클 친구들이나 모여서 하는 얘기 들어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과친구들은 그나마 좀 만나는 반면 써클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이거다.

 



과친구들은 내가 자신들과 좀 다르게 사는 걸 인정하는 편이다. 좀 이상하게 산다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뭐라 하는 녀석은 없다. 반면 써클 애들은 늘 “범수 넌 왜 그렇게 사냐?”는 식이었다. 지들이야 내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게네들 말 듣고 바뀔 것도 아닌데 그런 소리 듣는 게 지겨웠고 재미 없었다. 내가 자기네들에게 “그렇게 살지마”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녀석들은 ‘친구’라는 이름하에 참 말이 안되는 간섭을 꾸준히도 했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웬일(미류의 글에서 보긴 했는데 맞춤법이 맞나?)로 뭐라 그러지 않더만. 말해봐야 들어먹지도 않아서 포기를 한 건지, 지들이 썩 행복하지만은 않아서 그런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야 서로 ‘다름’을 인정한 건가??

 

그 분위기를 틈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엔 획일적인 학교 교육이 싫다고 애를 학교에 안보내는 사람도 있어. 너희들이 보기엔 말도 안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지.  생각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일 수도 있거든"

어허! 이런 말을 했는데도 어쩐 일로 안티가 안들어 온다. 얘네들 정말 나 포기했나봐^^

*여담1

필리핀에 아들을 보내려는 친구는 아들의 “왜 필리핀에 가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생각해도 왜 거기에 꼭 가야하는지 설득력있는 대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내야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여담2

여름쯤에 스키장으로 사용되는 산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멀쩡한 산을 우리 중고딩 때 머리 길다고 바리깡으로 무식하게 확 밀어버린 듯한 모습에 경악했다. 자연에 저런 죄를 지어도 되나 싶었다. 이래 저래 스키는 내게 씁쓸한 스포츠가 되었다. 스키 타는 사람들을 죄악시하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만큼 내가 미련하진(?) 않지만 아마 내가 스키타는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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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입학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다른 조카들 입학할 때 따로 챙겨준 기억이 없어 이 녀석도 챙겨줄 생각은 안했는데 어머니께서 가보시겠다고 하기에 모시고 갔다.

다른 조카들은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이 조카는 나를 '작은아빠'라고 부른다.

즉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직계'라는 말쌈.

누나의 자식이나 형의 자식이나 나에겐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어머니에겐 차이가 좀 있겠지뭐. (물론 어머니는 직접 자신이 키운 외손자 재구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다.)

 

어제 용현이 입학식을 보고 "니 할아버지가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고 하셨다. 그래, 사실 나도 아버지 생각해서 간 면도 좀 있다.

 

점심값이라도 내가 낼까 하다가, 다른 조카들 때 신경안썼으면서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돈많이 버는 형이 있는데 대충 가난하게 살겠다는 내가 돈을 낼 거 뭐 있나?

 

 




 

형과 형수인데, 형은 이제 정말 나랑 별로 안닮았다.

그래도 우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똑같이 생겼다고 하긴 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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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는 재수없다는데

알엠님의 [4things] 에 관련된 글.

죽을'사' 때문에 4자는 우리나라에서(중국에서도) 재수없다고 기피하는데 모든 질문을 4개씩 대답하게 한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보통은 3개나 5개씩인데 왠지 3개는 너무 적고 5개는 채우기가 버거운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문답놀이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월급장이(공장)- 2년

학원강사- 2년

풍선쟁이( 인형쟁이? ) -수년

과외(이것도 직업 맞나? 어쨌든 먹여살린 것이니 직업은 직업)-꽤 오래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공각기동대:  솔직히 첨봤을 땐 좋은 줄 몰랐다. 두 번째 보고 반해서 보고 또 보고

매트릭스: 1편만... 1편만... 속편은 제발... 제발...

송환: 이거 너무 주류 영화들만 등장하는 군 -.-;;

열혈남아(몽콕하문): 걸작은 아니지만 여러번 봐도 재밌는 왕가위 88년 데뷔작


* '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이 재밌다.

아주 좋았던 영화라고 해서 꼭 여러번 보고 또 볼 영화는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송탄

- 태어나서 초딩4학년 까지... 그리고 현재 사는 곳

서울 중곡동

- 초중고대 모두를 걸쳐 이곳에서 살았다. 요즘도 고모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가면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안산

- 처음 회사 생활을 했던 곳. 상록수에 내소유의 집이 아직도 있다.(얼마 안한다^^)

서울 신림동

- 참 여러 가지 기억들이 남아있는 곳. 그리고 지금도 많은 기억들을 생성중. ㅎㅎ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에고고, 난 TV 거의 안본다.

9시뉴스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고 (꼭 좋아서 보는 건 아니니까)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나한테 '휴가'란 게 따로 있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하여 그냥 시간내서 가본 곳을 적자면

변산반도

운주사(전남 화순)

소록도

제주도의 '오름'들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참세상 (시작 페이지. 뭐 그닥 열심히 읽진 못하지만서도)

진보 블로그

뮤즈 (음악 들으러)

*매일 가는 곳은 세 개밖에 없네. 요즘은 별로 인터넷을 안한다.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짜장면 (짜장면이 더 이상 좋지 않으면 어른이 된 거란 말이 있던데...)

어패류 (조개구이집 가서 소주와 함께 신나게 먹다가 맛이 간다.)

송탄 떡복이 (그냥 떡복이도 좋아하지만 송탄 떡복이가 특히 좋다. 맵고 당면 잔뜩들어가고 깻잎을 넣는 센스)

게장 (먹기 정말 귀찮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빈둥거릴 수 있는 곳이면 아무데나 좋은데...

지리산(아, 산에 가고 싶어)

제주도 별도봉(바다를 내려다 보며 종일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을 곳. 너무 춥지만 않다면)

가보지 못했으니 상상은 잘 안가지만 아프리카의 어디쯤. (정현씨 있던 곳?)

달 (빈둥거리며 지구 구경하기)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요즘 내가 잘 안돌아 다니고 글도 잘 안올리다 보니 내 블로그에 오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어쨌든 채워봐야지.

pan

드리머

미류

건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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