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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14
    결혼합니다^^(15)
    무위
  2. 2008/02/04
    용인으로 이사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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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1/16
    돈이라는 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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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12/28
    대따 어렵군(9)
    무위
  5. 2007/12/01
    이번엔 진짜로 가게를...(9)
    무위
  6. 2007/11/20
    어이없는 동영상(5)
    무위
  7. 2007/11/18
    권력은 자본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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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11/08
    대화, 설득(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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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10/30
    일란성이니까 당연하긴 한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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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10/25
    아버지 제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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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합니다^^

청첩장을 주문하면 그럴듯한 이메일 청첩장을 무료로 해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

그러니 어쩌랴, 다시 돈주고 하기는 너무 아까워서 그냥 내가 조악하게 만들었다.

사실 누가 신경쓰겠는가?

올 사람은 장소하고 일시만 알면 되겄지 ^___^

 

그림이 축소되서 잘 안보일텐데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예식장에 딸린 주차공간이 넓지는 않은데 휴일이라 인근 건물 주차장으로 안내해준다고 하네요.

아이들 있는 거 아니면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2호선은 서초역(3번출구), 3호선은 남부터미날역(6번출구)에서 오시면 됩니다. 약도에는 5분이라고 나오는데 도보로 7분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  서초역에서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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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으로 이사했다.

거리상으론 서울과 가까워 졌는데 교통편이 불편해서 오히려 송탄에서보다 서울이 더 먼 느낌도 든다.

이사한지 두주가 지났는데도 집안은 아직 정리 안됐고, 난 아직 돈벌이를 시작하지 못했다.

3월초까진 그냥 까먹고 살기로 했는데 참 못할 짓이군. ㅜㅜ

 

요즘 인터넷이라곤 물건 살 때 말고는 별로 안했는데 어제하고 오늘은 하도 갑갑해서 들어왔다.

민노당 때문이다. 용인으로 이사와 이곳 지역에서도 민노당 활동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젠 뭐 그런 고민할 일이 당분간은 없겠다. 곧 탈당할테니까 말이다.

 

이번 주말에 송탄지역 당원들과 모임을 하기로 했다. 그냥 흩어질 수는 없으니까.

한편으로 되지도 않는 논쟁을 할 필요없이 생각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민노당이 쪼깨지는 상황이 아주 심난하기도 하다.

 

근데 집안은 언제 다 정리하나? 이게 더 심난 한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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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게

난 내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도 그닥 가난하지 않으며, 나의 성향상 행여 가난하다 해도 별 문제가 안되게 살아왔다.

 

물론 내 수입은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 어쩌구 저쩌구를 기준으로 하면 대졸자는 물론 고졸자를 기준으로 해도 턱없이 낮다. 돈 벌 궁리를 거의 한 적이 없으니 필연적인 결과일테고 난 그런 내 자신에 불만이 없다.

 

근데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돈없다는 것이 슬금슬금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구. 사실 나 자신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주씨가 무슨 돈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근데도 그게 그렇게 되더라고.

 

'남들이 어케보던 무슨 상관이냐'라던 정신으로 살아온 내게 요즘의 내 모습은  꽤 큰 변화다. 이제라도 남들처럼 살고 싶냐고? 글쎄...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다.

내가 변하긴 변한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어떻게 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변했느냐 안변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 난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내 자신이 좀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남들이 봐도 그럴까? 난 어느새 남들이 어케 볼지를 또 생각하고 있는 건가? 쿨럭 --;;

 

불혹의 나이가 된다고 미혹함이 없어질 것이란 기대는 눈꼽만큼도 안했다. 오히려 젊었을 때는 세상의 진리를 아는 냥 떠드는 일이 많잖아?

 내가 지금 이런 글 쓰고 있을 때는 아닌데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변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이렇게 중간중간이라도 기록해놔야 하지않을까 싶어서...

 

상황봐서 내게 돌을 던지시라!!! (난 성경에 나오는 '죄없는 자,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는 얘기 안좋아 한다. 그렇게되면 비판받거나 처벌 받을 사람이 없게된다. 괜한 물귀신 작전이지) 죄 많아도 좋으니 짱돌 들 힘있는 사람 내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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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따 어렵군

얼떨결에 결혼식을 급하게 준비하게 됐다.

두어달만에 이것저것 식 준비도 하면서 송탄 가게도 정리하고, 먹고 살 것도 새로 궁리하는 등등.

할 것은 너무 많고, 머리 싸매고 궁리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 버겁다.

 

조금 있다 수업해야 하는데 아직 준비도 안했다. 에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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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진짜로 가게를...

가게를 정리한다는 글을 몇번 쓴 것 같은데 이번엔 진짜로 정리하게 된다.

어머니는 큰누나와 살기로 했다.

누나들은 그게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장사도 안되는 이 가게를 같이 할 것도 아니기 때문데 분명 정리를 해야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누나들은 지금의 어머니 생활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는 무엇'처럼 생각하고 있어서 나와는 의견이 많이 다르다. 

난  비록 이 좁고 불편한 집이지만 어머니께서 당신 스스로 거동하실 때까진 이곳에서 살던데로 사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머니께서 좀 다르게 살고 싶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말이다.

그런데 누나들은 자식들이 설득해서라도 지금의 이 생활을 빨리 정리하고 편하게 사시길 바란다.

 

명주씨는 그렇게 얘기하더라. 감옥에만 살던 사람은 오히려 감옥이 더 편해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바깥 세상이 더 살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설득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그 결정은 본인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명주씨는  '아들들은...'이라고 하는데, 아들과 딸의 생각이 좀 다른 건 맞는 듯 하다.

그렇다고해서 딸들의 생각이 꼭 맞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대부분 딸들이 아들보다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이 더 많은 건 인정한다.

우리집의 경우도 별로 예외라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데 더 사랑하고 더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더 나은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보장은 사실 없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을 끔직히 사랑하고 아껴서 이것 저것 신경써주지만 그게 아이들에게 적절한지와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행히  "왜 여태 그 고생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라며 변화된 삶에 만족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몸은 편해졌어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금새 늙어 버렸다는 얘기 또한 심심찮게 들어서 어머니의 경우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

 

어머니의 남은 여생이 편하면서도 '즐겁기'를 바란다.  결정은 이미 났으니 그렇게 만들어야지. 일단 나부터 잘살아서 어머니 맘을 편하게 해야하는데...

솔직히 난 나름 잘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게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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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동영상

정신 건강에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 당 게시판에는 잘 가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당이 어케 돌아가는지 궁금하면 가보게 된다.

 

오늘 가서 본 동영상인데 정말 어이가 없다.

오로지 민족통일에만 관심이 있는 거야 게네들 캐릭터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동영상 만들려면 말은 되게 해야할 것 아냐?

 

FTA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장하게 얘기하다 갑자기 노무현과 김정일이 왜 나오나?

통일되면 다 해결된단 말을 하고 싶었나?

난 이게 뭐와 관련된 동영상인줄 모르고 봤는데 결국엔 11월 11일에 있었던 100만 민중대회 참석하라는 홍보 동영상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권영길이 범여권 후보로 거론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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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자본의 손에...

청와대가 처음엔 삼성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가 완전 입장을 바꿔 이젠 어케던 특검을 못하게 하려고 쌩쑈를 하는 분위기다.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공수처법'을 국회에서 같이 통과시키지 않는 한 삼성 특검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표현처럼 '생뚱맞은 연계'라 아니할 수 없다. 차라리 수구 꼴통들처럼 '삼성을 조사하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라는 구라가 차라리 낫지 이건  너무 구차하다.

어찌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노무현이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권력은 이미 자본에게 넘어갔다"고 말이다. 노무현은  물론 '사실'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이런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조폭들이 이미  합법적인 기업 형태를 갖추어 움직이고 있고  정치인들과도 연계를 맺는 등등 자금이나 조직 등  여러 면에서 세력이 너무 커져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실제 일본 야쿠자들은 대충 이 수준까지 갔다한다.)  이 말은 대충 '사실'에 가까울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이라면?  그렇다면 홀랑 깨는 일이거니와  명백한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라고?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뽑아준 국가 최고의 권력이다. 그런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보다 자본의 권력이 훨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함'이나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직무유기'의 문제다. 그게 직무유기인지도 모르는 패배주의자니까 기업인들 모아놓고 "기업이 곧 국가입니다"라는 말까지 했지. 이게 그냥 기업인에 대한 덕담이나 립써비스였을까?

김용철 변호사는 이미 비극적 결말을 예견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의 예상처럼 돌아간다. 근데 난 이 비극에서 최소한 청와대가 중립이라도 지킬 줄 알았는데, 노무현에 대한 기대가 아직도 너무 컸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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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설득

삼십대 초중반까지 내 모습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뭐 대충 이런 스타일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좀 늦게 세계관이 바뀌었고, 내가 바뀐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바뀔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난 원래도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고.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한번 자리 잡은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란 걸 깨달았다. 물론 당연히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나 사실이 밝혀져도 꾿꾿하게 자신의 기존 생각의 틀을 벗어나려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에 맞춰 생각을 바꾸느니 자신의 생각에 맞춰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안티조선 운동을 할 때 더욱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난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낯 뜨거울 정도의 친일행각을 알게 되고, 살인마 전두환을 찬양한 조선일보가 립서비스로라도 "군사정권 시절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란 소리조차 없이 계속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그 신문의 실체를 알려주면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이 바뀔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거지.


내가 안티조선에 관심을 가진 건 대략 십년쯤 됐고, 요즘 진보진영에서야 안티조선이 당연시 되지만 그 당시에는 '조선일보 나쁜 신문이니 보지 말라'고 말하면 진보든 보수든 무슨 또라이처럼 바라보거나 할 일도 많은데 쓸데없는 짓 한다는 식이었다.


처음엔 조선일보가 친일을(그것도 굉장히 적극적인 친일을) 했다는 걸 말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교과서에도 민족신문이라고 나오는데 뭔소리냐는 거였다. 조선일보도 자신들이 친일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고 말이다. 난 그 때 조선일보가 친일한 사실만 제대로 알리면 사람들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친일의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래서 조선일보도 더 이상 자신들이 친일한 적이 없단 소리는 못한다. 그럼 사람들은?


마치 조선일보가 친일한 게 사실이라면 조선일보를 끊기라도 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사실이 밝혀지자 태도가 바뀌었다. "그 당시 어쩔 수 없었겠지"로 말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이런 관점으로 살펴보기 시작하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은 대로 사실을 바라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거나 하는 걸 대충 포기했다. 이미 어떤 생각(이데올로기나 종교 포함해서)이 자리 잡으면 상당수의 경우 그걸 남이 설득해서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들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고 그렇게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그건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라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실속도 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느니 내가 할 수 있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굳이 되지도 않는 설득하느니 아예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논쟁 자체를 피하거나 만남 자체를 없애거나 아님 싸우거나! 물론 싸우는 게 유쾌할 리는 없다. 그리고 누구하고나 다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년회 시작할 때 색깔을 빼고 가자 했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지만 우야뜬) 난 시큰둥 했었다. 민노당 사람들끼리 준비하는데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까지 다 끌어 모아서, 하고 싶은 얘기 제대로 못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 얘기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별로 재밌을 것 같지가 않았다. 생각 비슷한 사람들끼리 놀려고 민노당 활동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근데 민노당 안에서가 오히려 생각이 너무 달라 이러고 있으니 참 웃기고 자빠지게 씁쓸하다. )


사진반 반장을 맡고 내가 해야 했단 역할은 화합하고 조정하고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나처럼 나름 색깔 있는 사람이 그런 거 하는 게 그닥 체질에 맞지는 않았다. 굳이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공감갈 수 있는 것들로만 채우려 했다.


그러다 반장자리를 내놓고 나니 한결 맘이 편해졌다.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다른 생각을 가진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남에게도 스트레스를 준다.


대학 친구들도, 민노당도, 청년회도, 가족들도, 뭐 하나 온전히 맘편하게 하는 곳이 없다. 앞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살아야할지 고민 좀 해봐야 겠다. 아무래도 난 사람들과 ‘화합’하며 사는 건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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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이니까 당연하긴 한데...

지난 추석 때 찍은 사진을 보다 형의 모습을 보고 명주씨가 그러더라.

나랑 너무 닮아서 징그럽다나 뭐라나. (이상하다고 했나?)  특히 옆모습이.

"일란성이니까 당연하죠"라고 대답하긴 했다.

 

 

생긴 건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닮았다고 하니 닮았나보다 하는 거지 내 스스로는 그닥 많이 느끼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도 똑같다"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건 더더욱 안와닿았다.

분명 목소리는 많이 차이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초딩 6학년쯤이었나? 사우디 갔다온 사촌형이 그럴듯한 카세트를 사왔다.

지금이야 테잎이 사라지고 있고(조만간 CD도 사라질듯)  어지간한 것들은 더블데크가 기본이지만

그때 더블데크가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한 기계에서 플레이와 녹음을 동시에 하다니!!!

 

우야뜬 거기에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어보았는데...

난 깜짝 놀랐다.

분명 내 목소리를 녹음했는데 형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말하는 걸 직접 듣는 것과 녹음해서 듣는 것은 많이 다르다.

상당수 사람들은 녹음 과정에서 목소리가 실제 목소리와 다르게 녹음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말하면서 그걸 자기 귀로 듣는 것과 남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는 제법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주위 사람들을 캠코더로 찍어서 보여주면 "내 목소리가 왜 이상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듣기엔 실제 목소리나 캠코더에 녹음된 목소리나 똑같은데 말이다.

 

이번 아버지 제사 때 아버지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그 안에도 내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내 목소리가 제법 들어가 있다. 가족들이 다 모여서 봤으니 형도 당연히 있었는데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꾸 형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이상했다. ^^

 

어머니, 형, 형수, 조카 - 경기 민속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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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작년 제사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이라 이래저래 좀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두번째고,  아버지에게 목숨같았던(?) 우곡상회도 정리하기로 하고 해서 느낌이 달랐다.

재작년 내 생일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난 양력으로 하고 제사는 음력으로 해서 날자가 겹치지는 않는다.

올해 내 생일 즈음, 아버지 제사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희안하게 내 생일날 아버지 꿈을 꿨다.

요며칠 어머니 거취 때문에 머리속이 복잡했는데 아버지 제사까지 겹치니까 그냥 제사지내고 절이나 하는 것말고 뭔가 좀 아버지를 기리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병상에 계실 때 찍은 동영상을 가족들끼리 본 적이 없어서 오늘 보려고 준비했다.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챙기고, 함께 볼 부분을 찾아보는데 속상하고 가슴이 아픈 부분은 차마 고르지 못하고, 그냥 무난한 부분을 골랐다. 나도 오랫만에 다시 보는 동영상이었고,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들도 감회가 좀 새롭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재산 문제로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게 다 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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