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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23
    내 생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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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9/13
    암울했던 새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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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9/11
    송탄 문화제(2)
    무위
  4. 2006/09/05
    안중문화제-미군기지확장반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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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8/08
    요즘 이것 저것(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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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7/24
    필름 카메라를 지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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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7/07
    화재발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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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6/07
    현충일은 어떤 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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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5/30
    그런데가... 죽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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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5/17
    요즘 가끔 하는 것(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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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

뭐, 이런 사진을 올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바로 전 포스트가 이상하여 빨리 아무거라도 새로운 글을 올려야할 것 같아서리...

삼심대의 마지막 생일!

내사진 올리려니 상당히 민망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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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새벽

밤 11시가 다되서야 시간이 났다. 안정삼거리에서 모이기로

했었는데 전화가 왔다.

대추리 진입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경들이 전원 연행하려 해서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재집결 장소가 몇차례 바뀐 끝에

다시 안정삼거리 쪽에서 집결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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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을 것을 좀 가져가서 같이 먹었다.

새벽 3시에 모이라고 해서 이때까진 여유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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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너무 적어 보였다. 이 인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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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가 좀 넘어서부터 집회를 하고 있었고

그러다 용역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서 우리가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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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막아서고 우리는 집회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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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스 바퀴의 바람을 뺐다.

운전사 아저씨는 "차뺄테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했다.

"아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국방부에게 배상해달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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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니 이 용역버스는 미끼였고 우리가 이 버스와 대치하는 동안

다른 길로 용역과 중장비 전경등을 다 들여보냈다고 한다.

그걸 알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별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지난 5월4일 대추분교 침탈 때는 우리가 먼저 대추리에 들어가 방어를 하는 입장이었고 인원도 제법 됐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대추리엔 애초부터 진입도 안되고 모인 인원은 너무 적었다.

이삼백명이 모였고 그중 절반정도가 여자분들이었다.

은좌씨가 그러더군

"인원도 좀 되고, 젊은 남학생들도 좀 있고 해야 전술이든 뭐든 세워볼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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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적었고... 졸리고... 춥고... 참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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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며 발언을 하고, 가끔 노래와 구호도 외치고 했지만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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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경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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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전원 연행'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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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마을 쪽으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물러섰다.

경찰 왈 "너희들 대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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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왈 "반말 하지마,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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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경찰이 무전을 받고 나서 분위기가 변했다.

연행하지 말고 현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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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서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역들이 몇시간만에 버스에서 내렸다.

힘깨나 쓸것 같은 용역들도 있었지만 그냥 일당벌러 온 듯한 앳된 애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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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를 보니 이번 작전에 동원된 전경이 만4천명, 용역이 4백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린 고작 삼백여명쯤 됐을까? 게다가 전경과 맞짱 뜰 만한 인원은 고작 수십명밖에 없었다.

참 초라하고 무기력해 보이더라.

우린 그나마 몇백이라도 되는데...

대추리에 고립돼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얼마나 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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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빠져나와 평택시내에서 선전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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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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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 문화제

지난 주 안중에 이어 이번 주는 내가 사는 송탄지역에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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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누나가 대추리 사람들을 인형으로 만든 것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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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날씨가 느므느므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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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지역 독수리오형제의 멤버 태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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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날도 요술풍선을 불었는데 가격때문에 미제풍선에서 타일랜드 것으로 바꿨더니 풍선이 뻑뻑해서 팔아파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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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오형제의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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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평택 대책위 위원장 (나랑 동갑인데 난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이사람은 제나이보다 좀 더 들어 보여 같이 있으면 꽤 차이나 보인다.사람들은 그게 재밌나본데 난 잘못도 없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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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안중에서도 했던 극단 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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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촛불을 들고 있어서 관객 찍기가 좀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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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선거 때 경기지사 후보로 나왔던 김용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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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니까 무지하게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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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중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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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문화제-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지역에서 9월달엔 지역을 돌며 문화제를 열고 있다.

첫번째로 안중지역

난 외삼촌이 살고 계신 안중이 완전히 농촌인줄 알았는데 근래 몇년동안 아파트가 무지 많이 들어섰다.

주민 중 상당수가 근처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 밀집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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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행사 전에 난 요술풍선을 만들어 삐끼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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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쓰려고 친구에게 빌려왔다가 못썼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까먹기도 해서 안돌려주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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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교장이고 지난번 강제연행시 지문채취를 거부하며 손가락을 자해했던 학생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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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있는 것은 그림공장에서 만든 '주몽'이다.

TV를 별로 안보고 드라마는 더더욱 안보기에 내용이 뭔지는 전혀 모르는데 드라마 내용 중에 '자주'와 관련된 것이 있어서 그런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 갠적으론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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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술 시범이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도'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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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신기해서 인기는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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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계몽스런 내용을 재미있게 담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솔직히 별로 재미는 업더만

그래도 시민들과 아이들은 재밌어하고 호응도 나쁘진 않았다.

FTA가 뭐의 약자인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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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 Fine Thank you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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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으로 나와 당선된 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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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명 정도는 모인 것 같다. 담주에는 내가 사는 송탄에서 하는데 얼마나 모일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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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리 이장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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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들, 행사가 끝나고 주몽앞에서 사진찍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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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탁 트인데서 사진찍는 거 참 힘들다.

게다가 후레쉬도 고장나서 내장 후레쉬를 썼던 것도 좀 아쉽고.

우야뜬 연습을 좀 더 많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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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것 저것

- 실업급여 정식으로 취업하여 월급을 받아본 것은 10년이 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몇년전 사촌형이 취업할 생각이 없냐고 하기에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신의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 별 생각없이 그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찜찜했다. 다시 안된다고 하기는 그렇고 말이다. 덕분에 회사에서 의료보험도 내주고 연금도 내주고 하는 게 됐다. 그러면서 내게 인건비 지급하는 걸로 해서 수입을 줄이고 세금을 떼어먹었겠지 뭐. 그래서 찜찜했던 거고. 사촌형은 이사로 있었는데 이번에 회사 경영을 축소하면서 나오게 됐고 나도 같이 정리를 했다. 정리해고 형식이어야 실업급여를 탈 수 있기 때문에 형은 내가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하려고 해고 당한 것으로 처리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신신당부했다. "꼭 타먹으라"고 말이다. 실업급여는 6개월까지 탈 수 있고 내 연봉을 감안하면 총액이 600 내지 700만원 정도까지 탈 수 있다. 한나절을 고민하다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포기'라는 말도 좀 웃기지. 원래 내 것도 아닌 것을 '포기'한다니. 그 돈 받아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데에 써 볼까 고민도 잠시 했는데 그것도 구차한 것 같아서 깨끗이 포기했다. 예전엔 (그 때는 이렇게 되지 않았던 상황) '그걸 타게되면 해외여행이나 가야지' 하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나의 결벽증?을 아는 사촌형은 실업급여 신청했냐고 추궁할텐데 거짓말에도 젬병인 나는 그래도 거짓말을 해야할까, 아님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할까? 케케케 그래도 마음이 대따 편하다. '받을까'를 고민할 때는 너무 불편했거던^^


그냥 그랬다. 보통은 '그냥 그랬다'라는 표현은 '별로다'에 가깝게 쓰이지만 내가 한 말은 말 그대로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그닥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고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잘만든 것 같고, 내가 박해일과 변희봉을 좋아하니까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괴물 소리와 음악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음향이 과도한 것도 같고 스토리가 너무 뻔하게 돌아가는 건 좀 실망스러웠고 뭐 아주 좋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도 않았던 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글을 쓸 생각은 별로 없다.(사실 생각이 별로 없는 거지) 다만 괴물이 죽을 때는 마음이 아프더라. 괴물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잖아? 그냥 인간과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것 뿐이지. 괴물한테 잡혀먹힌 가족 처지에서야 원수이지만 괴물은 생존을 위해 본능에 충실한 거잖아. 고질라 죽을 때도 속상했는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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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지르다.

이젠 실질적인 디카 시대가 됐다.

내가 몇년전 디카를 처음 살 때만 해도 디카보다는 아직 필카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말이다.

내가 활동하던 곳 게시판에 "드디어 디카 장만"이라고 썼더니

"디카가 뭐에요?"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었는데.

내가 쓰고 있는 디카 (니콘 D50) 렌즈교환은 되지만 전문가용은 아니다. 나도 전문가는 아니고 말이다. 켁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는 꽤 됐지만 해수만 오래됐지 뭘 제대로 찍은 적이 없어서 실력이 신통치는 못하다.

사실 필름값 무서워서 디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살 때만 목돈이 들 뿐 아무리 찍어대도 따로 돈 들 일 없는 디카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디카를 꾸준히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내가 쓰던 필카는 정말 구식이었다. 미놀타 X700이었는데 완전 수동이다.

초점, 노출도 일일이 맞추고 게다가 난 주로 표준렌즈를 사용했기에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하며 발로 사진을 찍었다.(실제 '사진은 발로 찍는다'란 말이 있긴하다.)

 

그러다 디카를 쓰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감도 조절도 즉석에서 되고(필카는 필름을 통째로 갈아껴야 한다. 그나마 다른 감도의 필름이 있는 경우에나)

오토 포커스에 4배줌까지

게다가 찍자마자 그자리에서 확인 할 수 있고

현상 인화해서 스캔 뜰 필요도 없이 곧장 컴터로 읽어 들이고

 

 



전에도 한 말이지만 '미련'이 남다의 미련과 '미련'하다의 미련은 같은 걸까?

대단히 궁금한 사항은 아니어서 굳이 검색해 보지는 않았다.

 

그래, 필름 카메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디카의 단점도 제법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빠르게 단점은 사라져 갔고 눈부신 장점들 앞에 사소한 단점들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갔다.

 

내가 아는 '붉은'이란 친구가 있다.

애초부터 사진을 디카로 시작했다.

그당시 난 필카를 쓰고 있었는데 그 친구 왈

"필름카메라는 찍자마자 곧장 어떻게 찍혔는지 알 수가 없어서 너무 갑갑하다."

 

그래 분명 갑갑하다.

며칠전 평택역에서 범국민 대회 사진을 흑백필름으로 찍었다.

네통을 찍었는데(돈이 얼마야???) 시간이 없어 두통만 현상하고 두통은 아직 못했다.

현상만 했을 뿐 인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아직도 내가 찍은 사진을 못보고 있다.

현상액과 정착액 약품을 타고 암백에서 필름을 롤에 말아 현상통에 집어넣고 온도를 맞추고 스탑워치로 사간을 재 가며 현상->정지->정착 과정을 거쳐 물에 30분간 씻어내고 몇시간 동안 말리면 겨우 필름을 볼 수 있다. 필름만 봐도 어떤지 감이 전혀 안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확인하려면 또 한나절을 투자해서 인화를 따로 해야한다.

 

사진을 찍겠다는 것인지 사서 고생하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잘 모를 정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필름의 단점이 바로 필름의 매력이다.

 

필름값 걱정하느라 마구 셔터를 눌러댈 수가 없다.

이건 아주 커다란 단점이긴 하지만 사진을 찍는 태도를 사뭇 다르게 만든다.

한컷 한컷 집중을 하고 진지하게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디카로 돈 걱정없이 수많은 셔터를 눌러대지만 정작 건질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필름카메라도 같은 경우가 무지 자주 발생하긴 하지만 셔터를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다.

 

찍은 사진을 곧장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나름 큰 매력이다.

셔터를 누르자마자 확인할 수 있는 디카와 달리 아무리 짧아도 몇시간, 보통은 며칠이 걸려야 볼 수 있는 사진은 궁금증과 설레임을 갖게 한다.

"그깟 사진에 무슨 설레임씩이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것도 사진의 맛임을. 그렇게 기다렸다 건질 것 하나없는 실망감까지도 말이다.

 

이번에 지르고야만 니콘 F4, 렌즈는 디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80년대 나온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중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디카시대가 도래하야 값이 폭락한 덕에 나도 장만할 수 있게 됐다. 몇년 전까진 140~150만원(물론 중고이고 렌즈없이 바디만 말이다)이었는데 이번에 50만원 주고 샀다. 있던 카메라와 렌즈를 처분해서 실제 든 돈은 25만원. 나이는 먹어가는데 너무 무거워 많이 고민했지만...

디카는 가벼워서 망원으로 당겼을 때 삼각대를 쓰지 않으면 대부분 흔들리는데, 오호홋 이건 묵직한 덕에 300미리 망원으로 당겼는데도 흔들리지 않았다. 움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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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발생

알엠님의 [마음] 에 관련된 글.

초등학교 1학년 조카는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기 때문에

낮시간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날 엄마의 핸폰으로 전화가 왔단다. 울면서

 

"엄마,  불났나봐"

- 무슨 일이야?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하는데 불났으니까 대피하래"

- 용현아,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

 

용현이는 14층에 살고 있다.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아파트 차원에서 소방 방재 훈련을 한 것이다.

실제 훈련을 하기 전에도 여러번 안내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

근데 솔직히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방송하는 거 열심히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게다가 말이 초등학생이지 사실 유치원 졸업한 지 얼마 안된 초딩 신입생 조카에겐

"소방 방재훈련'이란 말은 뭔 말인지 잘 모르겠고

"화재가 났으니 긴급히 대피하기 바랍니다"라는 말만 확실히 알아들었던 것이다.

 

진짜 불이 났는 줄 알았던 어린 조카는 엄마아빠도 없이 혼자 공포에 떨었나 보다.

한편으론 웃기면서도 마음고생을 했을 녀석 생각하면 무척 안스럽다.

 

소방방재훈련을 하는 것이야 무슨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부모 모두 낮시간엔 없는 가정이 적지 않을텐데 아파트 관리실측의 섬세함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혹시 의례 아줌마들은 낮에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나???

 

 

 

*  꼬리 1

이 얘길 하다보니 얼마전 뉴스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1학년 아이의 뺨을 때리는 동영상 본 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1학년, 정말 조그마한 녀석들이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주려고 하셨나?

 

* 꼬리 2

체벌 얘기가 나오니 어제 잠깐 100분토론에서 신해철이 한 얘기 한토막.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심하게 때렸는데 그걸 학생중 한명이 휴대폰을 이용해 동영상으로 찍었나 보다. 그걸 인터넷에 올렸다고 했는지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학교의 문제 해결 방식이 압권이다.

 

학교에 휴대폰을 못갖고 오게 한 것!

교사폭력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다니, 대단한 내공이고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 꼬리 3

이글을 올리고 나서 조카 녀석이 오늘 다녀갔다. 그래서 오늘 찍은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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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은 어떤 날?

교사인 큰누나가 예전에 내게

"애들이 현충일이 무슨 날이냐고 묻더라"

 

아마도 현충일의 의미를 어떻게 애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내게 물어본 것이겠지.

난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날은 무슨날이야, 동족끼리 총부리 겨누다 개죽음 당한 거 기념하는 날이지"

누나가 내 말에 수긍했다 하더라도 애들에게 설마 그렇게 설명하진 않았겠지.

 

다른 기념일에 비해 현충일은 참 의미가 모호하다.

"호국선열"을 기리는 날이라는데 그럼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등 옛날에 나라 지켰던 사람까지 모두 아우른다는 의미일텐데 유독 왜 한국전쟁 희생자만 부각되는 느낌일까? 

나의 쓸데없는 취미를 발동하여 밑도끝도 없이 생각을 발전시켜보자면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죽은 병사들은 호국영령이 아닌거지?

동학때 일본군대가 아니라 자기나라 조정의 군대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호국영령인가 아닌가?

 

하여튼 현충일은 참 요상한 날이다.



"현충일이니 아버지 뵈러 대전 국립묘지에 가자"고 하시는 거다.

아버지는 참전용사로 무공훈장을 받으셨고 작년에 돌아가셔서 대전국립묘지에 뭍혀 계시다.

난 전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게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미안하더만.

 

 

서둘러 새벽같이 갔는데도 사람 참 많더라.

이젠 내게도 현충일의 다른 의미가 생겼군.

국가가 만든 현충일의 의미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내년부터 현충일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어머니 모시고 아버지 뵈러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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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가... 죽었다.

직장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됐다.

자살을 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워낙 밝았던 친구라 자살을 상상할 수도 없지만...

3주전 친한 친구가 자살을 한 후 많이 이상했다고 한다.

친구가 자살했는데 괜찮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고, 그런다고 자살을?

경찰은 차에 치인 후 옮겨졌을 가능성도 생각하는 것 같다.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기분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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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끔 하는 것

시의원에 나가는 민노당 후보 두명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요즘은 전에 거의 안하던 사진 조작을 가끔 하게 된다.
여유있게 많은 사진을 찍어 그 중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


이건 대추분교 침탈 다음날 막내 누나가 찍은 것이다.

공보물에 이사진을 쓰려 하는데 2% 부족해서 조금 손을 봤다.

이상한 점 찾아내기!



이건 너무 무리를 한 듯.

하다가 그만뒀다.



원본: 깃발의 '평화'란 글자가 잘렸다.

조작: 다른 사진의 깃발을 갖다 붙였다.

 

후보 얼굴도 선명하지 않고 딴짓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리...

후보얼굴을 포함해 여러가지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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