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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였던 자리<서울노인복지센터 상영>

가편집으로 상영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설레였던 순간.

할아버지, 할아머니, 복지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자리라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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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인정 봉도각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는

 2004년 겨울, 몹시나 아프던 그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봉도각이 있다.

 이곳에는 봄에 벚꽃이  할아버지들의 머리위며 연못위로 흐드러지게 날아올라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였다.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지금처럼 겨울이 되면

 봉도각으로 들어가 화투내기와 차내기를 하며 지내는 할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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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판<잊혀졌던 네오리얼리즘의 정수>

시놉시스는 이렇다.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에서 칠판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리부아르와 싸이드. 이들은 외딴 마을의 학생을 직접 찾아다니는 선생님이다. 배우는 데 뜻이 없는 거친 아이들이 험한 일을 더 고되게 하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산 쪽으로 양치기 소년들을 찾아 나섰던 리부아르는 국경을 넘나들면서 밀수품과 장물을 운반하는 소년들을 만난다. 모두가 그를 경계하지만 그와 이름이 같은 소년 리부아르는 이름을 쓸 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대부분 그를 반기지 않는 아이들과 어색하게 동행하는 가운데 추락사고가 일어나고, 싸이드는 다친 아이를 위해 칠판을 잘라 부목을 만들어준다. 칠판은 반 토막이 나지만 아이들은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마을로 내려간 싸이드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찾아 헤매는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노인들을 가르쳐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게 되자, 싸이드는 호두 40알을 받고 국경까지 안내를 맡는다. 그는 일행 중, 딸을 시집보내고서야 편히 죽겠다는 한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어린 아들을 둔 과부 할랄레와 얼결에 결혼까지 한다. 칠판을 예물로 주고 맞이한 신부, 할랄레에게도 글자와 수학을 가르쳐보려고 하지만 싸이드의 노력은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는데...

새해가 된 첫날, 뭔가 남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스무살의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훌륭했다.

아픈 어긋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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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가편시사<꽃이 피기도 전에>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때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고.
나는 3차 가편시사를 마치고 나서 몇번이고 그 동굴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다시 기어들어간다.

82분 59초로 <소풍>을 줄였고, 감독님의 도움으로 다시 46분으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1차가편시사때의 느낌과 정리된 느낌의 중간에서
헤메고 있는것 같다.

드디어 2006년 1월 1일이 되었다.
난 열심히 추가촬영을 할것이고, 다시 편집을 해서
4차 가편시사를 준비를 할것이다.
머리로 이해되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의 가슴으로 이해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간절히.

 

나는 소망한다.

피기도 전에 지는일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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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편시사<고개숙여 감사>

돌이켜 보니 너무했다. 첫번 가편시사때 120분이었는데
두번째가편시사는 125분이라니...다시 생각해도 나..너무했다.

얼굴을 들수 없었다. 휴..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왜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지,
정말 구성원들에게 끝까지 다 봐준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갈수록 어렵다.
3차 가편시사때는 70분으로 줄여야 되는데..
대략 난감하다. 어디를 버려야 하나...

 

세상과 소통되는 문에 나를 넣어 못을 박아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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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소풍>

내가 처음 느꼈던 할아버지들에 대한 거리감과 거부감, 그리고 낯섦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봉도각 노인정의 문을 두들겼고, 그렇게 첫만남을 가졌다.
나는 할아버지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들은 기꺼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시골 마을 노인정의 이야기를, 그것도 노년의 할아버지들만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느꼈던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짧은 방문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연거푸 하시는
할아버지들의 모습.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그 이면에 자리잡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늘 자식자랑을 할때면 목소리가 커지는 할아버지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고 또 화해하는 할아버지들의 일상.
또 인생을 마감해 가는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담대함과 삶의 낙천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노년기라 하면 한가지의 색깔로 일반화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적이 있다.
그랬다. 나 역시 그랬다. 무겁고 진중한 색깔인 회색과 검정색. 그리고
노년의 색깔로 대표되는 실버의 색으로. 봉도각의 할아버지들 개개인의
색은 달랐다. 다양한 모습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단지 할아버지인 것이 아니라 변호용이고 홍진유이고 남용조였다. 각각 이름을 가지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인간이라는 거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들인 것이다.
봉도각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봤을때 우리 노년의 모습도 조금 더 담대해지고 인간의 변해가는 모습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지금 할아버지들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고,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시골의
순박한 노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할아버지들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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