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울산노동뉴스] 칼럼

 

조성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5월27일, 나는 교섭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에 환호와 박수를 치는 플랜트 동지들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건설노가다와 조선노가다, 검고 단단한 얼굴들, 생긴 모습도 같은데 똑같은 자주색 투쟁 조끼와 단결투쟁 머리띠, 투쟁 조끼 등판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공동의 간절한 염원을 함께 담았습니다.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모습 속에서 신뢰와 연대의 기운을 느낍니다.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운 시간들

 

플랜트 투쟁 기간 동안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운 시간 중의 하나는 중공업에 물량이 떨어져서 온산공단, 거제도로 갔던 조합원 동지들에게 전화를 하면 “파업 투쟁 만근하고 있습니다 투쟁!” 정말 힘찬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플랜트 투쟁 집회 장에서 안전모와 색안경, 두건 마스크를 두른 동지들이 제게 와서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도저히 알아보지 못해서 누구시냐고 물으면 마스크를 벗고 이름을 말합니다. 이름으로 기억하고 목소리로만 기억했던 조합원 동지들의 “실체”를 확인했을 때 제 가슴은 벅차 올랐습니다. 전화연락만 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초기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동지들이었습니다. 폐업과 해고 블랙리스트, 병영과 같은 통제와 노조 탄압 속에서 저와의 만남 조차 부담스러워 하고 목소리가 잦아 들던 조합원 동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랜트 투쟁 속에서 단결과 연대의 힘들을 만들어가는 조합원 동지들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활력 있으며 전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건설플랜트 동지들은 “미래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병영과 같은 현장 통제 속에서 침묵하고 숨죽이고 있지만 스스로 단결하고 투쟁하고 있는 당당한 건설플랜트 동지들처럼 거대한 물결로 일어설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플랜트 조합원 동지들의 당당한 모습과 힘찬 함성은 반드시 사수되어야 합니다. 

 

교섭 타결 소식, 환호성을 지르는 플랜트 조합원 동지들 곁에서 전 가슴에 통증을 느껴야 했습니다

 

5월27일, 저는 교섭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에 환화와 박수를 치는 플랜트 조합원 동지들 곁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은 “교섭이 타결”되었다는 그 자체에 기뻐하고 있었지만 총연맹 임원과 건설연맹 임원들이 상층 밀실교섭을 통해 도출한 합의안은 “완전한 공문구”였기 때문입니다. 전 박일수 열사 합의서가 완전히 종이쪼가리로 전락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내하청활동보장, 임원들의 현장 출입 보장,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불이익 금지” 현대중공업 노무관리이사가 대표 싸인한 합의서에 채 잉크가 마르기 전에 현대중공업은 집단가입한 파워그라인더공 동지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일수 열사 합의서는 박일수 열사 투쟁의 확대를 막고 빠르게 마무리 짓기 위한 현대중공업의 기만이었습니다. 임원들의 출입은 경비대들을 동원해 틀어 막혔고 파워그라이더공들의 임단협 투쟁, 현장 투쟁은 구사대들과 경비대들에 의해 탄압 받았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업체에 소속된 조합원들의 현장활동을 진압하지 않으면 계약해지 하겠다는 경고장을 발송하고, 업체는 조합 활동을 하면 해고 및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을 자행했습니다. 조합원들에게는 무자비한 노조탈퇴공작을 벌였습니다. 하루 하루 피말리는 시간이었고 파워그라인더공 투쟁의 선두에 섰던 조합원들이 소속된 업체는 폐업되기 시작했고 조합원들은 계약만료 통보, 해고되었습니다. 폐업 되고 해고되는 모습을 본 많은 조합원들이 회사의 탄압에 못이겨 노조탈퇴서를 노동조합으로 보내왔습니다. 단결과 투쟁의 경험이 전무했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의 무자비한 탄압을 이겨내는 것은 중과부적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패배가 가르쳐 주는 교훈 속에서 미래의 투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5월27일 민주노총과 건설연맹 임원들이 도출한 합의서 또한 박일수 열사 투쟁 합의서와 다르지 않습니다. 건설플랜트 투쟁의 폭발력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이 투쟁의 확대를 막기 위한 수단이 바로 5월27일 합의서였던 것입니다. 합의서 종이쪼가리 하나로 건설플랜트 투쟁의 전국적 확대는 가로 막혔습니다. 합의서가 공문구라는 것은 핵심적으로 SK 자본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건설업체 사장들이 아무리 근로기준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해도 원청이 물량을 주지 않고 계약해지 해버리면 약속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원청이 내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암암리에 개입하면 뽀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아무리 시만단체, 경제단체, 울산시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다고 약속해도 그야 말로 성실하게 노력하겠다는 말뿐 원청이 배째라고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관객일 뿐입니다. 합의서 내용 몇 가지를 검토해보겠습니다.

 

△조합원 채용시 불이익 금지[구체적인 방안은 실무협의에서 별도논의 한다]
SK 자본은 전문건설업체에 물량을 주지 않은 방식으로,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조합원들을 업체에 취업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SK 자본은 결코 플랜트 노조의 현장 활동을 보장할 의사가 없습니다. 회사 시설권을 관리하기 위해 회사 시설을 무단으로 점거한 전력이 있는 플랜트 조합원의 취업과 출입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를 하더라도 노동권과 시설권은 충돌하고 오직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실무협의에서 별도 논의” 한다는 것은 완전한 공문구입니다. 만약 조합원 채용시 불이익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실행되더라도 이것은 “준법서약서” 혹은 “노조탈퇴서”를 작성한 자에 한해서만 허용될 것입니다. 이것은 플랜트 조합원들의 분열을 조장하고 단결권을 무참하게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생계의 문제가 걸려 있는 조합원들이 이러한 협박을 이겨내는 것은 대단히 힘듭니다.

 

△노동조합 인정과 편의제공[업체는 조합원에 대한 조합비를 일괄 공제하여 노조에 인도하고, 노조간부의 발주회사 및 원청사 출입은 공장장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긍정정으로 검토한다]

조합원 채용시 불이익 금지가 실무협의에서 별도 논의되는 마당에 조합비를 일괄 공제하여 노조에 인도한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노조탈퇴서, 혹은 준법서약서를 작성한 조합원은 현장에서 끊임 없이 노조활동을 하지 못하게 회유와 협박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조합 활동 자체를 포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조간부의 출입 보장 문제 또한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말도 공문구입니다. 조합원들이 현장에 집단적으로 복귀하는 문제도 대단히 힘든 과정, 투쟁을 거치게 될 것이지만 SK 자본은 현장 내에서의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입니다. 또한 현장활동을 완전히 봉쇄당한다면 임원들의 출입은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출입의 목적, 대상, 시간, 장소, 활동 내용, 조합원 공개, 모든 것을 회사에 보고하고 회사의 허락이 있는 이후에나 현장 출입의 길이 겨우 열리게 될 것이며 이러한 노조활동은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뿌리로부터 파괴당하게 될 것입니다. 회사의 허락을 득한 이후에나 노조활동이 가능하다면 이미 죽은 노조나 다름 없습니다.

 

△민주노총울산본부는 불법행위에 대해 울산시민과 해당 기업체에 사과, △플랜트노조의 합법적인 조합활동 보장, △민형사상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공동협의회가 해당 기업 및 관계기관에 건의한다

불법행위에 대한 사과와 면책 합의를 맞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은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정권과 자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의 합법적인 투쟁을 약속했다는 의미에서 민주노조를 완전히 식물노조로 만들려는 자본의 의도에 지도부 스스로 싸인한 행위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사과는 자본이 규정한 “폭도”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폭력 경찰의 폭력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한 일이 폭도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그 모든 투쟁이 “폭도”로 매도당해도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가막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형사상의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건의한다” 라니요. 작년 박일수 열사 합의서에도 면책합의를 했지만 현대중공업은 결코 면책합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박일수 열사 투쟁에 참가했던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있습니다. 벌금만 해도 1억 5천만원이 넘습니다. “건의”는 그냥 “건의”로 끝날 것입니다.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민주노조를 식물노조로 만들려는 자본의 의도에 굴욕적으로 싸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 영장이 발부된 동지들이나 출두요구서가 날아든 모든 동지들을 검찰의 탄압 앞에 세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투쟁과 교섭을 병행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투쟁은 완전히 교섭에 종속되어 버렸고 교섭에 종속된 투쟁의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플랜트 동지에게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은 99%의 투쟁과 1% 교섭, 즉 교섭은 완전히 투쟁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제발 교섭하자고 구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쟁을 통해서 교섭 자리로 사측의 모가지를 잡고 끌어내는 것입니다. 

 

상층 교섭기조와 사회적 협약의 의미

 

5월27일 전국노동자대회 앞두고 민주노총 임원들과 건설연맹 임원들은 다자간 협상이 결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밀실교섭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마땅히 우리의 지도부라면 “나올 것이 없는 교섭”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대회를 더욱 규모 있게 더욱 위력적으로 조직하고 자본과의 적극적인 전투를 통해서 투쟁 공간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건설연맹 임원들은 모든 교섭 창구를 틀어 쥐고 있으면서 나올 것이 없는 교섭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총연맹 임원들은 연단 위에서는 투쟁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뒤에서는 투쟁을 확대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서든 건설플랜트 투쟁을 정리하려는 아주 의식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적인 투쟁을 선포하고 확대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할 울산 전국노동자대회는 교섭 타결 보고대회로 이미 판이 짜여졌고, 이를 위해 구걸을 해서라도 교섭과 합의서를 이끌어오고자 했던 것입니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온 조합원들은 무기력한 관객으로 연사들의 발언과 구호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교섭 타결 소식이 있자마자 사회자는 “파업 투쟁 승리했다”고 선창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투쟁 경험이 있는 동지들은 누구도 파업 투쟁이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민주노총 임원들만이 파업 투쟁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의 문구를 따냈다는 것으로 파업 투쟁 승리했다니요? 우리의 지도부는 투쟁을 조직하고 투쟁을 확대하는 “투쟁 지도부”의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교섭, 타협, 노자간의 화해”를 본업으로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합의서 내용은 자신들의 본업조차 재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초라하고 무능하기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승리의 의미를 가져올 수 있다면 합의서가 이후 투쟁의 교두보[원청 사용자성 인정, 실질적인 노동조합 현장 활동 보장]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합의서는 공문구로 짜여져 있습니다.

 

5월27일 합의서는 정확하게 지역과 전국의 투쟁 전선을 해체시켰다는 것입니다. 지역과 전국의 연대투쟁이 사라진 지금 건설플랜트 동지들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동지들 스스로의 단결을 통해서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구속과 수배, 투쟁의 피로도,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언제든지 무장투쟁을 결의할 수 있는 700여명의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 건설플랜트 투쟁을 엄호하기 위해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지역과 전국의 비정규직 동지들의 힘을 하나로 결속하고 확대할 가능성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아가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이 지역과 전국 동지의 연대로부터 고립되고 더욱 힘든 조건에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5월27일 합의서는 패배를 뜻합니다. 우리 스스로 파업의 깃발을 내렸다는 것, 우리 힘이 정말 부쳐서, 하다 하다 안되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야 할 바로 그 지점에서 파업 투쟁의 종결을 선언한 것은 자본에게는 자신감을, 건설플랜트 동지들에게는 투쟁 동력을 이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민주노총 임원과 건설연맹 임원이 표방했던 교섭 기조와 사회적 협약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5월27일 합의서는 일시적인 패배를 뜻할 뿐입니다. 70여일의 파업 투쟁 속에서 건설플랜트 동지들은 스스로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고 투쟁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건설플랜트 동지들은 더욱 거대한 물결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이제 기간 파업 투쟁의 성과들을 보존하고 그 한계들을 진단하면서 전진해가야 합니다.

 

건설플랜트 투쟁의 의의

 

플랜트 동지들의 투쟁은 개별 단사의 투쟁이 아니라 이미 민주노총의 투쟁, 전체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이번 교섭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던 개별교섭이냐 집단교섭이냐의 문제는 원청 사용자성을 쟁취할 것인가? 아닌가의 투쟁이었습니다. 이는 곧바로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즉 노동삼권을 쟁취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였습니다.

 

“근로기준법 준수, 단체협약 쟁취”로 요약되는 플랜트 동지들의 요구들은 최저 강제규정인 노동기본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기본권조차 희생과 목숨을 각오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비정규직 투쟁의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업체를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투쟁 주체들을 공장 밖으로 내쫒았습니다.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부에 고소를 해도 법은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조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3자이기 때문에 각하 판정을 받았습니다.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왔습니다.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측의 탄압에 위축되고 노동조합 가입이 곧 불이익, 밥 벌이 못한다는 공식이 뚜렷한 현실로 굳어졌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중노위 판정을 통해 쟁취한 “원청사용자성 인정”은 아직까지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설플랜트의 “근로기준법 준수, 단체협약 쟁취” 투쟁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우리의 요구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물리적인 투쟁이었습니다. 스스로 단결하고 스스로의 단결된 힘으로 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투쟁하고 전투적인 투쟁을 통해 지역과 전국의 연대를 불러 모으는 투쟁 공간이었습니다.

 

건설플랜트 투쟁은 울산지역의 현자비정규직 노조와 용인기업 지회의 불파 투쟁 승리, 대덕사 지회의 생존권 사수 투쟁,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노동조합의 현장활동 쟁취 투쟁, 하이닉스 매그나칩, 경찰청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 연대의 초점으로 성장했고 건설플랜트 투쟁의 승리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의 승리로 귀결되는 전체 비정규직 투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플랜트 투쟁은 지역으로 전국으로 확대하고 또 확대되어야 할 투쟁이었습니다. 전국에 고립되어 힘겹게 전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을 하나의 힘으로 결속시켜 내고 그 투쟁의 힘으로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저지시켜 내고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힘, 바로 이것이 건설플랜트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건설플랜트 투쟁은 기간 평화적인 집회, 집회 연사들의 발언을 듣고 사회자를 따라 노래 몇 번 부르고 구호 몇 마디 외치고 끝나는 무기력한 파업에 파열구를 내고 조합원 전체가 구속을 결의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폴리스 라인을 돌파하는 무장투쟁이었습니다. 비록 찰나에 등장했다가 소멸했지만 건설플랜트 동지들의 무장 투쟁은 현장 조합원들의 반란의 의지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무장된 힘의 위력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2004년 1월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 설립보고 결의 대회 때 온 조합원 동지들은 나눠주던 머리띠도 어색하게 매던 동지들이었습니다. 1,000여명의 동지들의 팔뚝질도 제각각이었고 멋쩍어 하던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런 동지들이 사측의 블랙리스트 협박, 일당 50만원의 회유,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파업 대오를 유지했고 스스로를 무장했습니다. 동지적 신뢰로 무장했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투쟁 승리에 대한 결의로 무장했습니다. 무자비한 공권력의 탄압에 맞서 안전모로, 색안경과 두건, 마스크로, 조합원 전체가 쇠파이프로 무장했습니다. 상층 평화 교섭 기조의 중심부에서 전체 조합원 동지들의 무장투쟁이 성장해왔던 것입니다. 건설플랜트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반란의 힘이었고 최근에 등장한 최강의 전투력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건설플랜트 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유연화 공세(모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노동조합 무력화)에 맞서 “계급 전쟁”을 어떻게 치룰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그림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과 무장된 대중투쟁, 지역 연대 파업, 전국 노동자 연대 투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건설플랜트 투쟁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약점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전투력이 지도부 지침 한 방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투쟁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지도부의 지침을 따르기만 했지 오히려 지도부의 머뭇거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부재했다는 것입니다. 투쟁을 확대해야 할 시점을 놓치면 투쟁은 고립되고 마무리 수순을 밟아갈 수 밖에 없고 적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들어 탄압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투쟁을 회복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은 자신의 투쟁 경험을 종합함으로써, 문제점들을 진단할 것이고 이후 투쟁을 준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 투쟁에서는 더 이상 약점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힘찬 투쟁에 나서는 동지들, 힘내십시요

 

현장 복귀 찬반 투표를 통해 현장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많은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이 합의안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결시킨 이후에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동지는 충분히 현장을 조직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고도 하십니다. 또 많은 조합원 동지들이 투쟁의 피로도와 생계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현장 복귀 결정이 내려졌지만 현장 복귀 과정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권과 자본의 합의 파기와 탄압을 뚫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현장 복귀 과정은 기간 투쟁을 평가하는 자리 위에서 새로운 투쟁을 이끌어갈 지도부를 굳건하게 세워내는 일과 현장을 재조직화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투쟁 지도부를 구성하는 문제는 단순히 지도부 몇 명을 뽑는 문제가 아니라 각 분회장, 소대장과 대의원들을 투쟁력을 갖춘 동지들로 선출하는 것이고, 노동조합 전체를 투쟁하는 기구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투쟁의 선두에 섰던 많은 동지들이 구속되고 또한 수배된 상태에서 단순히 지도부의 지침을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조합원들이 아니라 스스로가 간부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재차 적들의 구속, 수배, 손배,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 등을 방어해내면서 플랜트 투쟁의 성과들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재차 현장을 재조직화하고 재파업의 현장 동력들을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건설플랜트 조합원 동지들, 여러분들의 투쟁을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투쟁은 지역 동지들에게 새로운 투쟁 의지와 힘을 불어 넣어 줬습니다. 아무리 적들의 탄압과 생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미 동지들 곁에는 목숨 보다도 소중한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 이제 동지로 함께 한 아내가 있고 동지들의 투쟁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지역 동지들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요. 건설플랜트 동지들의 투쟁을 따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도 투쟁 대오에 합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과 투쟁을 조직하겠습니다. 파업 투쟁의 경험을 현대중공업 현장 안으로 불어넣고 현장을 조직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투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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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2 13:40 2005/06/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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