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이른바 '현대차노조 취업비리'로 지난 두달간 현대차를 비롯한 울산지역 노동현장은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다. 언론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노조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하고 '권력화'된 대기업 노조를 무차별 난타했다. 그러나 두달이 지난 지금 울산은 자뭇 조용하다. 언론도 한발 물러선 느낌이다. 이제 차분히 이 '사태'를 되돌아볼 시간이다.

 

먼저 이번 현대차에서의 취업을 둘러싼 비리 사건을 '노조 취업비리'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취업추천을 누가 했는지, 인사청탁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모든 정보는 현대차 회사가 갖고 있다. 또 신규 채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곳도 현대차 회사다. 더구나 '노조의 취업비리'라면 노조가 조직적으로 개입해서 '취업 장사'를 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현대차노조 비리'가 아니라 '현대차 채용비리'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물론 이번에 드러난 일부 노조간부들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에 대해서는 법의 심판 뿐 아니라 노조 차원의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고 노조 스스로 자정노력과 재발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몇몇 노조 간부들의 부패보다 더 구조적인 데 있다. 97년 IMF 이후 전체 노동자의 60% 가까이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고 이 때문에 고용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몇천만원을 써서라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정규직 일자리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극단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고 심화되는 한 이번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편 현중노조가 새이념 새강령을 발표했다. 기업경쟁력 강화에 협조하고 복지노조를 지향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별로 새로운 게 안 보인다. 협조적 노사관계를 얘기했던 사람들이 지난 십수년간 줄기차게 해왔던 얘기에서 더 진전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현중노조의 새이념은 정규직 조합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주창하는 것처럼 보인다. 15,000 현중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정책이 하나도 안보이는 까닭이다.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이처럼 정규직 조합원의 현재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면 장기적으로 정규직 조합원의 이익조차 지켜내기 어렵게 된다. 오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나 몰라라"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게 되면 전체 일자리에서 정규직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로 이 정규직 노동자의 자식들이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냉혹한 노동시장에 대책없이 내몰리게 될 것이다.

 

87년 이후 18년,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핵심은 바로 '비정규직'이라는 화두에 있다. 현재의 정규직이 아니라 미래의 전체 노동자를 위한 10년 대계가 노동운동에 요구된다. 2년 후 2007년이면 민주노조운동이 20년차가 된다. 단위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전면 허용되고 전임자 임금지급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노조운동의 환경과 토대가 엄청나게 변화한다. 성년이 되는 노동운동은 나이에 걸맞는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썩은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건강하다. 갈 길이 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17 21:21 2005/06/17 21:2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plus/trackback/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