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하종 (대덕사지회 조합원)

 

어제가 대덕사 폐업 100일째였습니다.
겨울이 채 끝나지도 않았던 지난 2월 28일.
회사 게시판에 붙어 있던 폐업공고 2장.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십 수 년을 보냈던 직장이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무슨 이유로, 어떤 사정으로 우리가 졸지에 길바닥에 내팽개쳐져야 했는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굴러갈 때는 같은 가족이니 뭐니 하면서 노사화합과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던 그들이지만, 가증스럽게도 그들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겁니다.
저들에게 우리 노동자는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겁니다. 언제든 폐기처분 할 수 있고, 언제든 새로 고용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한 거지요.
우리의 정당한 파업은 늘 불법이고, 자기들 자본의 태업과 패악적인 온갖 불법들은 다 합법이 되는, 돈이 최고인 좆같은 세상인 거지요.

 

마음이 추워서 그런지 우리에겐 봄이 늦게 왔습니다.
같이 하던 동지들이 하나 둘 생계를 위해 우리 곁을 떠나갈 때, 남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울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끝까지 싸우자, 알았제?’라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아침 출투, 1인 시위, 대시민 선전전, 각종 집회, 서울 상경투쟁 등등, 우리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동안 지회 동지 여러분의 연대에 감사드립니다. 지부 간부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때론 따끔한 질책도, 때론 같이 고민도 해 주셨지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그 많은 철농의 밤이 얼마나 춥고 쓸쓸했을까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러분이 사주시는 소주보다 맥주가 더 좋습니다.)

 

그렇게 싸워왔지만, 아직도 저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냉정한 거고, 그만큼 저들은 악랄한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덕사 폐업’이 비단 우리 대덕사 지회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제2, 제3의 대덕사는 계속 생겨날 것이고, 우리 노동자는 끝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는 우리의 노동으로 겨우 먹고 살지만, 저들 자본과 정권은 우리의 피와 땀으로 배부르게 유지되는 세상입니다.
더 늦기 전에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락하신다면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1학년 은화와 6학년 정화, 두 딸을 키웁니다.
석 달 전부터 학원은 다지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하루에 두세 군데 학원을 간다는데, 나쁜 아빠는 돈이 없다는 말 대신에 학원 필요 없다고, 아빠가 더 잘 가르칠 자신 있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투쟁한다고 약속 못 지키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수영장 가고 싶다는 큰 애, 경주월드에 놀이기구 타러 가고 싶다는 작은 애의 바램도 저녁 해거름의 동천체육관 인라인 타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이 바닥을 보일수록, 실업급여 일수가 줄어들수록, 집사람의 얼굴에서 웃는 표정이 줄어들수록 저는 속으로 웁니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자본과 정권의 패악질은 두렵지 않습니다. 겁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그래서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내가, 우리가 찢어지고 깨어질지라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가족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다면 저는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고,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대덕사 조합원들은 끝가지 투쟁할 겁니다.

 

대덕사 폐업 100일차.
지역의 동지 여러분, 이런 우리의 꿈들이 현실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억만금의 투쟁기금보다 동지 여러분의 연대가 저희에겐 가장 큰 동력입니다.
언제나 선봉에서 싸우겠습니다. 여러분이 뒤를 지켜 주십시오.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날, 다시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감사의 술잔을 들겠습니다.

 

아!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현대자동차 자본, 정말 왜 이럽니까?
우리가 죄인입니까?
폐업시켜놓고, 타업체 취업했더니 대덕사 출신이라고 짜르는데, 블랙리스트 만들어 고사시키겠다는 그 심보는 도대체 뭡니까?
중앙교섭에 들어가는 간부님, 자동차 교섭위원님들,
대덕사 조합원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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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11:36 2005/06/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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