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기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소랍씨


13일 어울림복지재단 3층에 있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에 온지 9년이 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소랍(Sorab, 36세)씨를 만났다.

'이주노동자' 그러니까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굳이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흔히 쓰이는 '외국인노동자'라는 용어가 "한국인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느끼게 하는 반면, '이주노동자'라는 말은 "국적이 다를 뿐 인격을 갖춘 같은 노동자"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40만명가량의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울산에만 언양, 서창, 모화, 달천, 시례 등에 약 4천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 등으로 들어오는 계약노동자, 계약노동자나 관광비자로 입국했다가 장기체류하는 미등록노동자(흔히 불법체류자로 불린다), 탈북자 등 난민노동자, 원어민교사 등 전문취업자 들로 구분된다. 소랍씨는 이 구분에 따르면 미등록노동자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소랍씨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소랍씨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1996년 다니던 대학을 2년만에 그만두고 노동비자(D3)로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 일한 곳은 포항의 한 중소공장. 2년 계약이었다. 회사가 동의하면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가 맡은 일은 그라인딩(사상작업)이었다.

"처음에 너무 힘들었다. 한국 음식 입에 안맞아 고생했다. 공장에서 밥값도 안줬다. 한달 다 일해서 32만원 받았다. 그런데 다른 데는 똑같이 일해서 80만원 줬다. 그래서 다른 공장으로 갔다."

두달만에 공장을 나온 소랍씨는 마산 플라스틱 사출공장, 서울, 안산, 의정부, 인천, 일산 등지의 염색공장이나 가구공장 등에서 몇달씩 또는 몇년씩 일을 했다. 그러다 울산에 온 건 지난해.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닥트(환풍기) 제조. 공장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출입국관리소에 잡히면 바로 강제출국 당하기 때문이다. 하루 9시간을 일해서 받는 일당이 4만원. 4대보험은 당연히(?) 없고 특근수당도 없다. 일이 없는 달은 한달에 6-70만원을 받아가기도 했고, 지금은 100만원 정도 번다.

함석을 자르고 펴고 하는 일이 죄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얼마전 어울림복지재단에서 소랍씨와 함께 일하는 이주노동자 7명을 진찰해보니 전부 오십견과 근육통 증상을 나타냈다.

기숙사에서 7명이 함께 지내는데 부산이나 김해에 있는 방글라데시 음식 도매상에서 고향 음식을 공동구매해다가 당번을 정해 직접 요리해 먹는다. 쉬는 날은 가끔 놀러도 다닌다. 그러나 미등록상태라 차를 살 수도 없고 운전면허를 딸 수도 없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본국에 아내와 아이를 놔두고 남편 혼자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부가 같이 나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다.

소랍씨의 노동조건은 이주노동자 가운데서도 중간 정도. 시례지구나 모화 같은 곳에서는 하루 10-12시간 노동에 시급이 2,800원 정도밖에 안된다. 언어소통이 어려워 돈을 떼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숙사비도 따로 받고 노동강도도 훨씬 세다.

등록돼 있는 계약노동자들은 낮은 시급 때문에 4대보험을 시급으로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 출신 우까라는 여성 이주노동자는 의료보험을 시급에 포함시켜 받고 있었는데 이빨이 아픈 걸 참고 일하다가 심해져서 결국 치료비로 3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 배운 한국말 "Ⅹ새끼"

이주노동자들은 한국말을 '욕'부터 배운다. 그들이 처음 듣게 되는 한국말은 또 대부분 '반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말을 알아들을 때쯤이면 그들은 이미 불법체류자 신세다.

방글라데시 말로 "가"라는 말은 "먹어라"는 뜻이다. 현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자기들끼리 밥을 먹으려고 옆에 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더러 "저리 가" 했더니 이 말을 "같이 먹자"는 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 똑같이 일한다. 유럽이나 미국은 이주노동자가 오래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한국은 오래 있으면 더 못살고 더 힘들다. 일하다 손 잘린 사람 있었다. 아무도 안도와줬다. 일도 힘들지만 이주노동자 차별하는 게 더 힘들다."




합법이면 다 합법, 불법이면 다 불법

정부는 작년 11월 15일까지 불법체류자들더러 "다 나가라"고 몰아부쳤다. "일단 본국으로 귀환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랍씨처럼 5년 이상 미등록상태로 있던 이주노동자는 귀환해도 다시 안받아준다. 결국 소랍씨 같은 장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가면 다시 못돌아온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본국 현지의 인력송출업체에 300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돈을 내고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온다. 한달 100만원 남짓의 수입으로는 생활비 하고 본국에 송금하고 빚 갚는 데 3년 기간이 너무 짧다. 정부 말대로 본국에 돌아갔다 다시 들어오려면 또 그만큼의 돈을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유럽은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신고만 하면 최소한 강제출국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단속과 강제추방 일변도의 정책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과 진보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산업연수제 철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사면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다.

"법이 바뀌어야 한다. 합법, 불법 다 없어져야 한다. 합법은 다 합법, 불법은 다 불법. 누구는 비자 주고 누구는 안주고, 비자 없는 사람들 어디 가고 싶어도 못가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 알아볼 수도 없고..."

자리를 함께 한 어울림복지재단 이주노동자 지원사업팀 이남진 주임은 "이주노동자는 수혜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똑같이 일하고 일한만큼의 권리와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다. 잘못된 법과 구조를 바로잡아서 똑같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역시도 예전에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역사가 있다. 지금도 우리 역시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국적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으로 봐달라."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구성서공단의 소출력 FM라디오 이야기를 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라디오방송을 맡아 자기들 나라 말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소랍씨의 눈이 반짝인다. 못다한 이야기는 5월 29일 이주노동자 축구 시합 때 다시 만나 얘기하기로 했다.

"한국 와서 가장 많이 변한 게 머리 빠진 거"라는 소랍씨가 한숨을 쉬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 귓가에 남는다.

"언제나 편하게 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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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5 17:29 2005/05/1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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