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기
'이제는 시스템으로 맞서야 한다.'
이헌구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장

4월 28일 저녁 6시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본부장실에서 이헌구 본부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울산지방노동사무소 항의방문 과정에서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30여명이 연행되고 다수가 부상당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한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는 저녁 7시 산재노동자 추모제 참석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8시 쯤 다시 시작됐다.




세차례 구속, 성실한 반골

이헌구 본부장.

그는 못살기로 부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감천동 출신이다.

'벤또'(도시락) 하나씩 들고 보세공장과 구두방 가던 긴 행렬이 그가 기억하는 중학교 시절의 고향 동네 모습이다.

반골 기질이 있었는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부마사태에 '참전'했고 학교에서 데모꾼으로 불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해병대를 나온 그는 84년 대우조선에 입사해서 성실한 노동자로 악착같이 일했다.

당시 한달 기본급이 12만원이었는데 철야 특근을 8개씩 해서 26만원을 벌었다.

그 중에 24만원을 저금해서 1,000만원을 모을 정도로 억척이었다.

성실하기 그지없던 24살의 이 젊은 용접공은 그러나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동료의 죽음으로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오기옥.

서울 출신의 이 벗은 85년 8월 23일 예비군 훈련 날(그는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감전되어 죽었다.

회사는 그러나 감전사가 아니라 간질병으로 죽었다고 몰아갔다.

"이건 아니다!"

생애 첫 싸움이 시작됐다.

싸우면서 그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우조선을 그만두고 87년 12월 현대자동차에 들어온 그는 88년 5월, 당시 노조 이영복 위원장의 직권조인에 맞선 어용노조 민주화투쟁에 우연히 동참하게 되고, 이때 '한 마디'한 게 김강희, 추용호 등의 눈에 띄어 민실노로 '포섭'(?)되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조합원, 소위원, 대의원, 대의원대표를 1년에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그는 91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3대 위원장에 당선된다.

"성실하자. 겸손하자. 최선을 다하자. 이게 운동판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92년 초 성과분배투쟁으로 그는 첫번째 구속된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인 둘째 딸이 이때 엄마 뱃속에서 9개월째였다.

출옥하고 1년 남짓 되던 해인 95년, 양봉수 열사투쟁으로 두번째 구속.

"진짜 힘들었다. 아침이 안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현대자동차 현장조직 민투위에서 실노회가 떨어져 나오고 97년 7대 위원장선거에서 그는 실노회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나선다.

"이게 도대체 운동이냐? 내 갈 길이 뭐냐? 말로 다 못할 갈등을 겪었다. 선거에만 참여했지 실노회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당시 정갑득, 윤성근 전직 위원장들과 함께 굴뚝 농성에 올라 갔을 때는 현장조직도 없었고 와사풍까지 온 상태에서 또 다시 'GO', 세번째 구속.

출소 이후 그는 현장조직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현지사)을 만들고 미래회, 현노신과 합쳐 민노투를 결성한다.

"돌이켜 보면 순수한 조직 결합이 아니었다. 현지사는 후원회까지 해산했지만 다른 조직은 그렇지 않았다. 집행부 장악을 위한 구도에 머물렀다."

민노투 후보로 출마하여 2001년 10대 위원장 당선.

2004년 두차례나 선거가 무산되어 파행을 거듭하던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본부장 선거에 출마, 본부장으로 당선.

한편 민노투에서 미래회가 다시 분리되고 미래회와 동지회가 합쳐져 2005년 민노회가 만들어진다.




"정파를 뛰어넘어 시스템으로 자본에 맞서야 한다."

최근 '전쟁'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이헌구 본부장이 인터뷰 내내 되풀이해서 강조했던 말이 바로 '시스템'이다.

"자본은 철저히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궤멸되거나 포위되거나 투항하거나 포섭당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모이는 구조, 돈이 모이는 구조, 민주적인 회의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파간 분열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유독 힘이 들어간다.

"위에서 내리꽂는 식의 정파적 사업작풍은 없어져야 한다. 현장활동가들 사이에 선린우호를 회복하고 제조직이 함께 사업부별 조직평의회를 만들어서 현장의 공동 투쟁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면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에 대한 아쉬움도 덧붙인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인프라, 기본동력, 열정, 신뢰, 전투력, 전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다소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방파제가 필요하고 언덕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정규직 노동조합이다. 정규직의 배려, 접근, 희생,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쟁은 때와 시기가 있는데 현자노조가 챤스를 놓치지 않았나 싶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발표가 있자마자 바로 교섭을 요구해서 전열을 갖춰 대응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별도로 민주노총 예비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02년처럼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의 조합원 총투표로 지방선거 후보를 뽑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정파적 구도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게 흘러가고 있다. 민주노총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번 민주노총 중앙위에 올라가서 '총연맹 후보가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에서 결선 붙인다'는 정치위원회 규정에 반대했다. 그걸 '최대한 조율시킬 수 있도록 지역본부는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민주노총도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조합원 총투표가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안되면 민주노총 당원 예비투표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 민주노총에서 노동자 후보를 먼저 뽑고 민주노동당의 예비후보와 결선투표를 할 수도 있다."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자세를 낮추는 신문이 되어야"

울산노동뉴스의 창간발기인이자 초대 이사이기도 한 이헌구 본부장은 인터뷰 마지막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울산노동뉴스에 대한 바램을 건넸다.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울산노동뉴스가 노동자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주는 언덕이 되고 방파제가 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함께 뛰놀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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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3 18:52 2005/05/0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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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0/09/28 18:55 URL EDIT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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