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울산노동뉴스 창간 맞춰 시 한편 적어주십사는 부탁에

윤길 형님이 시를 한 편 보내왔는데 참 가슴 아리다.

 

 

 

 

 

내가 걸어온 길


내 어릴 적
굶기를 밥 먹듯 했던 시절
조선소에서 용접하는 걸 보고
저놈의 기술만 배우면 굶지는 않겠다싶어
기를 쓰고 용접을 배웠지요

그해 여름
한 동료가 감전으로 죽는 걸 보았는데
참으로 끔찍했어요
그 뒤로도 배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
떨어지는 쇳덩이에 맞아 죽는 사람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죽어가는 걸 보았지요.

이렇게 죽어간 동료들은
쓰다버린 소모품처럼
돈 몇 푼에 거적말이 되어
우리들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살아남은 우린 죽음에 면역되어 갔지요

이토록 험한 노동의 세월 속에서
내 정서가 곱게 자랄 수야 없겠지만
내 가슴 한구석엔 늘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내가 쓴 글에는 온통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져 있다고 그러데요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내 삶은 용접 연기 속에 꿈결처럼 흘러가고
노동에 찌들어 지친 몸뚱이만 남았지요
살아온 지난날에 후회는 없지만
거친 자본의 땅, 저항의 세월 속에서
젊은 날을 치열하게 살지 못한 부끄럼과
젊음을 덧없이 보내버린 아쉬움 가득하네요

어느새 히끗한 귀밑머리
늙은 노동자의 자투리 삶에 별 미련 없지만
갈수록 일그러지는 노동자들 삶 속에
세상은 아직도 어둡기만 하지만
죽어도 놓을 수 없는 바람 하나 있지요
사람 사는 세상
모두가 함께 웃으며 사는 세상
우리가 기필코 만들어야할 세상
시인이 시를 쓰지 않아도
삶 자체가 아름다운 시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언젠가는 오겠지요 언젠가는 꼭

2005, 4, 30. 장한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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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1 14:26 2005/05/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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