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11/24 19:44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지역 금속동지들의 수련회에 갔다. 서해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수 있다는 그 곳은 참으로 조용하고도 아늑한 바다를 끼고 있었다.

 

물론, 새만금 방조제 만큼 긴 방조제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쫓겨났을 어민들을 생각나게 해서 조금 울적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돌팔이가 맞다. 의사가 무슨 FTA 같은 정세 교육이냐?"라는 동지들의 농담을 즐겁게 들으면서 파업교육 요청까지 받아가며 한껏 고무되고 있던 즈음...

 

'오늘 올라 갈거냐?'는 한 동지의 질문을 받았다.

 

'방을 따로 잡아주면 자고 가고 아니면 그냥 올라갈거에요.'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했는데...

 

허거덕... 방을 따로 잡아놓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금속 수련회인지라 물론 여성은 나밖에 아무도 없었다.)

 

'다른 성인지 몰랐다'라던가 '제가 보호해줄테니 그냥 옆에서 자요' 또는 '일단 그런다고 대답해요. 어짜피 같이 술먹다 보면 결국 한쪽에서 같이 자게 될거니...'라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농담삼아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했다.

 

'제가 방을 따로 달라고 요구를 하잖아요. 동지들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자면 불편해요. 제가 요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마련을 해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하고...

 

농담삼아 이야기한것은 아닌데, 역시 금속동지들은 그 진심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방 안 잡아 줄거면 밤에 올라간다는 동지차를 타고 올라가리라 결심을 했다. 그리고 자꾸 그런 식으로 밖에 이야기 못하면 지역지부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 이야기를 했다. 돈이 없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기에 방 하나 값이 얼마 하지도 않으니 교육들으신 동지들 몇명이 만원씩만 걷으면 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방을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FTA보다 여성주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술을 몇잔 마시면서도 인천으로 올라간다는 동지의 차를 얻어타고 갈 생각이었다. 인천에 간다 해도 차가 끊긴 그 시간에 서울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겠지만 무작정 올라가야겠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지부의 간부 동지가 방 열쇠를 하나 들고와 조용히 나한테 넘겨주고 간다. 미리 예약해놓았던 방 4개중에 작은방 하나의 열쇠를 내게 준 것이었다.

 

몇 년전이었다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편'을 여성인 '내'가 감수해야 된다는 사실이 싫었다. 싫은건 싫다고, 불편한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부가 돈이 없는데...'따위의 걱정은 안 하기로 했다. 내가 무슨 봉사활동이나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활동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싶었다. 몇년을 봐온 동지들이고 친하게 지내는 동지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편한 것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지부가 정말 돈이 없다면 교육비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고 갈 것으로 예상되는 여성 동지의 방은 그 인원이 몇명이든 '당연히' 따로 잡아줘야 한다.

 

한 다섯명은 족히 잘 만한 방에서 혼자 편안히 잘 자고 일어난 아침... 문득 바깥을 내다보니 서해안에서 이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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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4 19:44 2006/11/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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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한꺼풀만 벗기면...

    Tracked from / 2006/11/24 23:29  삭제

    해미님의 [방을 주세요!] 에 관련된 글. 얘기인즉슨, 다수의 남성들+유일한 여성이 함께 한 1박2일 수련회에서 그 유일한 여성이 잠잘 방을 따로 달라고 요청했더니 이렇게 반응들 했다는 거다

  2. Subject : 떠오르는 에피소드들

    Tracked from / 2006/12/02 13:12  삭제

    은수님의 [변화는 있다?] 에 관련된 글. 변화는 있다. 너무 소소하고 느려 터져서 문제지. '물음표'를 떼는 건 각성한 이들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아마 은수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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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콩!!! 2006/11/24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글달다가 화르륵 해서 따로 써야겠다... 트랙백~~

  2. 감비 2006/11/25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지들 방 몇 개 예약했어요? 4개라구요? 그 중의 하나는 오늘밤 제가 쓰겠습니다. 아마도 이해가 안되는 동지들이 있을텐데, 제가 5분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술잔은 잠시 내려놓고 저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동지들은 농담처럼 스스럼없이 저에게 말을 하셨지만, 저로서는 대단히 유감입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요?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했는데도 동지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니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암튼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나중에 만나면 더 얘기해 봅시다~.~

  3. 해미 2006/11/25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언니 글을 보니 제가 왜 그리 떨떠름한 느낌이 들었고, 결국 블로깅을 하게 되었는지 알것 같아요.

  4. 해미 2006/11/25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슈아, 감비/ 별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그래두 제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한것은 제 스스로도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제 블로깅을 하면서 감비가 이야기한것처럼 못한게 정말 아쉬웠어거든요. 그렇게 확실하게 얘기를 했어야 하는건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리고 그 수련회의 평가자리가 있을때 공식적으로 짚고 넘어가려구요. 참... 어려운게 많은거 같아요.

  5. 염둥이 2006/11/25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씩씩한 당신.

  6. walker 2006/11/2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일하던 곳에서도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여성동지 한분이 명확히 요구하자,,,그동안 별문제의식이 없던 우리는 이후부터 당연한 것으로 예산에 포함해 첨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예산이다 뭐다는 다 핑계였습니다. 어쩌면 폭력이었지요...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스스로를 깨습니다.
    진보는 매일매일 스스로를 깨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이 진보가 돼야지..말만,,구호만 진보가 돼서는 안돼겠지요.. 여성동지들 화이팅,,,,,

  7. 해미 2006/11/25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염둥이/ 최근에는 그닥 씩씩하지 않았는디... 다시 조금씩 힘을 차려볼라구 하는 중임다. 조만간 회복되겠지요. ^^
    walker/ 그 지역에서도 그런 변화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도록 해야겠죠? ^^

  8. 지각생 2006/11/26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활속의 진보"에 트랙백 거심이 어떨지요

  9. 사막은 2006/11/26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윽~~ 구려.. 나빠요.

  10. 해미 2006/11/26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각생/ 넹... 알겠슴다. 트랙백 걸께요.
    사막은/ 글쵸? 나쁘죠?

  11. 비올 2006/11/27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작년에 그렇게 주장하여, 5일동안 혼자서 뽀닷하게 따뜻하게 잘 잤다는 말...남성 동지들 조금은 모두 투덜거리다가 나중에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다는...가르쳐주면 알지요. 잘 가르쳐 줍시다. ^ ^

  12. 해미 2006/11/2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올/ 그러게요. 잘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한 일인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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