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6/06 17:35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한글로 번역된 책은 이미지를 구하지 못했다. 번역-우종민, 한울)

 

내가 산업의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건 1999년 이상관 투쟁을 하면서였던것 같다. 사실 그전에는 의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가 더 큰 고민이었고, 그저 사람들 만나면서 학교다니는것과 나름 일부의 (예를 들면 생화학, 병리학, 생리학 같은) 의학공부 자체가 재미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다녔었더랬다.

 

하여간 산업의학을 전공하겠다고 의국으로 찾아갔을 때 선배중에 한명이 읽어보라고 권해줬던 책이 앨리스 해밀턴의 자서전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이 책을 얼마전 마창산추련의 책꽂이에서 발견했고 읽어보겠다 들고왔다.

 

앨리스 해밀턴은 소위 '산업의학의 어머니(난 이런 호칭이 참 싫다.)'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산업의학도 산업의학이지만 그녀는 보수적이기 그지 없는 하버드 의대 최초의 여자 교수였고 납중독 등 산업보건의 전통적 이슈들에 대해 세계 최초로 이야기하고 밝혀냈고, 사회개혁에도 관심이 많아 반전운동이나 지역공동체운동을 하기도 했다.

 

자서전이건만 개인적 이야기는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고, 공인 앨리스 해밀턴으로서의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어진 그녀의 활약상과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는 역사적 배경들이 비교적 흥미롭다.

 

아마, 산업의학을 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을 무렵, 이 책을 읽었다면 훨씬 더 큰 감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 그녀는 양심적인 자유주의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국을 일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말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삶을 살아 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과 가치관은 둘째치더라도 삶의 자세와 태도는 좋아보였다.

 

" 솔직히 그들은 모두 헙수룩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길레비치 박사의 외투는 안전핀으로 묶여 있었고, 문자 그대로 밑창이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의사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돈버는 데에 신경쓰지 않아도 독립해서 지낼 만한 수입이었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는 돈이 성공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의사들은 가족을 위한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연구 활동을 희생하거나 병원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번화가에 사무실을 가질 필요도, 비싼 자가용을 몰고 다닐 필요도,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혹은 비싼 자가용을 몰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건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모든 충동에서 자유로웠다. 그리고 비록 안락하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약 자기가 실패한다든지 혹은 부인이나 자녀들이 질병에 걸리게 되면, 전국에서 가장 좋은 요양소와 정양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경제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왔다."

 

- 1924년 러시아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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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6 17:35 2007/06/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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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께 2011/12/01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TA 비준무효, 촛불 문화제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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