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6/04 13:5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 현행 특수건강검진과 불안정 노동자 -

 

특수건강검진의 총체적 부실

 

요즈음 노동보건운동 진영이 시끄럽다. 바로 지난해 노동부 감사 결과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된 특수건강검진(이하 특검) 기관의 부실 논란 때문이다. 특검은 177개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각종 유해 물질에 대한 중독정도 등을 진단해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200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의 한 피혁업체에서 일하던 중국 이주 노동자가 DMF(디메틸포름아미드)라는 간 독성 물질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노동자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2월에 이미 한 차례의 검진을 받았고 이때 이미 간 기능 수치의 이상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검진기관은 일반 질병으로 평가를 했었고, 결국 노동자는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부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20개 특수검진기관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했고 올해 2월 부실기관으로 확인된 96개 기관(전체의 80%)에 대해 지정취소 및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시정조치를 받은 기관까지 합하자면 전체 120개 기관 중에 오직 한 곳만이 감사결과 지적사항이 없었다. 그 한 기관은 실제로는 특검을 시행하지 않는 기관이었으므로 전국의 모든 특검기관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된 셈이다.

 

검진기관의 부실? 다른 문제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고는 2006년이 처음은 아니다. 이보다 앞선 2005년, 태국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노말 헥산이라는 유해물질에 중독되어 앉은뱅이 병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말 헥산 역시 특검 대상 물질이고, 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특수건강검진이 수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8명의 태국 이주 노동자 중 7명은 불법체류자였고 자연스럽게(?) 특검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이 문제의 본질은 특수검진 기관 혹은 제도의 총체적 부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모두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검진 제도와 기관이 부실하고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그런 부실한 검진에서 조차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본 노동자들이 이주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불안정 노동자는 건강검진과 같은 기본적인 산업보건 서비스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전체 취업인구 중 18.6%만 건강진단이 이루어지고 있고, 4.1%만 특수건강진단이 실시되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만 특수건강진단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전체 취업인구의 28.0%정도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은 수만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부족하지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대기업 조선소의 하청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청 사업장의 경우 1998년 건강검진 수검자 중에서 1년 후에 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62%였으며, 2년 연속 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35%에 불과했다. 노동의 유연화로 하청 근로자 고용상태 불안정이 이어지며 이는 동일업종의 동일 작업은 하고 있으나, 동일 업체 내에서 지속적 고용기간이 건강검진주기보다 짧은 노동자의 경우 계속적으로 검진대상에서 누락되는 문제가 있었다. 같은 연구에서 이러한 잦은 퇴직과 재취업의 반복과정을 거치면서 불건강한 노동자들이 재취업에서 불이익이 발생되어, 고용 유지기간이 더욱 줄어들거나 아니면 영구 실업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결과적으로 건강검진이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노동자들이 오히려 구조적, 선택적으로 건강검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노동자로 인정도 되지 않는 다양한 특수고용직이나 이주 노동자를 고려한다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사회적 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가장 나쁘다는 사실이다. 장시간 노동은 물론이거니와 유해요인이 가장 많고 위험한 작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대부분 불안정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최근의 연이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1년에 한번이라는 건강검진의 주기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기간을 고려할 때 문제가 있다.

 

고용불안정과 노동의 유연화로 고용 상태 자체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동일 업체에 있더라도 고용기간이 건강진단 주기보다 짧은 노동자들이 계속 건강검진에서 누락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잦은 퇴직과 재취업속에서 불건강한 노동자들은 불이익을 받게 되게 마련이다. 불건강한 노동자들은 일을 오래 할 수가 없거나 재취업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실례로 건강검진 결과에서 이상이 발생한 노동자들에 대하여 계약을 해지하는 사업주가 22.4%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은 특수건강검진이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매번 건강한 노동자들을 뽑아 채용검진(혹은 배치전검진)을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건강한 노동자들만을 걸러내는 체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청력이 안 좋다거나 허리 사진 상 약간의 이상이 있어도 채용이 되지 않는다는 하청 노동자들의 호소는 이러한 추측이 사실로 벌어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이렇게 소외되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감시하고 개선하려면 기존의 사업장 중심의 접근으로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를 수 없다. 따라서 업종과 지역을 고려하여 노동자들의 산업보건 서비스가 지금처럼 사업주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논의 되는 제3자 지불 방식을 포함한 공공성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즉, 노동자들이 어떤 사업장과 직종에서 일을 하던지 간에 노동자는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검진결과가 지금처럼 고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업주에게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와 정부기관에 전달되도록 하여 문제가 있는 사업장에 대한 정부기관의 실질적 예방활동과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일괄적이고 도식적인 건강검진의 틀을 벗어나 유연한 노동시장에 맞는 유연한 검진체계가 필요하다. 그저 일 년에 한번 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가 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공 부문의 개입과 대책이 필요하다.

한편,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사업주에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과 관련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논의 기구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이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한국의 특수건강검진은 사실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그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검진기관들이 사업장의 종합건강검진등을 유치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로 운용해 왔던 것도 일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검진비를 주는 사업주의 입맛에 맞추어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질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불안정 노동자는 심지어 여기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수건강검진 제도의 개선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큰 틀에서의 제도 개혁 역시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문제와 부작용을 해결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목적이라면 법적인 산업보건서비스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깊은 이해과 고려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질라라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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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4 13:51 2007/06/0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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