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저 돈으로 생색을 내고 싶어하는 노동조합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씁쓸하다. 노동조합과 회사의 요구를 들어주면 나야 시간 더 안 들고 돈으로 때울 수 있어서 좋지만, 정말 양심에 찔린다.
물론, 돈을 좀 들이고 나면 그 사업장에는 최소한의 물리치료기기와 운동기구들이 생길거고 그게 잘 쓰이기만 하면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새털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일을 앞장서서 하는 기분과 현장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나의 의도를 '별 효과도 없고 생색도 안 나는 것'으로 규정하는 그들의 발언이 짜증났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심하다. 내가 무슨 봉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호객행위해야만 먹고사는 정도는 아닌데, 빌어먹을 직장일이 사람을 참 구차하게 만든다.
내년에는 절대 이런일은 못하겠다고 해야겠다.
구차함도 정도껏이다.
#2.
혹시 개인에 대해 MRI 등의 검사를 해 줄 수 있냐고 묻는 조합간부라니... 노동조건과 실태를 오롯이 드러내는 일보다 생색나는 검진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노동조합이 돈이 없잖아요'라고 한다.
사전 미팅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했건만... 전혀 안 들은 거다. ㅠㅠ
언제는 노동자들이 충분히 돈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나?
물론 돈이 많으면 운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중요한건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고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모색이 아닐까 싶다.
무늬만 노동자인 관료들이 싫다. 싫다보니 일의 효율이 확 떨어진다. 내일 설명회를 위한 기본자료를 준비해야겠다고 컴퓨터에 앉아 있는데 느무느무 하기 싫다. ㅠㅠ
#3.
다른 교수들이나 임상강사들한테 절대 안 그러는 직원이, 나한테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한다.
나이도 어리고 여성인데다가 물론 내가 정규직 교수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 동안 직원들과 격의없이 지내려고 했던 내 의도가 '만만함'으로 읽혔기 때문일 수도있다.
내가 직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다. 부탁을 해도 될동 말동한 일이고, 따지고 보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인데 그저 '한번도 안 해봤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지는건 아니었다.
잘 안 그러는데 결국, '제가 비정규직이고 어려도 그렇지 그렇게 얘기하는건 예의에 어긋나는거 아니에요?'라고 목소리를 높여버렸다. 그 직원 부정도 안하고 사과도 안한다. 그저 한번도 안해봐서 몰라서 그렇다고 짧게 변명하고 만다.
'한번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하는거냐?'고 묻고 상의해야 맞는 거다.
#4.
하기 싫은 일에 밀려서 하고 싶은 일이 뒤로 밀리는 요즈음이다. 생활비도 대야하고 빚도 있어서 직장을 다니기는 해야 하는데 그 귀찮음과 구차함이 날이 갈 수록 더하다.
이중생활도 정도껏이다. 싫은 건 싫다고 이야기하고 맘에 안 드는건 안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내공을 길러야겠다.
남의 돈 받는 다는게 대부분 구차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구차하기는 싫다.
딱, 올해까지만 참아야겠다. 그리고 그 사이 반격의 내공을 길러야겠다.
좀 덜 구차한 내년이 될 수 있게 말이다. 설마 지리산에서 길러온 호연지기가 불과 하루만에 바닥나는 건 아니겠지?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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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돼지 2007/05/31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길러온건 호연지기가 아니라 주량 아닐까요. ㅋㅋ. 긴내요
해미 2007/06/02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썩은돼지/ 주량은 안 늘었는데 술 먹고 싶은 욕구만 늘었다는... 언제 술 한잔 해야지요? 다요트 중이신듯 하니 술만 먹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