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코엑스에서 산업안전강조주간행사 있다.
매년 7월초가 되면 전국의 산업안전보건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워크샵도 하는 그런 큰 대회다. 항상 산재사망자 추모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는...
대회장소도 엄청크고 오가는 사람도 많은...
하여간 그 중에 두어가지 세션에 참석을 했다. 잊지 않기 위한 메모
#1. 참여형 개선활동 기법 (PAOT)
근골격계 문제의 예방과 현장 개선을 위한 현장 참여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것이었다. 도대체 말은 많은데 무슨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참여라 함은 누가 참여하는 것이고 개선이라 함은 무엇을 개선하는 것인가 궁금했더랬다.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은 연구소가 현장활동을 하는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같이 무언가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토론해서 변화를 꾀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다만 차이점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직접 참여기회를 열어주느냐와 누가 주도하느냐, 그리고 개선에 대한 스펙트럼을 어디까지 잡느냐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관리자가 다른 노동자들이 일하는 것을 관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가 본인의 입으로 어려움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바라는 개선방안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현장 조직 활동의 측면에서 유해요인조사든 개선활동이든 노동자들이 기획하고 조사하고, 실행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전문가가 지도하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개선의 스펙트럼을 도구의 개선이 아니라 변혁의 수준에 이르는 것까지 '안 될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열어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수년전부터 해오던 연구소의 방식(?)이 학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이상한 느낌이랄까?
#2.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싶은 노동자들
직무스트레스 관련 이야기를 하는 세션이었는데 한 궤도 사업장의 보건관리자인 간호사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상사고(열차에 사람이 치는 사고)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서 금전적 보상이나 휴가기간을 늘려달라는 것보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치게 되는 기관사나 시체를 수습하는데 같이 해야 하는 역무원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누군가가 죽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들은 정신과 의사를 너무나 간절히 만나고 싶을 정도인 것이다.
한 정신과 선생님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는데 왜 못만나는 거냐?'라고, 근무가 다이아(기관사들은 자기가 타야하는 열차의 출발시간에 따라 매일매일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변하는 스케쥴표를 가지고 있다. 그걸 다이아라고 한다.)로 돌아가서 병원올 시간이 없느냐는 것이다.
글쎄, 나는 정신과의사를 만난다는 것이 고용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면허제도 속에 정신건강에 대한 부분들이 포함되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되는 사람들은 전직이 되기도 하니까...
소위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에 대한 정신검진 의무화는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낙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고용과의 연동성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권침해의 문제이다.
누군가의 노동권을 박탈할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는 것 아닌가?
#3. 연구소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서 최신의 기술을 연구한다는 연구소의 보건관리자 해당 사업장에서 시행중인 근로자지원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을 소개했다.
98년 IMF 당시 2000명이던 연구원이 500명으로 줄었고, 다시 2000명의 연구원을 유지하고 있는,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고부가가치의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은 '상용화 기술'에 대한 압박으로 장난이 아닌 상황이었다.
당장 사용이 가능한 기술들을 개발해야 하고 그 기술로 업적을 평가받는 연구원들은 하루하루가 전쟁같다고 한다.
이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한 노동자는 골프채로 자신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119에 전화를 걸어 실려가기도 했고, 한 여성 팀장은 모야모야라는 뇌혈관 질환이 있는지도 모르고 밤샘에 과로를 하다가 여자화장실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가뜩이나 그 건물 전체에 여자가 거의 없는지라 그 다음날이나 되어서 겨우 발견되었다는 그 팀장은 몇일만에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보건관리자는 관심없는 사업주를 열성으로 설득해서 외부 업체에서 하는 상담프로그램을 제공했고 골프채로 머리를 피범벅을 만든 연구원은 개인 면담을 팀장이 사망한 그 팀은 집단 면접을 했다고 한다.
다들 마음도 편안해지고 효과도 좋았다고 한다. 그래, 그런다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지지는 않지만 마음이라도 편해졌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도 이런 문제로 상담을 받은 노동자들의 명단에 관리자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보건관리자가 자기도 모른다고 하였고, 관리자는 간호사라두 알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했단다. 간호사는 절대 그럴수 없다며 버텼다는데, 그 보건관리자가 바뀌어도 현장 사람들의 명단이 보호가 될 수 있을까?
#4. 기타
- 펀(fun) 경영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단다. 회의시간도 줄이고 업무 효율도 높이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CEO랑 같이 밥도 먹는게 좋단다. 즐거운 직장을 만들면 직무스트레스의 문제는 해결이 가능할 수 있을 거란다. 근데 내겐 즐겁고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보다 올라가는 생산성과 효율에 기뻐하는사업주의 모습이 더 먼저 떠오른다.
- 직원전용 심부름센터가 있다고 한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이에 다른 잡일(?)을 처리해주는 심부름센터를 따로 고용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회사의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마른수건을 짠다는 생각이 든다.
- 정신건강검진을 지금의 검진처럼 의무적인 것으로 하자고 한다. 그럴러면 사회적 낙인도 없어져야 하고, 정신 건강의 문제가 취업과 해고로 직결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결과표는 반드시 개인에게만 가야하고 사업주에게는 전체 결과만이 보내져야 한다. 자신의 검진 결과라는 개인정보가 사측으로 당연히 넘어가게 되어 있는 지금의 법체계를 인권위에 제소라도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 '안전한 일터, 건강한 사회'가 이번 행사의 슬로건이다. 일터는 안전할 뿐만 아니라 살 맛나야 한다. 그리고 건강할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한다. 슬로는 이렇건만 아직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몇명씩 사망하고 있고, 빈곤으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다. 갈 길이 멀다. 지금의 생산성과 경쟁력 제일주의 이데올로기하에서 과연 가능하기나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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