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12/18 10:26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몇 해 전의 일이다.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특수검진 업무를 하고 있던 친구와 지역 공장들의 열악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문제의 발단은 비소였다. 비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발암물질중 하나이다. 폐암을 유발하는 것은 확실하고 백혈병이나 림프종과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유독한 물질이다.

 

LCD를 만드는 공장에서는 유리를 녹여서 제작을 하는데 유리표면을 매끄럽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비소가 들어가고 비소를 사용한 로를 수차례 깨고 부수는 과정에서 비소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발견한 병원에서는 비소에 노출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작업자를 대상으로 비소 관련한 검진을 하기로 하였고, 현장에 오지 않는 관리직을 대조군으로 잡아 비교를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는 병원을 바꿔버렸다. 바로 그 업체가 ‘삼성’이라고 했다. 당시 정말 ‘대~~단한’ 삼성이라고 비꼬았던 기억이 있다.

 

최근, 그때 수다를 떨면서 우리가 대단한 삼성이라고 비아냥거렸던 지나간 일이 현실이 되어서 나타났다. 바로 세계 1등이라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던 23살의 여성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공정에서 일을 하던 다른 동지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기흥공장에서만 최소 7명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론 등을 통해 알고 있는 반도체 공장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돼서 노동자들이 우주복 같은 방진복을 입고 일을 하는 장면으로 연상된다. ‘그렇게 깨끗한데서 무슨 암?’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제품을 그렇게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수한 화학물질들이 들어가게 되고 이 화학물질로 인해 불임이나 유산, 암 등의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삼성은 백혈병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물질인 ‘벤젠’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일반 인구와 비교해서 높은 수준이 아니고 같은 라인에서 근무한 사람들이 생긴 건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기준은 노동부의 그것보다 낮아서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직업성 암이라는 것은 노출된 물질의 농도보다도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유전자 수준의 돌연변이부터 시작되는 암의 특성상 약간만 노출되어도 암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많은 양에 폭로되면 암에 걸릴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리고 백혈병을 유발한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벤젠일 뿐이지 다른 화학물질들이 백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건강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과거의 작업환경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고, 폐쇄적인 현장이고, 유족들을 도와줄 수 있는 노동자들도 내부에는 거의 없다. 삼성의 노무관리 하에서 유용한 현장 정보들을 제공해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한국타이어의 집단 돌연사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에서 정보를 주고 협조를 해줄 수 있는 노동자들만 있었어도 이렇게 일이 커지진 않았을 수 있다.

 

기자회견 장소에는 기자를 사칭한 삼성의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공동대책위를 꾸리고 기자회견을 한 후 매주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세계 1위라는 삼성, 한국의 최고 재벌이라는 삼성, 비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삼성이다.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는 어마어마한 환경 재앙도 삼성중공업이 관련되어 있고 반도체 공장에서는 젊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 싸움은 어쩌면 정말 어려울지도 모른다. 공대위를 준비하면서 한 동지는 ‘몇 십 년이 걸리는 일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싶다’고 조심스런 결의를 밝혔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던 우리의 가슴까지 뜨거워졌던 것이 생각난다. 결의를 밝혔던 그 동지처럼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이번에는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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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8 10:26 2007/12/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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