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9/18 09:35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잠이 너무 안 왔다. 전날 두 시간도 못 잔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에어 캐나다에는 좌석마다 콘센트가 달려 있어서 계속 노트북으로 이것 저것 정리를 했다. 이 여행 후기도 그때 작성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사를 한 관계로 필름을 맡길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여행 후기만.

 

이번 일정은 현지 날짜로 8월 30일 밤 퀘벡 도착, 9월 11일 오전 캘거리 출발이었다. 8월 30일 - 9월 4일은 퀘벡에 있었고, 4일-5일은 캘거리, 5일-11일은 캐나디언 록키 (밴프, 재스퍼 등)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현재는 아직도 사이클이 적응이 안되서 잠을 잘 못자고 있는 상황이고 기후 적응에 실패해 감기에 걸려있다. 서른이 넘으니 적응도 잘 안 되는 모양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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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색감이 넘치는 곳, 퀘벡 시티

 

400주년이라는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퀘벡이라는 도시가 1608년 상플랭이라는 탐험가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 말이다. 400년을 기념하여 Putomayo music에서 만든 ‘Quebek'이라는 음반을 비행기에서 들으면서 왔다. 유럽의 느낌이 넘치는 그 곳에는 거리 연주자들과 거리의 화가들 골목을 가득 채운 가게들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참으로 이쁜 도시였다.

 

별다른 생산 수단이 없어서 관광으로 먹고 산다는 퀘벡이고 독립전쟁의 역사속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동네라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사는 모습만 봐서는 그런 강경한(?)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뭐, 이태리나 뉴욕처럼 미술품이 넘치는 도시도 아니어서 나의 관심을 크게 잡아끌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거닐었던 테라스 뒤르팽과 퀘벡 미술관 뒤편의 넓은 잔디밭에서 피우던 담배, 프티 상플랭 거리의 햇살이 쏟아지던 한나절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미술관을 둘러본 후 잔디밭에 앉아서 사람들의 한가로운 오후를 바라보고 세인트 로렌스 강을 끼고 잔디밭이 펼쳐진 언덕을 거닐다가 총독의 산책길을 통해 테라스 뒤르팽에 이르던 그 길. 저녁의 해가 넘어가던 그 순간의 강의 풍경과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로 노래하던 거리의 음악가. 그리고 강바람에 쉽게 녹아들어가던 아이스크림의 맛까지, 그 여유로운 느낌이 좋은 한나절이었다.

 

프티 상플랭 거리는 색감과 감각이 넘치는 골목이었다. 색감이 따뜻한 그림과 다음 일정만 아니면 분명이 카드를 꺼내들고 말았을 것이 분명한 이쁜 유리 공예품, 각각의 가게를 장식한 독특한 색감의 창틀과 문짝, 하늘에 데롱데롱 매달려있던 알록달록한 물주전자까지... 따사로운 햇살에 이 가게 저 가게를 들락날락하면서 이쁘다를 연신 외칠 수밖에 없는 그런 날이었다. 아직도 눈앞에 아른 거린다. 이쁜 색깔이 들어가 있던 와인잔과 모빌, 그리고 풍경.

 

학회 때문에 머문 퀘벡이었지만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준 피자집 남미 아저씨의 훈훈한 웃음이나 며칠씩 지켜보다 들어가서 먹었던 스테이크 집의 뚱뚱한 점원 아저씨의 걷는 모습과 음식의 맛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레코드점에서 질러주신 "Quebek"을 들으면서 여름에서 가을로 막 넘어가던 시점의 퀘벡을 기억해야겠다.

 

#2. 캐나디언 록키, 그 장엄함

 

사실 이번 여행의 핵심을 퀘벡보다는 캐나디언 록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학회를 가기 전부터 여차 저차한 어려움 속에서도 꼭 가고 싶어했던 건 캐나디언 록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 가는지라 렌트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스 타고 돌아다니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moose travel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예약했다. 10명이 카렌스 같은 밴에 타고 캐나디언 록키를 3박 4일을 돌아다니는 코스였는데 이 투어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 아침을 해먹고 (이 시간이면 집에서 챙겨간 신라면, 둥지냉면 등이 엄청난 효력을 발휘했다. ㅠㅠ) 근처의 경치 좋은 데를 구경갔다가 보통 1-2시간쯤 산을 타고 내려와 (산을 타고 올라가서 호수를 보거나, 빙하를 구경하거나 계곡을 살피는 코스이다.) 또 경치 좋은데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또 경치 좋은데 구경 같다가 또 1-2시간쯤 산을 타고 내려와 세수도 할 수 없고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지리산의 산장 같은 유스호스텔에서 같이 저녁을 지어 먹고 맥주 한두 병을 마시고 잠이 드는 나날이었다. 첫날은 미트 소스 스파게티를, 둘째 날은 또띠아를 셋째 날은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한편 이틀간은 샤워도 못했다.

 

우리 팀은 총 12명이었는데 나를 빼고 우리의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인 새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학생인 캐서린, 독특한 호주 억양 때문에 처음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나탈리, 스위스에서 변호사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24살의 나딘, 동물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서퍼맨 닥, 폴란드에서 왔다는 20살의 청년은 자기 말을 가지고 있고 승마를 즐기고 카메라를 비롯해서 옷도 파란색이 많아서 블루라고 불렸고, 스위스에서 왔다는 아니타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병원 경영을 하고 있고 10년 된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안됬다는 코나일, 호주에서 유전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두 번의 유방암이 재발된 후 그 동안 벌어놓은 돈을 쓰고 있다는 타티아나, 영국 노팅햄에서 온 수영을 좋아하는 유쾌한 아가씨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반짝 반짝 빛나는 우리 팀의 baby 조지아, 마지막날 하루 결합했고 몸이 아픈 친구를 위해 새벽도 마다 않고 약을 구해 온 체코 출신의 잘 생긴 스윗가이 얀까지. 3박 4일간의 일정은 계속 영어로 이야기를 하느라 두 배로 집중을 해서 피곤하기도 했고, 하루에 걷는 양이 많아 피곤하기도 했고, 5일 이상 한국 사람들을 못 봐 한국어 금단증상을 느낄 정도였지만 즐거웠다.

 

horseshoe 호수에서 1도의 찬물에 다이빙을 하던 닥과 수영을 하던 친구들, 화장실 가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산길에 서서 바라보던 눈부시게 쏟아지던 은하수,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던 호수, 눈이 내리던 산길, 만년설이 하얗게 쌓인 록키 산맥을 바라보며 열심히 카누를 탔던 모레인 호수, 해질녘에 올라 athbasca 강을 내려보던 athbasca 산, 수만년 쯤 된 빙하를 걷던 기억, 밴프에서 함께 말을 타던 그 시간에 쏟아지던 햇살 (캐나다는 우리나라 보다 뭐든지 두 배 정도 비싸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물가가 비싸다. 물론 교육비나 주거 비용을 포함하면 우리나라가 더 비싸지만 먹는데는 두배 정도, 자는데는 1.5배 정도는 비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 비싼것이 있으니 바로 말 타는데 드는 돈이다.),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던 록키산맥의 모습까지.

 

그 규모와 크기에 압도적으로 놀랄 정도이기도 했고 장엄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사실 산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본 것이어서 생각보다 좋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다만 한국의 산들보다 뾰족뾰족하고 훠~얼씬 크다는 것, 자라나는 식물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호수는... 정말 예술이었다. 빙하가 만들어져 생겨난 호수라는 캐나다의 호수는 그 색깔부터가 다르다.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약간 탁한 느낌이 나는 완전 파란 색이었다. 작년에 본 천지가 너무나 투명해서 뚫려 버릴 것 같은 파란 색이었다면 여기는 하늘색 물감을 너무 잘 풀어놓은 것 같은 파란색이었다. 빙하에 같이 있던 진흙같은 것들이 난반사를 일으켜서 그런 거라는데... 하여간 너무 이뻤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록키의 밤 하늘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산장에도 불이 거의 없고 주변에는 전봇대조차 찾아볼 수 없고 핸드폰도 전혀 안 터지는 록키의 산장에서 바라본 하늘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닥은 북반구의 하늘은 남반구와는 다르다면서 너무 신기해했다. 은하수와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북극성을 같이 쳐다보면서 감탄사를 토해낼 수밖에 없는 하늘이었다.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어서 안타까웠지만 그 하늘과 호수를 가슴에 담고 왔다. 다음에는 히말라야랑 알프스를 꼭 가 봐야지라는 생각도 하면서... ^^

 

#3. 캐나다 여행을 위한 팁

 

- 우리나라보다 가을이 빨리 오고 겨울에는 더 춥다. 전반적으로 온도가 낮고 건조하다. 수분 크림 같은 것을 꼭 챙기는 것이 좋다. 화장품 가져가는 것을 깜박한 나는 피부가 최소 3년은 늙은 것 같다.

 

- 캐나디언 록키는 한 여름(7월 중순-8월 중순)에도 온도가 10도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심지어 눈이 오기도 했다. 너무 추워서 가져간 모든 옷을 껴입고 자야할 지경이기도 했다. 그나마 고어텍스 자켓을 하나 가져간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옷은 얇고 가볍운 등산복 같은 것을 여러 벌 가져가고 한 여름이라도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신경을 쓰는 게 좋다. 따뜻한 양말과 신발도 중요하다.

 

- 캐나다 하루 여행의 예산은 유스호스텔 30불, 직접 해먹는 다고 생각하고 기본적인 물이나 커피를 한잔 정도 포함하면 하루 20불 정도가 든다. 최소한 먹고 자는 데만 하루 5만원은 드는 셈이다. 여기에 각종 팁과 이런 저런 잡비를 합하고 한 끼 정도를 사먹게 되면 하루 10만원 정도가 금방 깨지게 된다. 여기에 교통비를 포함하면 최소한의 경비가 되는데 하지만 교통비는 이동 거리와 수단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가늠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버스 기본 요금이 3불 정도라고 생각을 하면 되고, 비행기는 국내선이 우리나라보다 두 배 (가장 싸다는 westjet도 같은 시간이 걸려도 우리나라 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정도 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장거리 버스도 꽤 비싼 것 같다. 캘거리에서 밴프까지 2시간 거리를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100불이 들었다. 캐나다는 신용카드 사용이 가장 자유로운 나라(심지어 샤워를 할 수 없는 산속 유스호스텔에서도 숙박비가 카드로 계산이 된다.)이므로 위험하게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 보다는 카드를 사용 하는 게 좋다. 나의 경우 퀘벡에 있을 때 점심·저녁 맛난 것만 골라 먹었더니만 마이너스가 또 장난 아니게 늘었다. ㅠㅠ

 

- 퀘벡과 캐나디언 록키 근처는 안전한 것 같았다. 밤새 술 마시고 늦게 돌아오는 중생들이 꽤 많았다. 술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술을 파는 가게에서만 살 수 있고, 담배는 주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실내와 연결하는 문밖 3m(라고는 하지만 보통 실외면 된다.)에서 피면된다.

 

- 캐나다는 산과 물이 많아서인지 각종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다고 한다. 래프팅, 카누, 카약, 승마, 등산과 같은 여름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스키, 골프 등등... 카누와 승마 같은 것은 한국보다 싼 것 같으니까 한번 시도해보면 좋을 것도 같다.

 

- 전압은 110V이고 콘센트가 다르게 생겼으니 만능 콘센트를 가져가야 한다. 참고로 한국을 오가는 에어캐나다에는 좌석에 콘센트가 있어서 비행기가 운행하는 10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원한다면 노트북 등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 밴쿠버, 토론토 등을 제외하고는 한국사람 보기 힘든 것 같다. 학회가 끝나고 캘거리로 이동하고 밴쿠버를 통해 귀국할 때까지 한국 사람을 본 것은 밴프의 한 온천에서 잠깐이 전부였다. 1주일간 내가 본 한국인은 온천의 그 부부 한쌍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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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8 09:35 2008/09/1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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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혹시 캐나다 여행을 가게 된다면

    Tracked from / 2008/09/19 08:32  삭제

    해미님의 [[캐나다] 여행 후기] 에 관련된 글을 봐야겠다...-_-ㅋ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흐린날 2008/09/18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캐나다여행 팁 추가.. 과속하지 마세요..ㅋㅋ
    저 다신 퀘백 못 갑니다. 퀘백에서 영화처럼 추격해 온 경찰차에 한국돈 30만원 상당하는 과속딱지 떼였는데, 다시 퀘백 가려면 고것 내야한다더라구요..

  2. 요꼬 2008/09/18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하하...흐린날 몬살어 해미 너무 부러우삼~나는 국내 산(특히 겨울산) 언제갈까나.....휴

  3. 해미 2008/09/18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린날/ 너무나 흐린날다운 댓글이오. 뭐, 퀘벡은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동네는 아니니.. 그냥 벌금은 꿀꺽하삼.
    요꼬/ 겨울산이 증말 사람 환장하게 하죠. ^^

  4. 감비 2008/09/19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전에 정착하기도 전에 캐나다를 길게 다녀오셨네요...ㅎㅎ..요즘은 내가 정신없어서 밥이나 술먹자고 연락도 못하겠네요. 조만간 연락드리리다~~

  5. 해미 2008/09/19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비/ 워낙에 인생이 역마살 인생인지라. ㅋㅋ 대전에 정착을 하려면 주변부터 살펴야 하는디... 대전 생활정보(?) 수집을 위해 감비를 한번 뵈어야 할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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