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1/23 17:15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몇몇 동지들과 태백산 일출 산행에 나섰다. 눈꽃 축제가 한창인지라 사람이 많았고, 기차표를 구하기두 쉽지 않았고, 떠나는날 총준위가 있기도 했지만... 갔다.

 

메모리카드를 사진 잘 찍는 동지에게 빌려주는 바람에 직접 사진을 찍지 못하여 블록에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내 망막과 대뇌에 남아있는 기억 몇 꼭지를 끄적여본다. 사진은 찍은 동지가 정리하면 몇 컷 올리는 것으로 하고.

 

#1.

새벽산행... 뜨뜻한 해장국 한 그릇으로 몸을 데우고 몇일간의 과도한 잠 안자기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새하얀 눈빛이 세상을 비추는 태백산에 올랐다. 여러사람이 하는 산행의 속도 맞추기와 배려를 생각하며 발 밑으로 눈들이 내지르는 소근거림을 즐겼다.

 

#2.

비교적 넓은 산길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고, 경사가 급하지도, 바위가 많지도 않은 새벽 태백산의 능선을 타는 것은 묘하게 포근한 느낌과 여유를 주었다. 그 길에서 비료푸대를 찾느라 고생을 하기도 하고, 자꾸 빠지기만 하는 아이젠 땜시 걸음이 느려지기도 하고, 고관절이 아파지기도 하고, 산행을 하면서 졸기도 하고, 아무말 없이 오르기만 하기도 했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따뜻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산행...

 

#3.

해사하게 밝아오는 겨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무렵... 예상외로 따뜻한 태백산 정상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지난 겨울 지리산의 일출이 하늘을 깨고 해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태백산의 일출은 세상을 안으며 해가 떠오르는 느낌이더라. 넓게 백두대간을 이뤄가며 이어지는 산세와 아침 안개를 포근히 품고 있는 계곡들은 태백산이 민족의 영산인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언제든 안기고 싶은 산...

 

#4.

내려오는 길... 험하지 않은 산길을 가진 태백산은 오궁(오리궁뎅이) 썰매로 유명하다고 한다. 비료포대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는 색다른 경험은 엉덩이가 좀 아프고 무섭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실컷 웃게 만들어 주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크고 환하고 시끄럽게 웃어본게 언제인지...

 

#5.

태백시내에서 하산주 마시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진지한 고민들이 나눠지고 술도 얼큰하게 오르던 무렵, 현자 비정규직의 분신소식에 맘이 상하다. 2005년을 또 이렇게 시작하는 구나 하는 느낌... 집에 돌아와서 전해 들은 노숙인들의 사망소식... 태백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키우고 왔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소식들에 푸르르 떠는 나를 발견한다.

 

#6.

산은 '마음이 아플때' 가게 된다. 가서 안기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헉헉 대면서 마음에 쌓여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태백산 산행은 '마음이 아퍼서' 가는 산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근 나의 상태가 그러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득 돌아오는 기차안 뭔가 편안해지고 치유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아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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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3 17:15 2005/01/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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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태곤 외 - 태백산 이야기

    Tracked from / 2005/01/24 11:26  삭제

    태백산, 가벼운 사람들 감동, 태백산 해맞이 태백산, 무거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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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ㅠㅁㅅ 2005/01/24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모리에 사진은 들어가 있는데 카드리더기로 메모리를 읽어야 합니다. 아마 카메라에 연결해서 보면 사진이 안보일 겁니다. 윈도우 탐색기로 이동식 디스크로 들어가보면 사진이 들어가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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