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1/30 14:54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비정규운동대토론회를 다녀왔다. 전날(아니다 당일이다. ㅠㅠ) 아침까지 이어진 총준위 뒷풀이후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부시시한 상태로 토론회장을 찾았다. 연구소 월례모임을 대신한다는 내부 방침도 방침이었지만, 2005년 비정규를 화두로 뭐라두 해보겠다는 막연한 결의를 좀 구체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경기서부건설, 학습지노조,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조, 타워크레인노조, 화물노조 등의 생생한 현장 사례 발표와 조성웅, 주봉희 동지의 시낭독... 류금신 동지의 노래와 가벼운 몸풀기가 이어졌다. 이후 이 토론회의 핵심이었을 '비정규운동의 평가와 과제' 전체토론이 진행되었다. 철폐연대와 비정규노동센터의 기조발제후 조성웅 현중사내하청위원장과 이상훈 공공연맹 비정규 실장, 재능노조 박신미 동지, 민노총 서울본부 여성오 동지, 사회진보연대 이종훈 동지의 발제가 이어졌다.

 

긴 시간동안 진행된 많은 이야기들과 토론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울기도 많이 울고, 몇년전 생각들이 계속 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1.

 

현장사례발표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활동가들의 낙관이었다. 지하철 청소용역노조동지도 재능노조 동지도 공공연맹 동지도, 서울본부의 동지도 밝고 환했다. 일두 힘들구 활동하기도 힘들구 조직하기도 힘들텐데... 그들은 밝았다. 약간의 자조가 섞인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여전히 굳건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참석자들은 환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 낙관이 그들을 그 상황에서도 버티게 하는 것이고 비정규운동이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느껴진다. 조직된 노동자들하구 사업하면서 힘들어하구 힘빠져 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2.

 

비정규노동을 탄압하고 관리하는 자본의 교활함에 무서움을 느꼈다. 작은 중소용역업체나 파견업체의 사업주들은 드물게 어리버리하거나 전통적(?)인 관리방식을 쓰고 있었지만 학습지나 화물연대 등등의 특수고용직들을 중심으로는 ERP등의 신자유주의적 관리 방식이 이미 도입되고 있었다. 노동자성 조차 인정하지 않는 유연화를 기저로 한 자본의 관리 방식속에 노동자들은 극심하게 착취당하고 있었다.

 

#3.

 

많이 울었다. 조성웅 동지가 얼마전 분신한 최남선 동지에게 바치는 시를 읽을 때, '죽어도 열사를 꿈꾸지 말라!'며 외칠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작년 봄 울산에서 만났던 조성웅동지는 그때보다 많이 변해있었다. 좀더 단련된 느낌도, 왠지 힘이 빠진듯 한 분위기속에 살아 있는 칼날이 느껴졌다. '죽어도 열사를 꿈꾸지 말라!'는 그의 외침속에 그 동안 동지들을 떠나보내며 그가 느꼈을 분노와 절망, 그리고 그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이 느껴져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주봉희 동지가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집회판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보게 되는 그 동지의 삶이 느껴졌다. 주봉희 동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재작년 종묘, 내 눈앞에서 타들어 가던 이용석 열사와 그를 붙들고 오열하던 주봉희 동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용석 열사의 장례식날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내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류금신동지와 함께 팔뚝질을 하며 파견법철폐가를 부르고, 비정규직철폐가를 부르는 와중에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

 

이 눈물속에는 몇년동안 아무것도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바탕으로한 이 운동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

 

전체토론 중 조성웅 동지의 발제는 인상 깊었다. 현대자동차 불파투쟁에 대한 이상욱 집행부의 입장과 행보를 비판하고 있었다. 사내하청 동지들의 가열찬 투쟁에 적극 연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투쟁으로 바라보고 있지 못한 현차 집행부에 대한 공개비판이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이 이 운동의 핵심 화두인 지금, 그의 문제제기는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현차의 대의원 대회에서 사업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우리 연구소의 상황과 현자 집행부와의 사업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정리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는 나의 상황이 겹쳐졌다. 현자가 가지고 있는 이 땅 노동운동에 있어서의 의미... 어떻게 해석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지...

 

소위 조직된 정규직 노동조합과 주된 활동을 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이런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뭔지...

 

#5.

 

전체토론의 기조 발제는 대략 답답했다.

 

철폐연대의 기조발제의 문제의식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참석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발언이나 '일자리의 질'이라는 단어의 사용이나 '사내하청은 정규직의 노동강도 강화를 이완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할 지점이 있는것 같았다.

 

조직된 정규직이 한국노총까지 합해봐야 10%정도이 이 땅의 현실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듯한 전반적인 발제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된 노동자, 그중에 소위 민주노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줌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전체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어떤 식으로든 신자유주의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 중요한거 아닐까? 예를 들어 정규직들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이나 비정규직들의 전반적인 투쟁이 다를께 뭐가 있을까?

 

또, 사내하청의 경우 정규직의 노동강도 강화를 단기적으로는 이완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강화시킨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안정한 고용의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도입으로 강화된 노동강도가 정규직에게 고스란히 이전되는 경우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자본은 비정규직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화를 기반으로 정규직/비정규직의 분열적 이데올로기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잉여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이고 있는게 지금의 흐름인것 같다.

 

두번째 비정규센터의 발제는 좀 어려운 느낌이었고, 기조자체에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비정규운동을 평가 전망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실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라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온 동지들은 비정규직의 실태를 그 누구보다도 피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논문식의 발제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 이런 문제의식들을 토론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막 이 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이 문제에 운동의 방점을 찍고 있는 동지들의 의견과 생각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우리의 운동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전망이 보이지 않는 기조발제였다. '전망의 부재'라는게 현재의 지점에서 느끼는 활동가들 전반의 문제이겠지만, 답답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6.

 

밤을 샌 음주로 오늘 오전 프로그램을 사수하지는 못 했지만, 어제의 느낌들을 정리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게 해얄 것 같다. 활동가들을 훈련시키고 조직사업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정규직 활동가들과 이 문제를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본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노동유연화와 관련된 활동들을 어떻게 시작하고 준비할 수 있을지... 실천적인 대중프로그램을 기획할 필요가 있는것 같단 단상이 잠깐 스쳤다. 게다가 짐 내가 결합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역시 이런 유연화의 극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단상들을 붙들고, 끝까지 함 파고 들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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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0 14:54 2005/01/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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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위에서 2005/02/02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성웅동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는바는 아니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발언이였다고 봅니다. 현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노조간의 갈등구조가 어떠한 양상인지(왜 그러한지에 대한 정확한 상황판단과 진단)를 알지못하는 다른 동지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정규직비판을 야기시키기도 하구요. 노노갈등의 절대수혜자는 자본가일뿐입니다.

  2. 문득 2005/02/05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위에서님의 의견과 같은 생각이 드네요. 가슴속에 아픈 마음은 우리 모두가 있었을텐데 그 본질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할것인지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할것 같네요.

  3. 해미 2005/02/09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위에서, 문득/ 그래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 놓고 이득 보는 것은 자본가일 뿐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름 붙인 자본의 치밀한 관리전략이겠지요. 불안정노동 전체에 대한 시비걸기가 되어야 할 텐데... 그날 조성웅 동지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런 분열을 조장하는 자본에 놀아나고 있는 느낌과 분노와 패배감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의 민노총 대대까지... 분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주목한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인데... 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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