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1/10 16:45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한 해의 마지막과 처음을 시작하는 나만의 행사로 자리 잡은지 3년쯤 된거 같다.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번잡하고 정신없는 연말 연시를 혼자 조용히 보고 싶었지만 못 봤던 영화들, 어느새 개봉했다가 내려버린 영화들을 보며 겨울 거리를 허부적 거리고 다닌지... 3년이다.

 

올해는 나다의 프로그램 중 약 절반이 이미 본 영화라는 기 현상이 있기는 했지만 연말이 평가서와 보고서 마무리로 어느 해보다 바빴는지라 새해가 되고도 한참 지난 어제야 나다를 찾았다. 것두 4시에 보려구 예매한 'Blues ; The soul of man'은 평가서를 쓰느라 취소하고, 빈 집을 보려고 말이다.

 

김기덕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는 감독이다. 그의 전작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봐온 나이지만 최근의 '봄, 여름...'과 '사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정말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불유쾌하고 거북했다. 이러한 거북함은 '나쁜 남자'에 이르러서는 정말 기가차고 화가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본걸 보면 피학적 특성이 있는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의 빈집은 '봄, 여름... '부터 긴가 민가 의심하던 평론가들에게 환호를 받은 작품이었고, 김소영과 같은 김기덕 혐오론자가 백기를 드는 평론을 쓰게 만든 영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했을까?'라는 지적 호기심이 영화를 보게한 가장 큰 동인이었다.

 

 

일단, 영화는 왠지 모르게 홍상수스럽다. 대화가 많이 줄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여주인공 이승연의 대사는 다섯마디도 안되는듯....) 했지만 분홍색 치마를 입고 젊은 남자와 함께 평창동으로 한옥 집으로 영세 아파트를 살포시 걸어다니는 이승연의 모습은 왠지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이다.

 

홍상수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화두가 김기덕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홍상수에게 말로 인해 어긋하는 '관계'와 '소통'이라는 것은 그저 구질구질할 뿐인 일상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는데 김기덕의 빈 집에서는 이런 관계 맺음과 소통의 어려움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의 모호함으로 정리된다.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성된 형태의 관계를 보여주는 선화와 태석의 관계는 그림자까지 지워버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태석이 동화됨으로 인해 현실이 된다. 관계라는 것의 완성이 이렇게 자신을 지우는 과정인 걸까? 사람의 시야를 벗어나 존재하는 태석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빈 집은 대사가 적은 만큼 이미지가 강한 영화다. 정서를 전달해주면서 영화에 묻어 있는 음악과 샤갈의 그림을 떠 오르게 하는 이미지들... 특히 선화와 태석이 머물렀던 사진사의 집에 있는 선화의 변화된 사진과 포스터를 보면서 샤갈이 떠 올랐다.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것들을 분할된 평면으로 배치하여 환상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샤갈의 그림처럼 선화의 이미지를 평면으로 분할하면서 그녀의 자아를 보여준다. 포스터 역시 공간에 떠 있는 듯한 인물들의 이미지가 샤갈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아름답게 표현해낸 샤갈과는 다르게 조금 더 우울하고 차가운 느낌이기는 하지만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또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이미지와 음악으로 살아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분절된 이미지를 말하기.. 영화라는 매체속에 음악과 이미지와 고민을 훌륭하게 조합해낸 김기덕은 이제 아티스트가 된 것 같다. 그의 다음 행보가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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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16:45 2005/01/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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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0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그거 너무너무 연습하고 싶어요..유령놀이..^^;;

  2. 미류 2005/01/10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볼까 싶은 생각이 아주 쬐끔 생기는구만. 샤갈이라니...

  3. 해미 2005/01/1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갈/ 영화를 보니까 매우 어려울것 같던데...ㅋㅋ 특히 저처럼 주위가 산만한 사람한테는 더욱더 그러할것 같아요. ^^ 혹시 연습해서 가능하게 되면 저한테도 비법을 살짝 알려주세요.
    미류/ 난 언뜻 그런 느낌을 영화에서 받았는데 너는 우짤란가 몰겠네... 김기덕 영화에 대한 그 동안의 판단을 살짝 접고 본다면 매우 회화적인 영화거덩. 워낙 이미지가 남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작용했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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