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09/12 00:14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어느새 9월이다. 자료를 좀 차근히 살펴야 겠다는 생각에 책상에 앉았았다가 청소를 하고 말았다. 주방에 욕실 청소까지 다 하고 나니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ㅠㅠ 주변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집중해서 일을 하지 못하는 천성탓에 대청소 후 정리한다고 쌓여 있던 책을 뒤적이다가 결국 몇 자 적기로 결심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여름인데 정신이 없다보니 그냥 지나가버렸다. 삼성반도체 갔다온 이야기나 사업장 돌아다니면서 느끼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생각,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모임과 지역 동지들과 나눴던 이야기들, 봤던 영화나 르느와르 전시회처럼 오가면서 느꼈던 스쳤던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이것까지 정리하다보면 날밤 새겠고 일단은 책 정리부터.

 

뭐, 간략하게 최근 근황을 전하자면, 9월자로 무사히 학교 발령을 받았서 스스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조교수라는 직함을 얻었다. 직함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도, 공부해야 할 것도, 신경써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게으름에 잘 못하고 있다. 바람도 서늘하게 부는데 일상도 단단하게 잘 꾸리고 내공도 키우기 위해 좀 더 분발해야 하는게 아닐까 반성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1.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2008)

 

가슴이 찡하다는 사람들의 자자한 칭찬에다가 만화라는 장점, 수채화 같은 그림체가 좋아서 후다닥 읽었다. 음... 기대가 커서 그런지 난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일들 그리고 내 주변에서 흔히 겪었던 일들이러서인지 새롭다거나 이런 느낌도 크지는 않았다. 아직도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보다 더 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지 싶다. 삼성반도체에서 만났던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모습도 겹친다. 오퍼레이터라는 공식적인 명칭이 있지만 현장에 있는 다른 관리직들이나 남성인 엔지니어들이 그저 '여사원'이라고 부르는 그녀들의 많은 수가 여전히 대한민국의 '원주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2. 노동의 종말 (제레미러프킨, 2009)

 

GNR을 바라보는 시대에 노동의 패러다임, 노동자라는 계급에 대한 고민이 꾸준이 이어지고 있는 나로서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책이 처음 발간된게 1996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상당히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 문제인식에 동의함을 뛰어넘은 대안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봐야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대안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 '각자가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또한 보다 넓은 사회 공동체의 선을 최적화함으로써 자신의 복지를 개선한다'는 '사회공동체 서비스'의 개념과 '환경 파괴적 관행 및 그 활동에 세금을 부과하며 기업 이윤, 노동, 개인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을 특별히 줄여 그 이익을 배당한다'는 아이디어인 '세금전가(tax shifting)'는 소유구조에 대한 접근까지 이르는 것 같지는 않지만 활용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논의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봐야겠다. 또한 사회적 통화의 일종으로서의 '시간 은행(time bank)'도 조금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결국 '노동은 기계가 하게 될 것'이고 '사람은 내재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된 사회 공동체 의식을 재활성화 하기 위해 해방되어야'하고 인간이 '사회적 자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할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네트워킹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퇴출이 된다면, 지금처럼 강고한 자본의 패러다임안에서 실업과 빈곤을 겪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러프킨이 그린 세상은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구체적인 전술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다.

 

- '효율의 도그마는 심지어 일상 생활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까지 옮겨졌다.'

 

- 과학기술의 진보가 노동자에게 천국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원칙적 활동의 쇠퇴로 다가오고 린 생산의 도입이 '결코 끝이란 없는 연속적인 개선 과정 속에서 약점을 계속하여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압박식 관리 방법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파괴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그 당시에 나온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그리고 기술적 진보 속에서 생산성의 향상이 근로시간의 감소와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시장 경제에서의 고용 감소와 공공 부문에서의 정부 지출 감소가 제3부문인 비시장 경제에 투여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제 3부문이 저임금과 빈곤을 양산하는 구조로서 작용하면서 노동시장의 왜곡에 더욱더 기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런 내용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받아들여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 연간소득의 보장을 경제적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주장은 현재의 기본소득 논의와도 관련이 된것이다.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한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중요한 것은 기본과 표준의 기준을 어떻게 잡는 것이냐가 될 수 있다. 최근에 '기본자산'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단기적으로는 힘일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소유의 문제가 아닐가 한다.

 

#3. 상호부조론 (하승우, 2006)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의 고전이라 할 만한 상호부조론을 재해석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나한테 농담삼아 '아나코 생디칼리스트'라는 이야기를 했던 선배가 생각났다. 생디칼리스트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지만 나에게 약간 아나키스트적 성향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키즘에 대한 느낌은 전략적 차원이라기 보다 전술적 차원에서 그들의 운영방식과 원칙들을 차용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무강권주의'라는 용어도 맘에 든다.

 

-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란 미리 마련된 어떤 청사진이 아니라 그런 사회를 추구하는 운동에 참여한 대중의 집단적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인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평생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나도 활력이 떨어져 있는 지금의 운동에 활력을 만들기 위한 최대공약수 찾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게 아닐까?

 

- 정치운동이란 "원대하고 먼 미래의 쟁점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심 없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쟁점"을 가지고 전개하는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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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0:14 2009/09/1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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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zrael 2009/09/15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김교수~ 축하축하!! 나 좀 데려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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