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9/29 18:05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1. 한국타이어에서 28살짜리 사내 하청 업체 노동자가 사망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간 그는 다음날 출근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그 하청 업체 노동자가 근무하던 회사는 내가 보건관리대행을 위해 들어가는 사업장이었다. 유소견자가 아니었고 근속도 얼마 안 되어서 내가 직접 상담하진 않았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방문은 했는데 하반기 방문은 아직 일정이 안 잡혔다. 더군다나 올해 하청업체의 건강검진을 우리 병원에서 한것이 아니라 검진 결과조차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업장에 들어가서 다른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언젠가는 옆을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지 않던 어느날은 우리 간호사 선생님께 혈압을 쟀을 수도 있다. 한국타이어는 관련 유해물질이 노출되는 수준이 낮아서 작업과의 관련성은 희박하다는 이야기만을 언론에 전했다. 그 언론 보도를 보는 순간 화가 났다. 28살의 노동자가 일을 끝내고 집에가서 사망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닌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는 행태에 화가 났다.

올해 초 신정 연휴가 끝나고 나서 정규직 노동자가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을 때도 한국타이어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사람이 죽었다. 사업장에 책임이 없다고 하기 전에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게 없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이야기하는게 인지상정 아닐까? 아마 해당 업체는 훨씬 더 예민하게 건강관리를 하겠다고 덤빌 것이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먹거나 혈압이 조금 높은 노동자들은 관리자들한테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한 내 자신한테도 화가 난다. 뭐라고 이야기할 것도 없고 알고 있는 것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 이 상황이 싫다. 분노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게 정말 화가 난다.

 

#2. 대전시 중피종 환자에 대한 연구가 끝났다. 과거 존재하던 석면 슬레이트 공장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 악성 중피종에 걸려서 사망한 사람을 찾기도 했고 여전히 중피종으로 투병중인 분을 만나기도 했다. 현재 존재하고 앞으로도 늘어날 환자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그저 그 분들이 걸린 병이 그 공장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주는 것 말고 이미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고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그 분들께 해 줄 수 있는게 없다. 환자들을 조직해서 이런 문제들을 널리 알리고 미리 예방을 해야 한다고 머리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몸으로 힘들게 지내고 계신 분들한테 직접적 도움을 드리지도 못하면서 무언가를 부탁하는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 분들이 남아있는 생을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고 관리를 제대로 못한 회사는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그 분들의 병이 완치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3. 갑자기 교실을 분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사자들의 의견도 확인치 않고 그렇게 되었을 때의 차이와 전망을 알지도 못 하면서 총장의 한 마디에 갑자기 소속이 바뀌어야 하는게 당황스럽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냥 받아들이면서 나의 피해가 최소화 되는 방안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내 현실에 짜증이 난다.

 

#4. 요즘의 나는 그냥 직장인인것 같다.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연구 결과들이 활용되는 방식을 보면서 무기력해지고,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나서 그나마 그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전체적 차원에서 변화는 하나도 없고 그들을 쪼아대고 있는 거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의대 학생들한테 무엇인가를 가르쳐서 직업을 물어볼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해 보겠다는 목표가 좋아보이다가도 금새 그런다고 크게 바뀌는건 없을 거란 생각에 침울해진다. 이런 식으로 계속 약간의 불만족을 가지면서 그나마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한 말들에 책임을 지고는 살아야 할텐데,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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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18:05 2010/09/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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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국인 2010/09/30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국에서 다윈에게 물어 봤을때
    인간이 인간에게 맞을수록! 전투적 바이러스는 진화가 주는 최고의 선물 이었다.

    • 해미 2010/10/01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투적으로 맞서라는 말씀이신거지요? 근데 그러기에는 너무 무기력한 제가 싫기도 하다는.

  2. 콩!!! 2010/09/30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닥토닥... 나도 오늘 대행나갔다가 열받고 답답해서 포스팅 하려고 접속했는디. 그래서 저항과 대안을 생각하고 살아내는 사람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뫔(몸+맘) 잘 살피셈.

  3. 내멋대로글 2010/10/01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命意,천안삼가리는 가지 마세요,아셨죠.
    노동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구요....

  4. cyberdoc73 2010/10/01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 한 잔해야 쓰것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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