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4/15 09:0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역시 어딘가에서 청탁받아 쓴 글... 글을 쉽게 쓴다는 것은 엄청난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언제쯤 나의 내공이 올라올 수 있을까? ㅠㅠ

 

---------------------------------------------------------------------------------

 

근골격계 직업병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들 ‘골병’이라고 부른다. 근골격계 직업병은 특정한 신체 부위의 반복 작업과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작업 자세, 강한 노동강도, 과도한 힘, 불충분한 휴식, 추운 작업 환경, 진동 등이 원인이 되어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허리, 다리 등 주로 관절 부위를 중심으로 근육과 혈관, 신경 등에 미세한 손상이 생겨 결국 통증과 감각 이상을 호소하는 근골격계의 만성적인 건강 장해를 말한다.


이러한 ‘골병’은 우리 주변에도 참 많다. 급식 조리원 아주머니, 청소용역 아주머니, 마트의 계산원, 조립라인의 아주머니들처럼 날만 흐리면 삭신이 쑤시고 파스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많이 아픈 경우 아주머니들은 서로 서로 어느 침술원이 용한지 어느 찜질방이 좋은지 다들 알고 계신다. 이렇게 나두 아프고 다른 사람들도 아픈것이 개인의 문제일까?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 안 아픈 사람이 없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골병’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작업환경의 문제이다.


골병은 작업자세, 작업량, 반복성들로 이야기 되는 개별적 작업환경 뿐만이 아니라 노동강도, 직무스트레스, 구조조정, 현장통제 같은 집단적 작업환경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또한 골병은 많이 써서 생기는 질병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퇴행성’이다. 아주머니들의 손과 어깨가 아픈 것이, 허리와 무릎이 아픈 것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에 의해서 50대에 생긴다는 오십견이 만약 30대에 생겼다면 이는 ‘자연스런’ 노화과정이 아닌 것이다. 그럴때는 내 작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골병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파보이지 않아 그 심각성이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골병은 진행되면 일상생활이 매우 어려워지는 질병이다. 처음에 작업시간에 좀 아프다가 쉬면 좋아지던 것이 작업 시작하자마자 아프기 시작해서 다음날까지 계속되기고 하다가 진행되면 쉴 때도 아프고 자다가 깰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다. 이쯤되면 손을 어깨위로 올려 머리 긁는 것도 힘들어 지고 밥숟가락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골병은 기본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게 일을 해서 생기는 병이다. 따라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좋아지기 힘들다. 또한 퇴행성 변화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자체도 쉽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취직하기도 힘들고 그나마 집에서 돈버는게 나밖에 없는 마당에 일을 쉴 수도 없어 꾸역꾸역 하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러한 골병에 잘 걸린다고 한다. 여성은 힘이 없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도 떨어지며 통증에 대한 인식의 역치가 낮아 같은 통증에도 쉽게 ‘아프다’고 얘기하기 때문에 여성의 근골격계 직업병이 남성보다 많다고 한다. 그나마 여성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하는 학자들은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 ‘가사노동’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높이가 키에 맞지 않아 인간공학적으로 좋지 않은 조리대에서 이루어지는 요리와 설거지, 그리고 손목을 많이 돌리게 되는 빨래나 걸레 빨기 등의 작업, 무릎을 꿇고 이루어지는 청소 등의 작업이 노동을 하는 ‘여성’의 골병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아마도 위의 논리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다 일까?


현장을 보면 여성으로 특화된 노동의 성격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라인 작업의 경우 정밀하고 집중을 해야 하는 작업이나, 가볍지만 반복성이 빠른 작업에 여성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검사같은 업무들이 주로 그러한 업무인데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적인 집중과 긴장을 요구하는 데다가 마지막 공정으로서 납기 기한을 맞추는데 가장 중요한 공정으로 노동강도는 매우 세다. 또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는 청소용역, 급식 조리원, 사무보조 등등의 많은 일들은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가 가속화 되고 빈곤의 여성화가 진해오디면서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기본적 전제하에 엄청난 노동강도를 요구받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상황이 대부분 이럴진데 병에 안 걸리는게 더 이상할 것이다.


골병은 예방만이 살길이다. 물론 일상적인 스트레칭이나 요가, 수영과 같은 운동을 통해 근력을 키워주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한 대처 방식이기는 하다. 거기다가 작업대의 높이를 키에 맞추고 손에 쥐기 쉬운 공구를 사용하고, 무거운 물건들은 호이스트등을 사용해 옮기고, 계산 방식을 손이 편한 방식으로 바꾸고, 가끔씩 기대서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휴식시간을 늘리고 일을 좀 편하게 하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만큼 일하고 몸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한다면 골병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고용이 불안정해서, 비정규직이라서 벌 수 있을 때 왕창 벌어야 한다든가 집에서 남편은 짤리고, 아이들도 취직이 안돼서 노는 바람에 엄마들이 버는게 유일한 생계수단인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다른 것들의 효과는 아주 일시적이다.


여성노동자가 남성노동자에 비해 육체적으로 ‘힘든’일을 하지 않는 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피를 말리는 자본의 통제와 불안정 노동 속에 노출되어 있고 더욱 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골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통제’의 사슬을 깨야만 한다. 이러한 노동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의 ‘자율권’과 ‘작업장 통제’의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여성노동자들을 골병에서 구해내는 방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15 09:01 2005/04/15 09:01
TAG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ptdoctor/trackback/7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뭔일이래 2005/04/17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제, 우찌할꼬 작업장 정치 만들기말여......
    심장과 대갈빡에 다가갈려면, 이리된 꼬라지에 대한 사실이해와 원인규명이 절실하고, 이에 기초한 희망과 전망만들 방안에 힘을 쏟아야 되겠지요. 사실 쏟고 있는 중인디......
    힘내자 힘. 씰데없는 주문이 아닐래면 가슴과 대갈님을 맞대야 할텐데 그죠.

  2. 해미 2005/04/18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일이래/ 말투를 딱 보아하니 누군지 알듯 하군요. 글게요 작업장 정치 만들기를 고민하겠다고 팔자에도 없는 노동사회학이나 노동자 문화론도 고민하고, 활동가나 현장 역동을 분석해보려고도 하고 있는데 여전히 희망이 안보이는 듯함. 가슴과 머리를 울리기에는 역부족 인듯도 하고... 하지만 힘은 냅니다. 근거없는 낙관...ㅋㅋ

About

by 해미

Notice

Counter

· Total
: 425097
· Today
: 256
· Yesterday
: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