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3/25 14:13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최근 내가 스스로에게 명명한 진단명이다.

 

이번주 수욜날 광주교육갔다가 심야우등타고 서울 올라와서 집에서 두시간 자고, 병원일로 평택에 갔다가 수련회 교육을 위해 제부도를 갔다. 그리고 다시 어제밤 급하게 서울로 와서 술을 진창 마시고 오늘 일어나 생각해보니 꼬여있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이 파견 나가기로 되어 있던 외과 과장님이 한번도 오지않는다고 화를 내시고 우리 교수님과 상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교수님은 이러저러하게 내 편을 들어주시기는 하셨으나 (파견을 못 나간것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의국일을 했기 때문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평택에서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딴 길로 샌것에 매우 화가 나셨고,

 

또한 어제 예정이었던 직원들과의 회식에 내가 빠지게 된 것에 대해 (사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이 불가능함을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화를 내셨고, '당장 서울로 오라'는 전화를 받은 나는 제부도의 물길이 열리자 마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울로 급상경하기로 했다.

 

제부도에서 버스를 타고 잠시 있다가 생전 처음 타고 있던 버스가 고장이 나서 길가에 서버렸고, 어제따라 유난히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바람에 떨다가 다음 차를 탔다.

 

제부도의 물길이 열린 저녁 6시 30분이후 9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한 나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직원들도 많이 취했고, 지금 노래방 가는 분위기라서 오시기가 더 애매한거 같네요.'라는 전공의의 전언을 듣고 허탈해졌다.

 

어제... 몇몇과 즐겁고 거하게 술을 먹으면서 교수님한테 혼난것은 잊고 즐겁기는 했으나...

 

오늘,

 

술이 덜 깨서 정신은 몽롱하고 속은 메슥거리는 아침 출근전 엄마는 집과 관련된 돈 얘기를 계속하시면서 얼마가 들었다를 계속 읊으셔서 폭발 일보직전에 이르게 하셨고(하지만 오늘은 엄마한테 짜증을 안 냈다. 스스로 대견스럽다. ㅡ.,ㅡ;;),

일단 외과 외래에 찾아가서 과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며 잔소리를 한참 들었고,

외과 외래에 있는 친구의 난처했던 상황을 보상해주고자 즐겁게 수다도 떨어주고 파워포인트 기술도 한 꼭지 알려줬다.

이틀만에 병원에 나타난 나에게 전공의들과 직원들은 쌓여있는 일 얘기를 하니라 계속 정신없게 하고,

알고보니 사일전 교육다닐때마다 녹음을 해서 모니터링을 해보려고 아르바이트해서 샀던 엠피쓰리는 어젯밤 어딘가에서 분실한듯하고,

입은지 몇일 안 되는 옷은 소매부위가 뭐에 걸렸는지 틑어져서 수선을 맡겨야 할 지경이다.

 

객관적으로 일진이 상당히 안 좋은 날이었던 거다. 어제는... 이라고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난국을 겪을만한 전조도 있었고, 이유도 있는것 같았다.

 

최근 사람들이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다'며 내게 장난을 쳤다. 광주에서는 사무실에서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냈어요?'라고 반갑게 인사한 동지에게 두시간여의 교육이 끝난후 다시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냈어요?'라고 물어 그 동지가 기겁을 했다.

 

정말 치매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잘 챙긴다고 분명히 챙겨놓은 교안이 가방에 없다거나, 꼭 읽겠다고 인쇄해 놓은 문건이 어디있는지 찾지를 못한 다거나, 분명히 다운을 받은 자료가 컴퓨터에 없다거나, 같은 얘기를 두시간 후에 같은 사람에게 또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친구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다고 놀렸고, 나한테 같은 오더를 두번이나 받은 아랫년차는 '선생님 인지기능 장애아니세요?'라며 농반 진반이다.

 

그때그때 판단해얄 것들이 동시에 밀려드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와중에 영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멍~~ 한 상태로 있는 경우들이 좀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오늘부터 주말까지 할 일은 열다섯가지에 이르고 모두 한두시간안에 끝낼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굵직한 것만 보더라도 500페이지 가량되는 보고서를 마저 편집해야 하고, 4월 학회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기관지에 글을 한편 써야 하고, 이상한 잡지에 논문을 정리해서 글을 써줘야 하고, 병원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보고서를 써야하고, 월요일 있을 이사준비도 해야하고, 선전위 정세토론을 준비해야하는등의 회의 준비도 있다. 

 

게다가 오늘 저녁에는 입국식이라는 거한 의국행사까지 있는 마당이니... 아무리봐도 다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결국 당장 월요일까지가 아닌 것들은 미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 이르고, 내 자신과 주변이 정리가 안되는 것은 문득, 나의 욕심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일도, 활동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치적인 생각과 행동도... 전부 잘 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 이런 혼란을 불러오고 인지기능의 장애를 불러온 것이다.

 

직장에서도 잘 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이다 보니... 부담이 배가 되는 것이다. 가지고 싶은것 하고 싶은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니 머리가 엉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벌려놓은 일들을 한 단계 정리하고 욕심을 덜고, 사유를 덜고... 가볍게 가야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욕심을 덜고, 할 수 있는 일과 과함을 구분해야겠다. 동시에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해야할거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밀도를 높이는 것으로 자투리 시간들을 최소화 하고 그런 밀도를 통해 여백을 만드는 것을 동시에 구사해얄것 같다.

 

암튼.. 이번주와 같은 혼란과 정신없음은 다시 겪지 말아야 겠다. 좀만 더 그러면 잠적하고 싶어질거 같다. 자... 다시 출발해보자구!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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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5 14:13 2005/03/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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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i 2005/03/26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은 지치고 힘들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여? 저도 힘차게 홧팅~~!!!

  2. hongsili 2005/03/26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당신 윗년차라면 용서가 안 될 거 같은디? -.-+ 운 좋은 줄 아셔... 나 같은 상사 안 만난 것을 ㅎㅎㅎ

  3. sanori 2005/03/26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려 일주일간의 일을 다 걱정하고 있으니 그렇게 지우개가 왔다 갔다 하지요...
    하루일만 생각하고, 그보다는 앞에 있는 딱 한가지의 일만 해치우고, 그리고 나서 그다음 일 생각하고... 그럼 문제없을텐데..ㅎㅎ
    어쨌거나 너무 바쁘군요...

  4. 미류 2005/03/26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래가지구 영화 보겠나? ㅎㅎ

  5. 해미 2005/03/26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i/ 지치고 힘들다는 자각은 별루 없는데요. 좀 짜증스럽기는 하지만...ㅋㅋ 홧팅!! 해야죠.
    홍실이/ 그러게요. 저두 그건 정말 다행이라구 생각하구 있슴다. ㅎㅎ
    산오리/ 흠.. 아주 좋은 충고네요.
    미류/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가거나 담날 밤을 새더라두 주~~욱 째고 노는 것이 또 사는 맛 아니더냐? ㅋㅋ

  6. 콩!!! 2005/03/26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같으면 뭔가 하나를 덜어낼 궁리를 할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밀도를 높이겠다는 결심을 하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여백'을 만드는 게 또 너의 장점이니까 잘 해!
    그나저나 회식에 목숨거는 <교수님>은 어딜가나 있는 모습이지만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7. 해미 2005/03/27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밀도 높이겠다 결심만하구 유유자적 놀고 있는 상황입죠. 케세라~~세라~~

  8. 혜은 2005/03/28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마치 우리 백교수님을 보는 것 같구나. 엄청난 일 욕심에 다섯 아이들 챙기기까지 하나도 안 놓치려 하니 항상 뭔가를 잊어버리시거든.. 왠만하면 쉬어가면서 하지 그래

  9. chakhan 2005/04/04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모든일을 대충하려는게 신조인데 그래도 왜 지우개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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