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5/13 02:43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청소 아주머니들 취재를 다녀왔다. 전날의 과음으로 속도 불편하고 잠도 못 잔 상태였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아 꾀죄죄하고 술이 안깨 여전히 불콰한 얼굴로 새벽의 대학을 찾았다.

 

맨날 학교로 출퇴근 하며 새내기들의 화사한 얼굴을 보고 지내는 나이지만, 채 이슬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학교 공기는 상쾌하기만 했다.

 

길을 물어볼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산한 대학에서 청소 아주머니를 만났다. 학생들의 강의가 시작되기전 아주머니들은 일을 끝내야 한다. 버스가 새벽에 안 다녀 동대문부터 걸어다니신 적도 있다고 한다. 세상에...

 

내가 늦은 지라 같이 취재하기로한 친구는 이미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텅 빈 강의실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얼굴에는 이미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 바쁜 시간, 취재에 응해 주시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커피에, 박카스에, 빵까지 내어주신다.

 

학생때 무심코 버린 쓰레기와 뿌렸던 유인물들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든다.

 

조합이 생기기전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가에 살포시 눈물이 돌다가 조합 얘기를 하면서 입가에 살포시 웃음이 돈다. 얼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절염에 걸려 걷기도 힘든 다리로 그 넓은 학교강의실을 정말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사진기를 들이대는 우리에게 아들이 청소한다구 챙피해 할 거 같아서 얼굴나오면 안된다고 고개를 돌리시는 조합원, 학과 사무실에서 사탕과 초코렛을 집어 손에 하나씩 쥐어주시는 아주머니, 사진이라두 찍구 얘기라두 많이 해야 월급이 올라간다며 웃으시는 아주머니...

 

최저임금투쟁이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왜 중요한지 아무도 힘줘서 선언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의 웃음과 눈물 속에서 그냥 느껴졌다. 이런 비정규직 확산하겠다고 덤벼드는 자본이 진절머리나게 싫어졌다.

 

내가 간호사인줄 알았던 그 시절 우리 엄마의 모습도 저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울엄마두 자식들 챙피할까봐 자세히 얘기하시지 않았고, 병원의 싸가지 없는 직원들 눈치보니라 힘들었을 거 같았다. 아주머니의 눈에 맺히던 눈물에 엄마가 겹친다.

 

최저임금밖에 안되지만 어제 월급탔다시며 해장국이라두 한 그릇 먹구 가라는 아주머니에게 차마 밥 한그릇 얻어먹기가 죄송하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다음에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월급 탔다고 환하게 웃으시면서 해장국 먹고 가라시던 아주머니의 땀 맺힌 얼굴이 정말 아름 다웠다. 그 얼굴... 역시 울 엄마가 겹친다.

 

새벽에 만난 얼굴들에는 모두 엄마가 겹친다.

 

덧니> 자식한테 미안하셔서 직접적으로 얘기 못하시고 눈치보면서 덥다고만 하시는 엄마한테 기꺼운 마음으로 에어컨을 사드려야 겠다. 나야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시원한 병원에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하고 싶은 일하면서 정신없이 살지만 울 엄마 갑자기 넓어진 집에서 덥기까지 하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이번 일요일, 엄마 손을 잡고 에어컨도 사고 시원한 냉면도 한그릇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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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3 02:43 2005/05/1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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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프 2005/05/16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 여름 무쟈게 덥다는뎅...
    에어콘 없으면 저는 거의 죽죠..ㅋ
    해미는 효녀시네용~ ^^

  2. 해미 2005/05/16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프/ 기어코 에어컨을 샀습니다. 효녀 흉내 내다가 파산하겠어요. 흑흑...

  3. hongsili 2005/05/17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집도 에어컨을 사기는 했는데... 정작 부모님들만 계실 때는 안 틀고, 내가 있을 때만 틀더라는.. ㅜ.ㅜ

  4. 해미 2005/05/17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실이/ 글게 사드리기는 했는데 울 엄마두 그러실거라는 날총의 강력한 의견제안이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초절전 어쩌구 류의 최신 기종은 배제하고 전통적(?)인 기종을 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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