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분석]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는 대북강경파의 견제를 뿌리칠 수 있을까

아직 건재한 미국 내 대북 강경파... 북한 ‘불신’과 대북 협상 ‘회의론’ 여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5-11 09:23:03
수정 2018-05-11 09:23:0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김동철씨(오른쪽 두번째)가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며 양 팔을 올려 두 손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김동철씨(오른쪽 두번째)가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며 양 팔을 올려 두 손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AP/뉴시스
 
 

역사상 최초로 개최되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 역시 북한이나 미국의 공식 발표가 아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깜짝’ 발표로 알려졌다.

한때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평화의집이 유력한 개최 장소로 검토되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중립국 이미지가 강한 제3국인 싱가포르로 회담 개최지가 확정된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바로 미국의 특히, 외교정책 결정 과정이다. 사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결정은, 실무자들이 여러 번 협상을 통해 확정한 다음 결정권자(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받는 일반적 과정과는 전혀 궤를 달리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미치광이’라는 말폭탄을 주고받던 북미관계였다.그러나 중재자 역할을 맡은 한국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와 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를 즉각 수용했다.

그래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right away) 하자. 평양이라도 가겠다”고 말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 시기는 ‘5월 말’로 다시 ‘5월 말과 6월 초’로 미뤄지다가, 다시 당겨지는 듯하더니 6월 12일로 확정됐다.

 

개최 장소 역시, 일부 ‘평양 개최설’에서 ‘5개국’으로 다시 ‘2개국’으로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판문점 개최설’에서 다시 원점으로 향하다가 결국 싱가포르로 확정됐다.

풀이하자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과정은 실무자들이 밑에서 결정해 위로 향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정권자(대통령)가 결단을 내리면 실무자들이 최종 결정은 따르지만(일명 탑다운(Top-Down) 방식), 구체적인 사항은 반대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의 입지(위상)이다. 워싱턴 외곽 비주류 출신의 ‘정치적 이단아’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은 아직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오히려 최근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등 여러 의혹에 휘말리면서, 녹록하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40%대를 회복하면서 다소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일 미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한다면, 그의 위상은 일거에 반전될 수도 있다. 대통령 중간평가로 여겨지는 11월에 실시될 의회 중간선거에서 녹색등이 켜질 가능성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보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보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트럼프 대북정책 지지율 과반수 돌파... 뿌리 깊은 ‘회의론자들’

당장 10일(현지 시간) CNN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을 77%가 넘는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대북 정책 지지율도 과반수를 넘긴 53%를 기록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한과 말폭탄을 주고받고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해 미 국민들이 안보 위협을 느끼며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졌던 불과 몇 달 전 상황과는 천양지차인 셈이다. 일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특히, 미국 유권자들 앞에 내놔야 하는 트럼프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기존의 예상을 깨는 이른바 ‘빅뱅(Big Bang) 합의’를 발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폐기 등 이른바 비핵화 문제와 함께 종전선언이 기본적으로 북미 합의서(공동발표문)에 담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와 함께 북한 체제 보장에 관한 선언과 향후 평화협정 추진에 관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결정과 장소·시기 확정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바로 미국 내부에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이른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다. ‘통 큰’ 합의를 해도 세부 사항(detail) 이행 과정에서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온갖 스캔들에 휩싸여 있는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뒤집고 ‘노벨 평화상’까지 거론될 정도로 전세를 역전시킬 절호의 찬스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미 간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물밑 합의’가 성사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트럼프와는 달리 ‘대북 협상 회의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뿌리는 매우 깊다. 미 행정부 내의 이른바 ‘네오콘(Neocon)’이나 ‘강경 매파(Super-Hawk)’ 등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세력이 주장하는 핵심은 한마디로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역설적인 측면은 공교롭게도 이들 대북 강경파의 핵심 세력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북 협상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 협상의 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그 핵심 세력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비밀 방북 몇 달 전에도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격으로 방송에 나와 북한의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대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잠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라고 폄하한 사람이다.

볼턴 보좌관 역시 NSC 보좌관에 임명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도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강경 매파이다. 북한과의 그 어떠한 합의도 오직 시간만 벌게 해줄 뿐이라며, 더 늦기 전에 군사력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북 초강경파인 셈이다.

이들이 대북 협상이나 북미 정상회담의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아예 초강경파들이 북한과의 합의를 주도했으니, 오히려 합의 이행이 쉬울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한다. 스스로 자신들도 참여한 합의를 깨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기존 북미 간의 합의도 모두 이행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대북 초강경파인 이들이 이행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는 브레이크를 걸면서 임명권자(대통령)를 따라가는 흉내만 낼 뿐이라는 불신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접견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접견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조선중앙통신

트럼프, 대북 강경파를 평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핵심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개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것은 분명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말처럼 ‘수십 년 적국’일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거의 70년 동안 북의 주장처럼 ‘철천지원수’였던 양국의 정상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남 자체가 서로 상대국에 관한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희망의 씨를 뿌리고 상호 신뢰와 평화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또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일정 부분 혹은 통 큰 ‘일괄타결’이 되든 합의문을 발표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문제는 다시 그 합의의 이행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미국은 북한에 철저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겠지만, 이에 따른 확고한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 간의 합의 발표로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기 내에 상호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지 않아, 또 북미 합의가 깨진다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 뻔하다.

또 어떠한 합의를 내놓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는 물론 대북 강경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과 회의론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하다. 협상은 북한과 하지만, 평가는 미국 국민과 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다시 이른바 대북 초강경파 세력들이 걸림돌로 등장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벌써 북미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살인 정권’의 독재자와는 어떠한 회담을 해서도 안 된다는 대북 강경파 인사들의 칼럼이 미 주류 매체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넘어야 할 ‘디테일의 악마’는 미국 내에 도사리고 있는 이들 대북 초강경파 세력일지도 모른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과정의 우여곡절이 아직도 미국 내에서는 이들 세력이 건재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곧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 그의 결단과 지도력이 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대북 강경파 세력을 평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진정한 결실을 이룰 수 있을지 온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