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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동물들을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매일의 사투

이준석 2018. 08. 01
조회수 325 추천수 0
 
야생동물 구조센터 24시
먹이 조르는 어린 새, 포유류 배변 유도와 분유 주기
재활훈련, 투약, 강제 급식…쉴 새 없이 울리는 신고 전화
청소도 필수, 자원활동가 도움 절실…최선 다해도 또 죽음

 

s27.JPG» 다리가 골절돼 깁스를 한 어린 고라니. 구조센터의 여름은 치료와 관리, 방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야생동물로 북적인다. 그 중 상당수가 어린 개체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도착한 구조센터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다. 짐을 책상에 대충 던져두고 몇 걸음 되지 않는 복도를 '살아 있을까'라는 걱정에 휩싸인 채 계류장의 어린 새들을 보러 간다. 계류장의 문을 열고 먹이를 독촉하는 어린 녀석들의 울음소리에 안도하며 괜스레 불친절한 손길로 먹이를 집어 준다.
 
s1.jpg» 먹이를 보채는 어린 박새.
 
s2.JPG» 까치 새끼.
 
s3.jpg» 배고픈 어린 되지빠귀.
 
어린 새들에게 먹이 주는 일이 끝나는 대로 어린 포유류의 배변 유도와 분유 준비로 분주해진다. 어린 포유류는 직원들이 어미를 대신해 배뇨·배변을 유도하고 분유를 먹여야 한다. 처음엔 이런 과정을 하루에 세 번씩 진행하며 조금씩 체중을 늘리고 시간이 지나 성장할수록 그 횟수를 조금씩 줄여간다. 
 
너구리든, 고라니든, 삵이든 어린 포유류를 무사히 키우는 일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배변, 배뇨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 폐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분유를 먹는 과정에서 분유가 기도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오연성 폐렴으로 인해 폐사로 이어질 수 있고, 먹는 양이 충분치 않거나 체온이 떨어져도 폐사할 수 있으며 원인조차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s4.JPG» 분유를 받아먹는 새끼 너구리.
 
s5.jpg» 분유를 먹는 새끼 고라니.
 
모든 어린 동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종에 따라 방식에 차이가 있다. 어린 동물은 크게 조성성과 만성성으로 나뉜다. 조성성은 새끼가 태어난 뒤 곧바로 움직일 수 있는 종을, 만성성은 새끼가 태어난 뒤 일정 기간 어미의 보호가 필요한 종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꿩, 오리, 고라니 등은 조성성에 속하고 참새, 매, 멧비둘기, 너구리 등은 만성성에 속한다. 
 
하루의 시작은 만성성 조류를 먹이는 일로 시작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면,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행동을 사람에게도 하는데, 그때 부리 안으로 종과 상태에 따라 육류, 곤충류 혹은 이유식을 넣어주면 된다. 일정 수준의 크기로 성장하기 전까진 30분 간격으로 먹이를 먹여 체중을 늘려야 한다. 정신없는 일과에 쫓겨 몇 시간 먹이를 주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상태가 악화하고 죽음이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또한 종과 상태에 따라 균형 잡힌 다양한 먹이를 제공하거나 올바른 사육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다면 성장할지언정 근골격계 이상 혹은 각인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일반인의 야생동물 사육이 동물 입장에선 굉장히 위험한 이유이다.
 
 반면 조성성 조류는 사람의 손길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며, 사실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렇기에 조성성 조류인 오리나 꿩의 유조가 폐사할 때면 안타까움에 답답할 때가 많다. 만성성 포유류인 삵, 너구리, 족제비 등의 새끼는 걷는 것은 물론 눈도 채 뜨지 못한 상태이다. 조성성인 고라니는 태어나자마자 풀을 뜯고 걸을 수 있지만, 풀을 뜯어 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양과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성 포유류인 족제비, 너구리처럼 젖먹이기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s6.JPG» 어린 흰뺨검둥오리는 사람의 손길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s7.JPG» 조성성 동물인 새끼 고라니.
 
s8.JPG» 만성성 동물인 멧비둘기 새끼. 일일이 돌봐주어야 한다.
 
s9.JPG» 새끼 족제비. 어린아이처럼 때마춰 젖을 주어야 한다.
 
어린 동물들을 관리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현재 치료 중인 동물들을 모두 돌아보며 간밤에 다친 곳은 없는지, 제공했던 먹이의 잔량과 배설물의 상태는 어떤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진료가 필요한 개체, 먹이 양 조절이 필요한 개체, 계류장의 이동이나 재조성이 필요한 개체가 결정되고 하루 일과를 계획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본격적으로 진료, 먹이 준비, 재활 훈련, 투약 등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만 순탄히 진행되긴 힘들다. 새로 구조되는 동물로 진료는 연달아 지체되고, 어린 새들에겐 끊임없이 먹이를 먹여야 하며, 스스로 먹지 않는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하루에 몇 번씩 강제로 먹이를 먹이거나 스스로 먹이를 먹게 유도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개체수도 많고, 겨울에 비해 다양한 종들이 구조되는 바람에 먹이의 종류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먹이 준비에 필요한 시간 또한 평소의 몇 배는 필요하다.
 
s10.JPG» 방사선촬영 중인 청딱다구리 새끼.
 
s11.JPG» 오리류 유조를 위한 먹이 준비.
 
s12.JPG» 쏙독새에 먹이를 강제로 먹이고 있다.
 
s13.JPG» 어린 황조롱이에게 약을 먹이고 있다.
 
구조 전화는 쉼 없이 울린다. 구조 담당자는 구조센터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여름엔 구조 또한 간단치 않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는 둥지 위로 올려줘야 하고, 불가능할 경우 인공둥지를 달아줘야 한다. 집수정이나 농수로에 빠진 어린 오리들을 포획해 안전한 곳에 어미와 함께 풀어줘야 한다. 어린 포유류가 구조해야 할 상황인지, 신고자의 걱정과 오해로 인한 납치인지 현장에서 파악해야 한다. 밀려오는 구조에 직접 출동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몇몇 지자체에선 이럴 때를 대비해 야생동물의 구조를 1차적으로 도와주는 지회를 운영하고 있다. 조난당한 야생동물의 구조도 미룰 수 없지만 치료가 끝난 계류동물의 방생 또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방생이 빠르게 이뤄져야 구조센터의 업무도 줄어든다. 또 이유 없는 장기계류는 동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s14.JPG» 쉴 새 없이 구조되는 야생동물.
 
s15.jpg» 황조롱이 새끼를 위한 인공둥지를 설치하고 있다.
 
s16.JPG» 새끼 너구리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고 있다.
 
s17.JPG» 방생 전 까치에 가락지를 끼우고 있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도 환경관리는 절대 소홀히할 수 없다. 남은 먹이와 배설물을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해충과 곰팡이, 부패로 인해 동물들에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우스와 곤충류의 사육환경도 늘 청결히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계류장과 재활에 필요한 도구의 세척과 소독도 신속하게 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어렵진 않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럴 때 자원활동가의 도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요즘처럼 정신없는 시기에 자원활동가에게 더욱 감사하게 된다. 너무 바쁘다 보니 자원활동가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와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s18.JPG» 여름엔 환경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s19.jpg» 청소할 것이 끝없이 나온다.
 
s20.jpg» 자원활동가들이 새끼 너구리 돌보기를 돕고 있다.
 
s21.jpg» 새끼 황조롱이를 위해 횃대를 설치하고 있다.
 
바쁘게 시간이 흘러 해가 질 즈음이면 계류동물 관리가 끝나고 조금 여유가 생긴다. 이 시간에 박제를 제작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관리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구조동물을 기다리며 저마다의 업무를 처리한다. 모든 구조와 진료가 끝나면 하루 일과를 돌아보고 특이사항을 공유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회의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듯이 구조센터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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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최선을 다한 하루임에 틀림없지만 죽음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날은 드물다. 계류장 문을 열었을 때 숨이 다해 쓰러진 가녀린 어린 새가 보이면 온몸의 숨이 발끝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지난밤을 버티지 못한 녀석이 있진 않을까, 긴장 속에 계류장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손쓸 틈도 없이 폐사하는 어린 동물들과 밤새 간호하며 희망을 봤던 동물의 허무한 죽음은 허탈함에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한 생명이 스러져가는 순간에도 많은 동물들이 수의사와 재활사의 보살핌을 기다리고 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선 한 생명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도, 여력도 충분치 않다.
 
s26.JPG» 다리가 골절된 새끼 너구리.
 
s28.jpg» 수액을 맞는 새끼 삵.
 
s29.JPG» 골절을 치료 중인 새매 새끼.
 
그렇지만 많은 동물들이 힘을 내며 견디고 있고 다시 한번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기에 그 모든 죽음을 넘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아가는 게 구조센터의 일상이다. 하루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동물들을 살피고 내일은 괜찮겠지 생각하며 불 꺼진 구조센터를 나선다. 지친 몸을 이불 위에 누이는가 하면 금세 또 하루가 시작된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위령비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
 
숫자로 갈음되었지만, 하나하나 보석보다 반짝이고 소중했던 삶의 이야기를 지닌 수많은 야생동물이 끝내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동물에게 너희가 겪었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저 하늘에서는 다치지 말고 마음껏 뛰놀 수 있기를 넋을 기리고 안녕을 기원합니다."

 

글·사진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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