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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마웅 자니 인터뷰 “천천히 타오른 로힝야족 학살, 스마트폰이 혐오 폭탄 됐다”

[단독]미얀마 마웅 자니 인터뷰 “천천히 타오른 로힝야족 학살, 스마트폰이 혐오 폭탄 됐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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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와 미얀마 민주화운동 이끈 마웅 자니 박사 방한 인터뷰
페북발 가짜뉴스, 불교도·버마족의 두려움 증폭 역할…공격이 정당화돼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힝야족 탄압과 학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인사인 마웅 자니 박사가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힝야족 탄압과 학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인사인 마웅 자니 박사가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모든 사람의 손에 ‘혐오 폭탄’을 발사할 무기가 쥐어졌다. 이 폭탄이 실제로 터져 로힝야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마을을 불태웠다.” 

‘로힝야 집단학살’ 문제의 세계적 권위자 마웅 자니 박사(55·사진)는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1995년 미국 유학 중 ‘자유버마연합’을 창설해 미얀마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다. 아웅산 수지와 함께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앞장서서 이끈 자니 박사가 한국 언론과 공식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자니 박사는 이날 경향신문과 만나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가짜뉴스 문제에 우려를 나타냈다. ‘페이스북이 로힝야족 대량학살을 가속화시켰다’는 최근 연구 결과 때문이다.

군부독재 시절 제한적인 정보만 접했던 미얀마인들은 새로운 정권의 수립과 함께 2013년 스마트폰의 ‘SIM카드’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가격이 폭락하자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유일하게 미얀마어 서비스를 지원하는 페이스북으로 사용자가 몰렸다. 현재 미얀마 인구 5300만명 중 1800만명가량이 페이스북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이 시작된 후 페이스북은 ‘혐오 폭탄’의 도화선이 됐다. 수천명의 로힝야족이 목숨을 잃고 70만명이 국경 밖으로 도망가는 동안에도 로힝야족을 개·돼지로 묘사한 혐오 게시물들은 ‘좋아요’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자니 박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로힝야족이 테러를 저질렀다’거나 ‘수염이 있는 로힝야 남자가 여자를 성폭행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을 조작하고,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짜뉴스가 혐오 범죄를 부추긴다고 봤다. 가짜뉴스 자체가 혐오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만, 미얀마인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불교도와 버마족들의 두려움·혐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니 박사는 “혐오와 두려움은 늘 함께 움직이는데, 가짜뉴스는 로힝야족과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을 거짓으로 과장되게 꾸며 그들을 향한 혐오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신문·TV를 통해 유포되던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을 모든 개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파할 수 있게 됐다. 모두가 혐오를 퍼트리는 무기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군대·정부, 집단학살 피 묻히면, 아웅산 수지가 손 씻겨주고 있어”

미얀마 마웅 자니, 국내 언론 첫 인터뷰 

미얀마의 ‘치부’가 된 로힝야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자니 박사는 현재 ‘국가의 적’으로 몰려 있다. 자니 박사의 내한 소식이 알려지자 ‘재한 미얀마 국민’ 이름으로 그의 한국 강연을 반대하는 인터넷 청원이 이어졌다. 이들은 자니 박사가 “과장되고 자극적 주장과 일방적이기만 한 견해”를 퍼트리고 “사익만 추구하는 용병”이라고 비판했다. 자니 박사는 “많은 미얀마인들은 나를 ‘배신자’ ‘사기꾼’이라고 하거나 ‘국가의 적’이라 부른다”며 “그들이 나를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학자는 양심에 따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니 박사는 2014년 공동발표한 논문에서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을 1960년대부터 미얀마 정부와 군대, 불교계 등에 의해 조직적으로 지속돼온 ‘천천히 타오르는 집단학살’이라고 정의했다. 이 논문은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을 집단학살로 정의한 첫 연구로 꼽힌다.

자니 박사가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을 ‘천천히 타오른다’고 정의한 것은 보스니아·르완다·캄보디아 등에서 “번개 같은 속도로” 벌어진 대량학살과 달랐기 때문이다. 장기간 동안 육체, 정신, 문화, 경제,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짧은 시간 벌어진 대량 인종학살 범죄보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니 박사는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은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의 교과서적인 사례이며, 나치 시절 독일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단순히 불교와 이슬람교의 갈등도 아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도 다른 전형적인 집단학살”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화 위해 함께 싸웠지만 
수지에 대한 모든 기대 끊어
로힝야족 향한 잔인한 탄압 
‘제노사이드’ 전형적 사례

자니 박사는 한때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함께 싸웠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에 대한 모든 기대를 끊었다고 했다. 그는 “군대와 정부가 로힝야족을 학살해 손에 피를 묻히면 아웅산 수지가 그 손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게 지금의 미얀마”라고 직격했다. 그는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되길 기대했지만, 지금의 미얀마는 민주주의가 아닌 파시즘 국가이며 여러 소수민족을 ‘식민지’로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지금의 미얀마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아웅산 수지를 비판하면 언론인도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파시즘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자니 박사는 지난 30년간 어머니를 단 3번 만났다. 영국에 주로 체류하면서 전 세계에서 강연·연구 활동을 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2006년 이후로는 미얀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미얀마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적인 양심과 책임감으로 로힝야 문제에 대한 비판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자니 박사는 “우리 집안의 많은 친척이나 친구들도 군인 출신이다. 로힝야에서 벌어지는 학살은 내 친구가 저지르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는 미얀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과 탄압을 멈추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국제사회 국가들이 앞장서서 미얀마에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이 멈출 때까지 무역을 중단하는 등 실제적 행동에 나서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미얀마는 파시즘 국가 
스스로 해결할 상황 안돼
한국 등 국제사회 행동해야
 

자니 박사는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자 K팝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등 문화 강대국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로힝야족 대량학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면 이 일을 멈추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자니 박사는 이날 세계선교협의회(CWM) 콘퍼런스에 참여한 뒤, 22일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등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 주최로 강연을 열어 로힝야 사태의 배경을 설명하고 해결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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