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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박근혜 '드레스덴 연설'을 비판했나?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⑫] 뤼디거 프랑크 비엔나대학교 교수
2018.10.22 09:51:59
 

 

 

옛 동독 출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일 재통일을 조망해 보는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의 마지막 주인공은 뤼디거 프랑크 비엔나대학교 교수다. 그는 독일 내에서 손꼽히는 동아시아 전문가로, 북한 김일성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유학생활을 한 적도 있다.  

프랑크 교수는 지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에 대해 "연설문 작성자를 해고하라"고 비판한 바 있다. (☞ 기사 보기 : 동독 출신 교수 "박근혜, 연설문 작성자 해고하라") 그가 박 대통령 연설에 이같이 다소 과격해보일 수 있는 주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드레스덴 연설이 있은 지 4년이 지난 2018년, 서울에서 프랑크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당시 연설을 비판한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이) 독일 통일이 동독에 대한 서독의 승리인 것 같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이 북한에 대해 이와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남한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평양(북한에)에 신뢰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크 교수는 당시 동독 사람들이 서독과 통일을 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독의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면서도 "우리는 동독이 좀 더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나은, 그리고 여행의 자유가 있으며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프랑크 교수는 "서독에 흡수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로운 혁명을 원했다. 물론 먼 미래에 통일을 하는 것은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통일이 아니라 개혁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독일의 재통일은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뤄졌다. 통일 당시 20대였던 프랑크 교수는 동독 내 자신의 부모님 세대들이 통일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이러한 측면이 당시 동독에 있던 10~20대에게 대물림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공통적인 이념이 없다는 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독일의 재통일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에 대해 프랑크 교수는 "독일 국가주의(애국주의)는 나치 시대의 경험 때문에 선택지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공통의 이념을 공유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독일로부터 배울 것은 일단 통일의 과정이 시작되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 뿐이라면서, 통일 전에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랑크 교수는 "보통 약자가, 즉 북한이 한국의 체제를 따를 것이고 한국으로부터 도움이나 자금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통일 전에 북한이 나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본다"며 북한이 일방적인 도움을 필요로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면서 이러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프랑크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 차 한국을 방문했던 지난 7월 16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뤼디거 프랑크 비엔나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동독 출신으로서 베를린 장벽 붕괴를 청년기에 직접 경험했는데, 당시 동독 지역의 분위기는 어땠나? 그리고 당시 청년 세대들은 어떤 변화를 바라고 있었나? 

프랑크 : 동독의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소련, 심지어 중국과 같은 개혁을 원했다. 동독이 좀 더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나은, 그리고 여행의 자유가 있으며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지 통일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서독에 흡수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로운 혁명을 원했다. 물론 먼 미래에 통일을 하는 것은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통일이 아니라 개혁을 원했다. 

이런 저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혁명이 서독의 정치 세력에 의해 장악됐을 때 많은 불만이 있었다. 많은 동독인들이 느끼기에 통일은 서독의 프로젝트였다. 동독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프레시안 : 여전히 동서독 간에 갈등이나 동독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프랑크 : 갈등이나 차별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주목할 만한 차이는 있다. 독일 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더들이 서독 출신인 경우가 많다. 정치인이나 교수 등을 보면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동독에 살고 있는데도 서독 억양을 쓰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대학 총장이나 교수의 80%가 서독 출신이다. 

물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동독 출신이긴 한데, 사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에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다. 즉 메르켈 총리의 경우 원래는 서독 출신인데 동독 출신으로 바뀐 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메르켈 총리가 동독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서독 간 갈등과 관련해서는, 세대에 따라 좀 다른 것 같다. 몇 주 전에 예전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는 내가 라디오에 출연한 것을 들었고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독 리포터의 멍청한 질문에 대해 동독 출신의 교수가 똑똑한 대답을 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지난 2월 나의 새 책을 소개하기 위해 TV에 출연했을 때 나는 익명의 서독 사람으로부터 엽서를 하나 받았다. 그는 내가 동독 출신이라는 것에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물론 이런 반응은 구세대의 이야기다. 그들은 냉전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양쪽의 '프로파간다'를 모두 겪었고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통일 당시 40대였던 이런 분들은 그때의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가 정말 어려웠고 직업도 많이 잃었다. 물론 당시에 직업이나 지식이 통일된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는 몇몇 분들은 행운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적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또 동독이 서독의 체제나 법을 받아들이는 상황, 즉 외부 시스템이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동독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이름을 쓰거나 일본 신을 숭배하는 등의 행위를 싫어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제 세대는 좀 달랐다. 통일된 이후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고, 대학도 졸업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법도 알고 있었고,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통일된 이후 태어난 제 아들은 지금 18살인데 그 아이에게는 통일이 중요하지 않다. 이미 통일된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제 아들은 독일을 그냥 독일 그 자체로 생각한다.  

또 부모님 세대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한국에도 그렇겠지만 부모가 소득이 낮고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고 좋은 관계망(연줄)을 갖지 못하면 그게 다음 세대까지 넘어가는 경우가 있지 않나? 독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특히 통일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교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 차이를 없애는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가 고향이 라이프치히인데, 아직 거기에 살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은 여전히 소득이 매우 적다. 기본적인 생활 외에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독일 통일의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 등이 있는 작센주는 통일 성공의 상징처럼 보인다. 통일로 인해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독의 경제 수준이 서독의 70% 정도라고 대체적으로 보고 있는데, 통일 이후 장기적으로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나? 

프랑크 : 경제적으로 몇몇 긍정적인 사례들이 있고, 작센주의 경우 통일 이전부터 발전됐던 곳이긴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통일 이후 산업이 많이 붕괴됐고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 옛 동독 지역에 위치한 인구 25만 명의 켐니츠 시의 모습. 동독 당시에는 '칼마르크스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시 도시로서 번화했지만, 통일 이후 경제 위기를 겪으며 쇠락했다. 사진을 촬영한 곳은 중앙역 부근 시내 중심가였는데 평일 오전 9시였음에도 지나다니는 차량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그런데 이같은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이같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 게다가 독일과는 달리 통일 이후 북한에 투자할 자본이 있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다. (북한이) 중국과 근접해있다는 것이 이러한 배경 중 하나다.  

그리고 동서독 간 경제 문제와 통일을 연결짓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1990년대 통일 이전에는 동독과 서독이 체제가 달랐기 때문에 경제적 격차가 있을 수 있는데, 30년이나 흐른 지금은 그 차이가 통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만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같은 서독인데 뮌헨은 좀 더 돈이 많고 브레멘은 그렇지 않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인지, 어떤 것이 통일 때문에 생긴 변화인지 구분 짓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동독 쪽에 특별한 지원이나 프로그램은 없을 것 같다. 도시 간의 차이처럼 개인 간의 삶도 통일이라는 변수로 구분 짓기는 굉장히 어렵다. 

프레시안 : 지역 격차, 세대 격차, 가치관 변화 등이 동독 지역에 급격히 일어났을 텐데, 그로 인해 동독 내부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았나? 통일의 영향으로 새로운 사회 문제, 예를 들면 극우화 현상 등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프랑크 : 일단 스킨헤드, KKK(Ku Klux Klan, 백인 우월주의 단체) 등 극우적인 행동이 서방 세계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동독 지역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사실 이건 동독 지역의 현상이 아니다. 심지어 이건 독일의 현상도 아니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이념의 공백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강자에 의해 식민지가 됐다'는 느낌과 결합된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은 동독 지역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났고 이것이 동독 지역에서 극우적인 움직임이 힘을 얻게 된 이유다. 

그런데 소위 "새로운" 사회적 문제들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라 매우 오래된 것들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직업과 수입이 없고 그래서 미래가 없다는 문제는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부동산이 가치를 잃고, 나이든 사람들은 불만이 많아지면서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현상은 동독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동독 지역에서 정말로 새로운 현상은 이러한 모든 일이 매우 갑자기, 그리고 빠르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실제 이러한 현상은 구 동독 지역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통일 이후) 불과 1~2년 사이에 실업률이 0%에서 10%, 심할 때는 20%까지 올라갔다. 

프레시안 :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분야의 문제 때문에라도 '독일 통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내부 평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크 : 독일 통일은 예상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필요로 했다. 우선 정치적으로 동서독 간 공통된 이념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국가주의(애국주의)는 나치 시대의 경험 때문에 선택지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공통의 이념을 공유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 : 예를 들면 월드컵에서 독일 깃발을 흔드는 것이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드는 것과는 다른 의미인가?  

프랑크 : 국기를 흔들고 응원하는 문제가 독일 신문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토론 주제다. 일단 국기는 그 경기가 있을 때만 흔드는 것이다. 다른 데서 흔들면 '나치 아니야? 우파 아니야?'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 기간 중에 항상 그런 문제가 제기된다. 근데 이건 독일 사람에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정치인이 이런 주제를 꺼내면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어떤 정부든 공통된 사회 통합의 가치를 만들고 확보하려는 욕망이 있을 것 같은데 독일 정부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지?  

프랑크 : 사회통합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그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하면 좋겠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동독의 유산 

프레시안 : 독일의 통일이 서독 중심의 흡수통일이었지만, 동독에도 통일 이후에 계속 남길 만한 가치나 유산이 있을 것 같다. 동독으로부터 전해내려온 것 중에 통일 이후에도 살릴 만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프랑크 : 알다시피 우리는 독재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는 이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 중 하나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고,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 뤼디거 프랑크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동독에서는 정치적인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통일 이후 이런 자유를 쟁취하다 보니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서독에서는 원래 그런 게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덜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프레시안 : 통일 당시 여성학자들의 인터뷰를 보니까 통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동독의 저숙련 여성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동독 사회에서 여성은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했는데 서독 사회는 여성의 일자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 이후 저숙련 여성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고 한다. 

프랑크 : 당시 동독 여성들은 사회 내에서 영향력이 강하고 독립적이었다. 동독 경제가 여성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육아도 도움을 주고 사회복지도 잘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통일 이후에는 많은 여성들이 정규직보다는 파트타임으로 많이 일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동독 때보다 적은 상황이다.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여성들이 일을 많이 하지 않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세금 문제다. 독일은 결혼하면 부부의 수입을 합해 세금을 매긴다. 또 세금에 누진세가 있어서 부부가 모두 일을 할 경우 수익이 많아지고,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 중에서는 차라리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정 전체 수익 측면에서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프레시안 : 통일 후와 비교했을 때 예전 동독이 더 좋았던 사례 중 하나로 여성이 노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까? 

프랑크 : 그런데 이건 잘못된 이유로 좋은 결과가 나왔던 사례다. 동독 정부는 여권 신장의 차원에서 여성의 노동을 권고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물론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평등을 보장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프레시안 : 통일 후 동독 지역에서 한동안 '오스탈기'(Ostalgie, '동쪽'이라는 뜻의 '오스텐(Osten)'과 '노스탤지어'의 독일어인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 동독에 대한 향수를 의미한다. 편집자) 현상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오스탈기 제품이 이른바 '힙스터 문화'의 소비재로 각광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스탈기 현상은 단순히 통일 부작용으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울 듯한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프랑크 : '오스탈기'와 같은 예전을 그리워하는 현상이 특별히 구 동독 지역에서만 나타난다고 오해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노스탤지어'는 모든 곳에 있다. 이건 과거에 대해 이상적으로 해석하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 모든 언어에 "좋았던 옛 시절"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또한 과거에 대한 갈망은 예전의 국가, 예전의 시스템 또는 예전의 생활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닌,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크다. 이는 왜 노스탤지어가 중산층이나 고연령층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동독에 대한 향수 또는 그리움을 갖는 경우도 동독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본인이 젊었을 때, 어렸을 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여러 비판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통일이 당신에게, 그리고 독일에 준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프랑크 : 14세기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을 때 그 시기를 살았던 한국 사람들처럼 (독일의) 통일은 내 삶의 일부다. 몇몇 사람들은 일본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 또는 1987년의 민주화를 경험했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좋은 방향 또는 나쁜 방향으로 운명을 결정짓는 주요한 사건이 있다. 이는 종종 동시에 나타난다. 통일을 동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통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바꿨다. 나에게 있어서 통일은 큰 변화였다. 

그러나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통일 보다는 세계 2차대전이 더 큰 사건이었고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또 1999년 태어난 내 아들 입장에서는 통일은 단지 역사 책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일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때때로 큰 변화들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살아남아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른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통일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오직 이기거나 오직 패하기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독일 통일의 영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독일 내에 존재하는 많은 개인들의 삶 만큼이나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을 것으로 본다.  

준비하지 않으면 실수할 것 

프레시안 :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을 두고 '독일 통일과 동독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 진 연설문'이라고 비판했다. 드레스덴 연설이 왜 문제였는지를 간략히 설명해 달라. 아울러 남북이 독일 통일 혹은 동독 개혁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프랑크 :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독일 통일이 동독에 대한 서독의 승리인 것 같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이 북한에 대해 이와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남한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평양(북한에)에 신뢰를 줄 수 없다. 

독일의 사례가 한국에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한국은 독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 독일과 한국은 너무 많은 측면에서, 너무 많이 다르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일단 통일의 과정이 시작되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한국이 동독으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본다. 따라서 한국은 통일 전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통일 이후 재산권 처리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땅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누가 북한의 땅을 가지고 있는지. 남한에서는 부동산 서류 있으면 땅의 소유가 어느 정도 증명이 되지만 평양의 경우, 예를 들어 누군가가 류경호텔이 있던 자리에 대해 이거 내 땅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 뤼디거 프랑크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러면 누가 진짜 소유권자인지에 대한 싸움이 일어나고 몇 년에 걸쳐 법적 공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법적 공방이 진행될 동안에는 누구도 거기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자리도 사라질 것이고 통일 비용도 그만큼 많이 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이 아직 독일의 사례를 제대로 배우거나 이를 통해 통일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두 번째로 북한의 엘리트들을 통일 이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특히 노동당의 고위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독재에 가담했으니 그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감옥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을 것인가? 북한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결정을 미리 내려 놓아야 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독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너무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왜 한국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한국 정부 관계자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알고 있는데 나중에 통일되고 나서 생각해 볼게" 라고 한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독일의 경험에 따르면 지금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프레시안 : 현재 통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준비가 너무 미흡하다는 뜻인가? 

프랑크 : 한국이 대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문제지. 그래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당신이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생각해 보라. 일단 임기 동안에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어려운 문제는 미룰 수밖에 없다. 

북한 당 간부 및 군, 관료 등의 처리 문제만 해도 만약 어떻게 처리하겠다고 발표하면 당연히 북한에서는 굉장히 화를 낼 것이다. 화해 기조랑 평화 분위기를 무너뜨린다고 반발할 수 있음 있다. 그래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건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다. 또 정치인들에게 장기적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트럼프와 같은 대통령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웃음)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올해 안으로 종전선언이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남북 경제협력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보다는 통일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지?

프랑크 : 일단 경제협력은 북한에 대한 제재가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투자할 수 있으니까.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부가 무엇인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매우 한국적인 사고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것보다는 예를 들어 민간 부문에서 투자가 가능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투자를 하라고 강제하는 것보다는 환경을 마련해줘서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또 특정한 한 정부에 국한된 단기적인 통일 정책보다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해결책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필요 없을 수 있지만 가능성이 있는 한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남한처럼 개발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를 통해 최악의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한국 도움 필요 없을 수도  

프레시안 : 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최근 급변하는 남-북-미 관계를 어떻게 지켜봤나? 

프랑크 : 2018년 초 남북이 단지 (어떤 상황이 일어나서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더욱이 그들은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에서 힘을 가진 국가들을 다루기 위해 협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1950년대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외교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남북 정상 ⓒ공동취재단


남북이 필요에 의해 이같은 협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의 주도권을 남북이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내전이 있었을 때 일본이 침입했는데,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은 일단 내전을 멈추고 협력해서 일본을 무찔렀다. 그 이후에 다시 경쟁했다.

지금 남북은 함께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평창 올림픽에 맞춰 의제를 설정했다. 또 4월 27일 정상회담을 이뤄냈다. 남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모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감사를 표시했으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까지 언급했다.  

프레시안 : 통일 이전에 남북이 서로 만나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데, 남북 주민들은 여전히 제한적인 교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앞으로 남북이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프랑크 : 통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독일의 통일 과정이랑 똑같을 거라고 전제하는데 그건 오류다. 보통 약자가, 즉 북한이 한국의 체제를 따를 것이고 한국으로부터 도움이나 자금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통일 전에 북한이 나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본다. 북한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즉 둘 다 경제 성장을 이뤘을 때 통일이 되면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북한으로 일자리가 넘어가면서 한국의 일자리가 부족해질 수도 있다. 독일 같은 경우 동독에서 서독으로 일자리가 이동했다. 그래서 동독이 어려워졌는데, 한국에서는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프레시안 : 한국 경제의 큰 특징은 소수의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이 경제 체제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통일이 되면 한국 경제의 이러한 특수성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프랑크 : 재벌의 자본이 북한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북한은 텅 빈 공간이 아니다. 북한 내에서도 재벌이 생기고 있다. 주유소, 화장품, 컴퓨터 공장 등도 있고 고려항공의 경우에는 항공사업뿐만 아니라 택시나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이 통일된다고 해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기업은 국가기업이긴 한데 족벌 경영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가족이 경영하기도 하고 군이 경영하기도 하는, 약간 섞여 있는 형태다. 기업 이름 중에 '승리'라는 말이 들어있으면 보통 군이 경영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남북이 교류를 하면 북한도 사실상 한국이 과거에 겪었던 것과 같은 고도성장을 거칠까?  

프랑크 : 경제성장이 어떻게 될 거라고 완벽하게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독일 통일 과정처럼 북한이 붕괴해서 남한이 흡수통일 하는 것과 북한이 내부의 개혁을 통해 정치 체제는 유지하되 경제 성장을 이루는 방식이다. 

만약 두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 가능하다면 북한은 한국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값싼 노동력도 있고 높은 교육을 받은 숙련된 노동자도 존재하고 있으며,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관념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독재 체제라서 특정한 산업을 공략,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루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또 북한은 섬이나 다름 없는 남한과는 달리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광물자원도 남한에 비해 많다. 다만 미국과 같은 정치적인 파트너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파트너를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를 계기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통일 가능성에 대해 전망해본다면? 

프랑크 : 통일은 여론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 당시 많은 독일 사람들은 통일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통일은 일어났다. 최근의 사건들은 거의 20년 동안 (남한 사람들이) 가져왔던 북한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통제 불가능할 수도 있고 1990년 전후로 생겨났던 동유럽의 상황으로 (국면을) 이끌 수도 있다. 또는 1978년 이후 중국처럼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한국 통일의 기회가 커질 것으로 본다.  

트럼프와 한반도 평화 

프레시안 : 중국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가 붕괴해 난민이 발생하지 않게끔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적 우려 또한 있다. 

프랑크 : 우선 북한과 중국은 무역 분야에서는 계속 교류를 했다. 그런데 한국-미국과 같은 동맹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리더로 입지를 굳히길 원한다. 이를 위해 인접해있는 국가인 한국이 꼭 필요하다. 마치 미국이 멕시코, 캐나다, 쿠바와 같은 이웃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중국에 우호적인지, 한국이 안정적인지 등이 중국에게는 중요하다. 

또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남한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도입하려고 할 때처럼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의 밑바탕에는 최소한 현 상황을 유지하거나 미국의 영향을 없애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 뤼디거 프랑크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북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 이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중국은 북한의 붕괴 위협이 커지면 이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이게 중국이 북한의 안정을 원하는 이유다. 

프레시안 : 현재의 한반도 평화 국면을 만드는 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역할이 어느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프랑크 : 트럼프 정책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매우 긍정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미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조건을 높이면서, 즉 CVID를 먼저 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제조건을 내세웠는데 트럼프는 '이전에는 어땠든지 상관없이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행동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가 위험한 부분도 있다. '화염과 분노',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발언했던 완전한 파괴, 핵 단추 이야기 등 그의 발언에는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입장을 계속 고수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트럼프의 인내심이 끊어져서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면 정말 위험해질 수 있고 2차 한국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을 하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질까? 

프랑크 : 부시 정부는 ABC(Anything but Clinton), 즉 전임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했던 것을 부정하고 이와 반대되는 정책을 취했다. 트럼프는 ABO, 'Anything but Obama', 즉 오바마 정부에서 했던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에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했던 정책과 반대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북미 간의 이러한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다. (통역 : 이지인)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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