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달 신일철주금에 대한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내린 판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일제 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일본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등에서 임금 한 푼 없이 노동을 강요당한 양금덕(87)씨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에서 1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이날 또 강제징용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등에서 일한 정창희(95)씨와 이미 사망한 피해자 4명의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도 피해자 5명에게 8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파기환송 후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지난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전범기업 쪽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는 전원합의체의 판결 이유 그대로다.
재판부는 또 양씨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2012년 10월 소송을 낸 것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의 제소라는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주장에 대해, “피고가 이 사건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해 원고들에 대한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서 광주고법 민사2부(재판장 홍동기)는 2015년 6월 판결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일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대해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일본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며 지금까지도 청구권협정 관련 정보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는 사정 등을 종합해보면, 원고들이 (대법원 판결 이후인) 2012년 10월 소송을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이 ‘소멸시효’ 문제에 대한 원심의 이런 판단을 받아들인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크게 늦춘 것이어서, 2005년 이후 많이 늘어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하급심 재판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추가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그동안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두고, 2005년 8월 한일협정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발표 이후 또는 2012년 5월24일 대법원의 원고 승소 취지 파기환송 판결 이후로 봐야 한다는 등의 논란이 엇갈렸다. 이 시점을 객관적 장애요인이 사라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안 날’로 보면, 소멸시효는 민법 규정에 따라 각각 3년 뒤인 2008년8월 또는 2015년 5월 종료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2005년이나 2012년이 모두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서는 반인륜적 범죄인 만큼 소멸시효를 두지 말아야 한다거나 최소한 지난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확정판결 이후부터 기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전망이다.
양씨 등 여자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들은 국민학교 졸업 전후이던 14~15세 시절 교장 등의 꼬임을 받아 1944년 5~6월부터 옛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 등에서 비행기 부품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파이프에 천을 꿰매는 등 힘든 노동에 내몰렸다.
종전 뒤 임금 한 푼 못 받고 귀국한 양씨 등은 1999년 3월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8년 패소가 확정됐다. 이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았다’는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인 2012년 10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동원 정책에 편승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14~15세 소녀들을 군수공장에 배치해 열악한 환경 속에 위험한 업무를 하게 한 것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며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양씨 등에게 8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3년 넘게 재판을 미뤄오다 지난 9월 전원합의체로 넘겨 심리를 벌였으나 다시 원래 소부 재판부로 넘겨 판결을 선고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정씨 등은 1944년 9~10월 히로시마의 옛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강제징용됐다. 이들도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한 뒤 국내 법원에 2000년 5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채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패소로 판결했으나, 2012년 5월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 후 항소심은 원고 1명당 8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3년 9월 재상고가 접수된 지 5년2개월 만이다. 재판이 장기화한 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행정부와의 교감 아래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 사이 원고 5명 중 4명이 사망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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